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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캠페인] “생활에 불편해도 집 나가시오”

등록 2006-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철거 용역들의 세 번째 침탈 막아낸 주민들에게 국방부가 보낸 철거 통지서…‘관망파’들만 골라 한 협상도 실패, 대추리·도두리는 ‘종합병원’으로

▣ 평택=글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철거 용역들의 세 번째 침탈(4월7일)을 가까스로 막아낸 평택 주민들은 며칠 전 국방부가 보내온 편지 한 통을 손에 쥐었다. 국방부는 안내문에서 “6월30일까지 이사를 완료해달라”고 독촉했다. “생활에 불편이 있으시더라도 국가 사업인 점을 감안하시어 ‘해당 주민께서는 금년 6월30일까지 이사를 완료하시기 바라며, 7월 이후는 부득이 적법 절차에 의거 철거할 계획임’을 양지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국방부는 평택 너른 들의 농수로를 끊는 데 이어, 사람이 살고 있는 ‘생가’를 철거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셈이다. 주민들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가슴을 쳤다.

멀쩡한 들이 군사시설 보호구역?

김종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사무처장은 “4월7일 침탈 실패로 285만 평이나 되는 광활한 땅을 물리력으로 손에 넣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입증됐다”고 말했다. 결국 국방부는 창군 이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작업에 나서는 듯했다. 그것은 ‘대화’였다. 안정훈 국방부 홍보관리관은 4월11일 “4월 한 달 동안은 주민들 및 반대 단체들과 대화를 통해 이해와 설득 작업을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누구와 대화를 나누려던 것일까. 국방부는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을 이끌고 있는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평택 주민들의 모임인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팽성 대책위)에 전화조차 걸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협의매수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범대위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관망파’를 대화 상대로 골랐다.

관망파는 국방부와 만나 “지금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그것은 너무도 온건하고 상식적인 요구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 11월 발표한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개발사업지역 세입자 등 주거빈곤층 주거권 보장 개선방안을 위한 실태조사’에서 “국가가 진행하는 사업으로 주민들의 생활 여건이 이전보다 나빠져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국방부의 손에는 주민들을 만족시킬 ‘카드’가 없었다. 그것은 과연 대화였을까. 아무튼 협상은 결렬됐다.

대화 선언이 있은 뒤 일주일이 채 못 돼 국방부가 미군기지 확장 예정 터를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농민들은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엽기적인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 말은 여의도의 3배가 넘는 너른 땅에 주민들의 저항을 무릅쓰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뒤, 그곳을 ‘군사시설’이라고 우겨 군대를 주둔시킨 다음, 경찰에 군사시설보호구역 시설 보호를 요청하겠다는 뜻이다. 언론들은 “농지 한가운데 철조망을 두른 후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을 박으면 이곳이 과연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되냐”며 비웃었다.

세 차례에 걸친 철거용역들의 침탈로 대추리·도두리는 ‘종합병원’으로 변했다. 도두2리 이연자(65) 할머니는 국방부의 2차 침탈(3월15일) 때 허리를 크게 다쳤다. 이연자 할머니의 고향은 충남 공주다. 23살에 금산으로 시집왔고, 이듬해 평택 도두리로 이사왔다. 처음 이사왔을 때 할머니네 집 주변은 온통 갯벌이었다. 할머니 집에 모인 동네 주민들은 “남편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살았다”며 웃었다. 땅을 파면 짠물이 나와, 주민들은 웅덩이에 빗물을 가둬 식수로 썼다. 웅덩이 물을 퍼와 백반과 함께 항아리에 담으면 아래로는 흙이 가라앉고, 위로는 물이 고였다.

농민들은 조용히 볍씨를 뿌렸다

그날 경찰들은 침탈을 막던 평화활동가·노동자·농민 40여 명을 잡아 닭장차 2대에 나눠 태웠다. 보다 못한 도두2리 할머니들이 2열로 줄을 맞춰 차 앞을 가로막았다. 전경들이 할머니들을 밀어냈다. 주변에서 “다친 사람이 있다”고 외쳤지만, 경찰은 물러서지 않았다. 할머니는 수술 도중에 의사가 늑막을 잘못 건드려 수술을 2번이나 받았다. 할머니는 4월11일에 퇴원했다.

대추리 이주자 마리아(26)는 왼팔 손목이 부러졌다. 마리아는 4월7일 내리 쪽으로 몰려온 포클레인 위에서 구호를 외치다 일을 당했다. 그는 포클레인 고리에 두 팔을 끼운 채 경찰들과 맞섰다. 여경들이 그의 다리를 들어 논바닥에 집어던졌다. 오른팔은 고리에서 빠졌지만, 왼팔은 그대로였다. 결국 팔목이 부러졌다. 그는 “정신이 혼미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평화활동가 ‘조약골’이 쓰러진 마리아를 일으켜세워 시내 박애병원으로 옮겼다.

