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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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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지킴이들의 ‘커밍 아웃’

등록 2006-08-24 00:00 수정 2020-05-03 04:24

비폭력 저항의 일환으로 지킴이들이 자신의 신분 밝히는 선언 감행…“함께 나누면서 그게 부담되지 않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 두시간 대추리 이주자

국방부 관리 입에서 주택 강제철거가 8월 말∼9월 초에 있을 거란 얘기가 나왔다. 여름을 나기 위해 지은 원두막에 아침 일찍부터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언제 철거용역이 들어올 거란 얘기들이 오가고 겨울에 쫓겨나면 어디로 가느냐는 근심도 쏟아졌다.

대추리와 도두2리에 상주하는 지킴이 20여 명은 어떻게 비폭력 저항을 완강히 할 것인지를 8월 중순 한 주간이나 의논했다. 그들은 일단 강제철거와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지킴이 선언’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민들을 반미투쟁에 이용하러 들어갔다’는 정부의 마타도어(흑색선전)가 집요한 터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공개적인 선언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수의 사람이 거대한 물리력 앞에 맨몸으로 선다고 마음을 다지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막상 카메라 기자들 앞에서 ‘지킴이 선언’을 하던 8월16일 그들의 표정은 무척 맑고 밝았다. 그러한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노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추리에서 가장 바쁜 지킴이 가운데 한 명인 김디온(27)씨는 일상생활에서 그 힘을 찾는 듯했다. “생활하는 힘이 외부의 폭력에 쉽게 무너지는 건 아니에요. 주민들과 서로 기대고 잘해주려 노력하고 예뻐해주면서 땅을 일구는 일을 하니까 보람되고 재미있어요.” 대추리에 넉 달을 눌러앉아 살면서 삶과 공동체에 대한 시각도 많이 변했다. “한번은 촛불행사 끝나고 주민들이 어딜 가시기에 따라갔어요. 한 할머니가 깜깜한 방에 누워 계시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주민들이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깨우더니 그저 ‘식사 잡수셨어요?’ 하세요.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할머니 안부를 확인하는 거죠. 넘치는 에너지들이 주변을 함께 돕고 나누어서 같이 살아가면서도 그게 부담되지 않는 공동체의 모습을 이 안에서 보는 것 같아요.”

노인에 대한 시각도 변했다. “서울에서 살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보수적이어서 마주치기 싫은 존재였어요. 여기선 일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따뜻하고 재미있는 분들이 많아요. 요즘은 종묘공원에 모여 계신 노인분들이 뽕짝 틀어놓고 춤추는 걸 보면 흥이 일고 거리감이 확 줄어요. 그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말도 걸어보고 싶고….” 그런 변화들은 대추리가 디온씨에게 베푼 선물이었다.

정부가 주택을 철거한다면 사라지는 것은 집만이 아니다. 문화와 전통을 가진 구체적인 공동체가 파괴된다. 이웃이 사라지고 추억마저 지워져간다. 지킴이들이 주택 철거를 마을 공동체 파괴로 규정한 것은 그 때문이다. 지킴이들은 국경 같은 경계를 넘어 “나도 평택 지킴이”라는 선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길 고대하고 있다.

대추리 주민들은 포클레인을 ‘땅차’라고 부른다. 1952년 옛 터에서 미군 땅차가 추녀가 얕은 흙담집에 흙을 한 삽 쏟아부으면 집안이 캄캄해져 속절없이 쫓겨나왔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 주민들에게 19일 개관한 대추리 주민 역사관 ‘대추리 사람들’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집이다. 이웃들의 오래된 사진과 동력을 사용하지 않는 농기구들이 그렇고, 강제철거 용역이 들어오면 이 집마저 허물어지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 그렇다.

주민 역사관 현판 작업이 있던 지난 18일 판화가 이윤엽(39)씨를 만났다. 대추리의 목판화 작업실에서 나와 최근 한 달은 이곳에서 전체 작업의 연출자이자 목수로 일하고 있었다. 실내에는 주민들이 보자기로 싸 장롱 속 깊은 데에 두었다가 꺼내온 오래된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다. 이씨는 “사진을 보고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면서 주민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호화찬란한 데서 밥 먹고 좋은 차를 타서 행복한 게 아니잖아요. 생일사진, 돌사진, 결혼사진 같은 기념사진이에요.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서 일한 뒤에 그런 행복한 시기들이 끼어드는 거죠.” 그의 소신이 이어졌다. “FTA가 큰 링이라고 합시다. 충분히 준비한 싸움꾼들이 사람들을 자꾸 링으로 끌어들여요. 사람들은 당연히 깨지죠. 이미 거대하게 준비된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길 강요받는다는 점에서 대추리도 마찬가지에요. 돈과 권력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없이 살면 자꾸 움직여야 하고요. 그게 여기 삶이잖아요.”

‘밥 사먹는 집’도 생겼어요!

이윤엽씨와 함께 작업한 미술가 강현화(38)씨도 같은 마음이다. “집 하나를 재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농기구처럼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물건을 한데 모아놓고 주민들이 옛 시절을 회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봐요.” 주민들이 역사관을 잘 관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역사관이 “오래가면 좋겠고 안 부서지면 좋겠다”는 마음은 비단 강씨의 소망만은 아닐 것이다.

