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평택 캠페인] 대추초등학교를 지켜내다

등록 2006-03-17 00:00 수정 2020-05-03 04:24

철거 용역과 전경들이 몰려온 3월6일, 긴장 속에 시작된 첫싸움
정문 쇠사슬을 자르는 펜치에 손을 들이밀며 강제집행 저지하다

▣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날 밤 평택 황새울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다. 3월5일 저녁부터 밤안개를 뚫고 전국 곳곳에서 학생, 노동자, 평화활동가들이 평택 대추초등학교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주민들의 학교를 국방부에 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호성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상황실장은 “철거 용역들이 새벽에 초등학교로 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무전을 주고받으며 마을 주변에 수상한 움직임이 없는지 감시했다. 기자는 평택 대책위 사무실이 마련된 대추초등학교 1층 사무실에서 설핏 잠이 들었다. 300명 넘게 몰려든 사람들은 주민들이 촛불 집회를 열기 위해 만든 비닐하우스 안에서 밤을 새웠다. 법무부는 그날 밤 “3월6일 9시에 강제집행을 시작하겠다”고 대추초등학교에 세들어 있는 평택 두레풍물보존회 송아무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침이 되자 활동가들이 기자에게 주먹밥 한 개를 건넸다. 안개는 아침이 되도록 걷히지 않았다.

“이게 다 니들 때문에 하는 짓이여”

3월6일 오전 10시30분을 넘어서면서 법원 집달관들과 철거 용역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법원 집달관은 강제집행 영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초등학교 정문 쪽으로 들어섰다. 대추리 주민 이민강(67)씨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씨는 울고 있었다. 그는 1969년 평택 안중에서 대추리로 이사왔다. 그때 이씨는 스물일곱 살이었고 미혼이었다.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했다. 남의 집살이 10년 하면 장가를 못 간다 해서 8년 동안 남의 집살이를 해 번 돈으로 땅 5천 평을 샀다. 그는 지금 자기 땅 3천 평에 남의 땅 5천 평을 농사짓는다. 그는 “우리는 어디로 가라는 거냐”고 소리쳤다. 아무래도 그의 외침이 법원 집달관에게 전달된 것 같진 않다. 법원 직원은 초등학교 정문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쇠사슬을 확인한 뒤 용역들에게 “끊으라”고 명령했다. 철거 용역들이 주민들을 헤치고 쇠사슬로 달려들었다. 인권운동가들과 철거 용역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수적으로 밀린 용역들이 곧 물러났다.

두 시간쯤 지난 뒤 철거 용역들은 경찰을 앞세우고 대추초등학교로 몰려들었다. 경찰은 이날 11개 중대 120명의 병력을 출동시켰다. 현장에 출동한 안아무개 경정이 대추초등학교 앞을 가로막고 선 평화활동가들에게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전원 연행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젊은 의경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쌌다. 의경들은 평화활동가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도두2리 농민 정만진씨의 어머니는 의경들을 보며 “쳐다만 봐도 아까운 놈들”이라며 가슴을 쳤다. “이놈들아 우리는 살아도 얼마 못 사는겨. 이게 다 니들 때문에 하는 짓이여. 미국이 이리 들어오면 앞으로 나갈 것 같아. 에구 이놈들아, 쳐다만 봐도 아까운 내 새끼들아.”

안 경정은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에게 세 번에 걸쳐 사전 경고를 한 뒤, 의경들에게 투입 명령을 내렸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범용씨가 의경들을 향해 “양심에 거리끼는 명령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외쳤다. 의경들이 앞다퉈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제일 먼저 호송차로 연행됐다. 남자 경찰은 남자 활동가들을 끌어냈고, 여자 경찰은 여자 활동가들을 끌어냈다. 성추행 논란을 없애기 위한 경찰의 세심한 성별 분업이었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현주(14)가 얼굴을 찡그린 채 집을 향해 도망쳤다. 현주는 올 2월에 초등학교를 마쳤고, 며칠 전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대추리 꼬마들의 ‘대장’이다.

정문을 지키고 서 있던 인권활동가들의 스크럼은 쉽게 허물어졌다. 다산인권센터 박진(36) 활동가와 대추리 이주자 마리아(27)가 자기 손을 철문에 엮었다. 그들은 쇠사슬을 끊기 위해 내미는 철거 용역들의 펜치 안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그들은 정문 앞에서 40분을 버텨냈다. 난감해진 경찰은 다시 철수했다. 문정현 신부가 다가와 박씨를 감싸며 울었다. 구멍 뚫린 철조망을 배경으로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3월16일 논갈이 투쟁 전야제 열기로

법원과 경찰 관계자들은 오전 강제집행에 실패한 뒤 “노인 등 노약자들이 많아 사람들이 다칠 것 같다”며 강제집행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주민들을 빨리 쫓아내야 하는 국방부 관계자들이 강제집행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밥을 다 먹은 전경들이 다시 초등학교 정문과 후문 등 세 방향에서 초등학교 침탈을 노렸다. 전국에서 몰려든 젊은 노동자들이 앞장서 경찰들을 몰아냈다. 몇 차례 지루한 공방이 이어진 뒤, 저녁 6시가 되자 경찰은 결국 물러났다. 해는 뉘엿뉘엿 황새울 너머로 저물었다.

김택균 평택대책위 사무국장은 “주변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첫 싸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날 저녁 7시께 다시 비닐하우스에 몰려들어 촛불을 밝혔다. 552일째 이어진 촛불이다. 주민들은 3월16일 저녁에 올해 농사를 성공적으로 짓기 위한 논갈이 투쟁 전야제를 열기로 했다. “지난 1월 트랙터를 몰고 전국 농민들을 만나 농민이 생각하는 평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습니다. 사람들이 ‘평택 285만 평 땅은 우리가 대신 갈아주겠다’고 말하더군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전국에서 몰려온 평화의 트랙터들이 평택 황새울을 가득 메울 겁니다.” 김 사무국장이 말했다. 뿌연 안개가 걷히고 나니, 평택의 너른 들판에는 어느새 봄이 훌쩍 다가와 있었다. 주민들은 올해에도 논에 물을 대고, 모를 심고, 잡초를 뽑고,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길 바라고 있다.