4월18일, 경찰이 오지 않는 대추리·도두리 너른 뜰에서 농민들은 하루 종일 트랙터를 앞세워 볍씨를 부렸다. 도두2리 쪽에서는 모내기를 하기 위해 모판도 냈다. 서해에서 몰아치는 세찬 바람에 농민들의 비닐하우스가 하루 종일 위태롭게 흔들렸다. 저녁이 되자 안성천 쪽으로 조용히 해가 졌고, 다음날 새벽 황새울에는 거센 봄비가 내렸다.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마땅히 계속돼야 할 평화롭고 아름다운 하루였다.



[들이운다]그놈들이 내 사지를 붙들고…

촛불집회 하고 와서 영감 사진 보고 그려 “여보, 나 좀 데려가”

대추리·도두리 들녘이 아수라장이 되던 4월7일 오후, 대추리 김금순 할머니는 평택 시내 병원 응급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는 “분하고 억울하다”며 울었다.

▣ 김금순(72)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73-1

나 산 것도 분한데 그놈들한테 당한 것도 분해가지고. 한없이 분하지 뭐여. 이 지랄로 나가라 하고. 영감도 없이 나가라고 하니. 그놈들이 내 사지를 붙들고 질질 끌고 다니는겨. 사지를 내둘렀지. 그랬더니, 할머니 놓으라는 거야. 이놈들아, 할머니? 내 발로 걸어가도 실컷 걸어갈 거여. 어디든 가도 내가 쫓아갈 텐게, 이거 놔. 그래도 안 놔. 아휴, 눈물만 나와. 눈물만. 복받쳤지. 고생 나 많이 했어. 옛날엔 왜 그렇게 못살았나 몰라. 아이 징그러워.


1968년에 대추리에 왔어. 예산에서 살다 왔는데, 여기와서 남의 집살이만 11년 했어. 안팎 머슴이라고. 우리 아저씨나 나나 남의 집살이 하며 산겨. 4남매 그것들 땜에 눈물 바다였지. 우리 막내딸, 지금은 서른여덟인데 그거 배고 3개월 되었을 때 여기 온 거여. 와서 사는 디 너무 힘드니까 애를 뗄 생각을 했었어. 작정하고 읍내 나갔는데 쌀 한 가마 값은 든다잖아. 그래서 못하고 왔어. 그때 우리 주인 아줌마는 나 일 시켜먹을 욕심으로 애 떼라고 그랬거든. 근데 내가 그냥 돌아와서 “아줌니 내가 못하구 왔슈” 사정 얘기하니까 잘했다고 그러더라구. 아저씨가 뭐라 그랬대. 일 시켜먹자고 남의 자손 목숨을 버리느냐고.
그렇게 굶어가며 남의 집살이 해가며 새경 받아서 애들 키우고 산 거여. 남의 집살이 하며 1년에 쌀 8가마씩, 9가마씩, 많으면 10가마씩 받았지. 그저 아끼고 모아서 쌀 50가마 주고 저 논(1천 평) 산 거여. 그걸로 아들딸들한테 보내고 나 먹고 그렇게 사는겨.
우리 아저씨는 대추분교에서 소사일도 했어. 워낙 부지런했으니까. 근데 딴 사람이, 젊은 사람이 들어온다고 객사리 부용국민학교로 발령이 나서 오토바이 타고 출근하다가 돌아가셨어. 생각하면 분하고 울고 싶어. 마음이 고생스러울 때는 어디 가 울고 싶어. 한참 저기할 땐 촛불 집회하고 와서 아저씨 환갑 때 찍은 사진 보고 나 혼자 그러는겨. 여보 나 좀 데려가. 나 좀 데려가. 혼자 드러누워 있으면 뭐혀. 밤은 길고. 난 사람들 다 나가도 젤 끝까지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세상에 어디 가 못 살아. 인심 좋고 사람 좋고 대추리만 한 데 없는디. 동기간처럼 지낸 사람들 다 빼내버리고, 이게 뭐여.

*인터뷰·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5천만원 넘었습니다


50,760,463원

4월21일 현재 모금액 5076만463원

국방부는 평택의 농부들에게 “6월30일까지 나가달라”는 안내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들은 대추리·도두리 너른 들을 작살내려고 철거용역들을 동원하는 데 든 돈 1억4천만원도 김지태 대추리 이장에게 청구했습니다. 평택에는 조만간 국방부가 군대를 동원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정말 뜬소문이길 바랍니다). 죽음을 부르는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한다고 제 나라 국민들에게 총칼을 들이대는 정부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평택 농민들과 <한겨레21>은 비인도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국방부의 만행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예정입니다. 평택 농민들의 등 뒤에서 독자 여러분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벌써 지치셨나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그랬듯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우편번호 45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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