대추리를 찾는 많은 시민들에게 한 가지 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올해 농사를 못 지은 주민들은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그전처럼 무한정 식사를 대접할 수 없었다. 공동식량도 바닥난 지 오래고 논일이 없어 품앗이가 없으니 공동식사도 뜸해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고심하던 한 지킴이가 마을 초입에 ‘밥 사먹는 집’을 차렸다. 솜씨가 좋고 값도 저렴하다.

논일이 거의 없어도 대추리는 바쁘다. 사람 사는 마을이 다 그렇잖은가. 이윤엽씨 말마따나 계속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서 행복해지는 거다. 대추리에도 대추리 아닌 곳에서도 해야 할 일은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참 많다.



[들이운다] 철조망 가생이에서 44년…

우리 아들들은 엄마가 이렇게 버티고 있어서 좋디야

김인순(72)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05

김인순 할머니가 44년 동안 살아온 집도 대추리 1반뜸이다. 집 뒷마당에 나가면 구보하는 미군들이 바로 앞에 보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비행기 뜨는 소리가 귀를 찢는다.

이 집에서만 44년 살았어. 철조망 가생이에 이렇게 사는 건데도. 그것도 또 내쫓으려 하니 어떡혀. 이 집터가 원래 국방부 땅이여. 우리는 원체 모르고 지었는데. 그때는 무조건 집들을 지었잖아. 그래서 우리는 터도 없어. 요 집 건물만 달랑 있는 거여. 1반뜸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 큰일이여. 작은 일이 아니라니께.



난 여기가 고향이야. 부모님들도 여기서 살다 돌아가셨지. 어릴 적에는 저 너머 구대추리에서 살았어. 17살 먹어서 이쪽으로 쫓겨나온 겨. 우리 친정집은 4반뜸이여. 그러니 난 70 평생 다 여기서 산 거지. 아저씨는 나 51살에 간경화로 죽고 혼자 살지.
아파트 같은 데는 살 수도 없어. 손자 봐주러 갔었는데 몇 년 있다 못 버티고 그냥 왔잖아. 맨날 아파트서 바깥에만 내다보고. 노인정에 갈 줄 알아, 사람들 사귈 줄을 알아. 그래서 그냥 도망왔지. 여기서는 얼마나 좋아. 집은 오막살이라도, 마음이 편하지. 만날 고생하다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 만하니께.
어제 국방부에서 빨리 이사 가라고 우편물 왔다는데 다들 안 받아서 나도 안 받았어. 손해가 나도 이윤이 나도 끝장을 본다고 안 받았어. 젊은 사람들이 빈집들에 들어와 살으니 좋은데 이제 어떡한데여. 늙은이가 뭐 어떡혀. 몰라. 난 안 나가. 우리 아들들은 엄마가 이렇게 버티고 있어서 좋디야. 친구들 보기도 떳떳하고 좋디야. 대책위 일 보는 이들이 우리 막내 친구여.
대추초등학교도, 보건소도, 농협창고도, 강당도 다 대추리 사람들이 터 내줘서 지은 거여. 우리가 쌀 걷어 터 사고 내준 건데. 그래서 농협이나 시에서 지은 거잖아. 그걸 다 팔아쳐먹고. 아휴, 그러니 무슨 힘을 쓰냐고. 평택시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시에서 저렇게 하니, 참. 약자들은 진짜 너무 억울혀. 아까 텔레비 보니께 핵시설이니 뭐니 나오던데, 전쟁 준비하는 거여. 새끼들.
국방부에서 집으로 전화하고 지랄들이잖아. 나는 못 나간다고 했지. 그 새끼들이 그러더라고. 융자 5천만원 주지 않느냐고. 내가 그랬지. 그거 나중에 안 갚냐고, 보증 서야 하는데 누가 보증 서주냐고 했지. 그러니께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 다 빚인데. 그걸 어디 가서 벌어. 늙은이가 뭘 혀. 우리네는 여기서 끝을 볼 거여. 이렇게 쫓겨날 줄을 누가 알았어. 어처구니가 없어. 대추리 사람들은 너무 억울혀. 옛날부텀.




[평화의 땅 지키기] 4차 평화대행진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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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8일 현재 1억367만3591원

2006년 9월24일 오후 2시 서울에서는 ‘평택미군기지확장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는 4차 평화대행진이 열립니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에서는 이 행사를 준비할 10만 준비위원을 모집합니다. 준비위원이 되고 싶으신 독자님들께서는 범대위 홈페이지(www.antigizi.or.kr)에서 등록할 수 있습니다. 뜨겁던 여름 더위도 한풀 꺾였고, 이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안성천 너머 저무는 태양과 노을을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너무 멀어 평택에 가까이 갈 수 없는 독자님들, 마음속으로 지킴이들을 응원해주세요.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정상조(10만원) 남이성수(5천원) 정의 김선영(3만원) 정소연(3만원) 이재인(2만원) 서유미(3만원) 조태진(10만원) 평화 또 평화(2만원) 피규창(5만원) 기열곤(3만원) 밥과장미(30만원) 최연자(3만원) 박지영(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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