죽기 살기로 산 땅이여

밥 굶어가면서 대대로 물려서 살라고 장만해놓은 것인데

최수동(87)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72-6

미군이 들어와설랑 동짓달에 내가 집을 뜯어가지고 나르는데 그냥 밤낮 없이 이어 나르고 지게로 져 나르고 그렇게 혀서 쌓아놓고설랑은. 여기 뒷동산에다 포장을 하나 갖다 치고서 동지섣달에 그 추운 데서 겨울을 났어. 땅바닥에다 얄따란 포장 그거 깔고, 그 위에다 검불을 갈퀴로 긁어다가 깔았어. 그래서 애들이 그냥 추워서 “엄마 추워. 엄마 추워” 그러면 “추워도 할 수 없다. 죽기 아니면 살기여” 그러고서는 그냥 어떻게 해볼 도리도…. 그래도 검불을 깔았으니께 살았지, 아휴.


우리 밥 먹고 산 지가 몇십 년 안 돼. 그거 땅 사려고 참 말도 못했어. 고상 숱하게 혔어. 그래서 인자는 죽어도 못 나가.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 인자는 더는 못 나가. 땅 한 평도 줄 것 없고. 그 없는 데서도 빚 얻어갖고, 양식을 근근이 주워모아가지고 땅을 산 거여. 열두 마지기를 샀어. 그래가지고설랑이 근근적찌게 몇십 년을 물려가면서, 우리 인자 아들대에 내려가다가 인자 손자대에 내려가는겨. 손자대로 인자 내려가게 되면 우리 증손이 있어.
내가 대대로 그걸 물려서 살라고 장만해놓은 건데 그 땅 줄 상싶어? 우리 고상 말도 못했어. 양식으로다가 괴리뜰 양식을 사다가 먹고 산겨. 식구는 쪼끔이나 되어? 열한 식구 열 식구, 식구는 많지. 뭐 쪼끔 해야 풀칠도 못하고 부엌데기들은 반을 굶다시피 한 거여. 남자들 거두느라고. 그렇게 하고 살았어.
내가 재작년 8월달부터 촛불행사 댕기는데 여적지 댕기는겨. 처음부터. 얼른 그넘들 이겨내야만 안 댕기지. 그러려면 어떡하든, 늙은이래도 그냥 결심을 먹고 댕기는 거여. 땅 한 평도 안 주고, 나 손자 대물리고 그럴라고 댕기는겨. 그러고 대책위 일 보는 사람들 밤낮 없이 하는 거 딱하잖어. 그러니께 기를 쓰고 대니는겨. 아휴. 얼른 이겨내서 끝장나야지. 이제 일철은 오고 큰일이여. 한창 일 바쁜 땐데 흙도 담고 하려면 며칠간은 주물러터질 텐데 아무것도 못하잖아 지금.

*인터뷰 대추리 이주자 두시간, 평화바람 활동가 반지




2천만원 돌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쌀가마를 지고 나와 대추초등학교 정문 앞을 막아섰습니다. 철거용역들도 경찰들도 차마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철거용역은 성과 없이 대추리를 떠났습니다. 주민들은 농민가를 부르며 환호성을 외쳤습니다. 주민들은 3월17일 너른 대추리 황새울에 모여 올해 농사를 준비하는 논갈이 투쟁을 벌일 예정입니다. 평택 농민들과 아픔을 함께하는 전국 농민들의 트랙터가 평택 들판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그만 참여로 우리 땅을 짓밟는 미군들의 캐터필러 소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성금이 한두 푼 쌓일 때마다 “올해도 농사짓자”는 농민들의 꿈은 현실이 됩니다. 독자 여러분, 봄이 왔습니다. 황새울에는 보리 새싹이 파랗게 돋았습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우편번호 451-802)


장상훈 정영희(3만원) 김정래 김치섭 강서린(3만원) 이주강(2만원) 이승희(5만원) 김성욱(3만원) 이규봉우리땅(3만원) 정진영(10만원) 전순옥(3만원) 김창현 양희선(3만원) 매향리평화마을(1천만원) 제주참여환경(8만원) 조용현(10만원) 이영훈(10만원) 이호찬(10만원) 장영예(5만원) 윤용식(10만원) 이창호(2만원) 김효순(5만원) 이양자(2만4천원) 유윤종(5만원) 김인순(4만원) 송기훈(5만원) 고천심 김태홍 유지숙 힘내세요(10만원) 이대리 최상찬(5만원) 이필태 이필화 김옥자 이재호 우성섭(10만원) 최영규 김일주 김덕기 안사채 김문영 석제동 배용석 장재형 ‘민주노총평택안성지구협의회 9년차 정기대의원대회 참가자 일동’(14만7210원) 양승동(3만원) 이강택(3만원) 조영권 문미현 송천규 임상희 권태훈(1천원) 김용현(5천원) 김병수(5천원) 윤정철(5천원) 김범규(5천원) 심영보 박주영 공성식 윤상필 문문주 이상훈 구정모 박문칠 정환봉 권미란 김상목 이종훈 정지현 유나경 한지원 장진범 배준범 박소영 강준영 고석태 정영섭 김준우 박하순 장상훈 박훈영 이현대 김한영 여름(3만원) 유기만(2만원) 조대환 조윤미 남현우 이혜경·최정기 최미경(3만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