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캠페인_ 대추리를 평화촌으로!]
<font color="darkblue">주민들이 버리고 떠난 집을 고쳐 만든 ‘지킴이네 집’과 ‘지킴이 안내소’
평화마을 만들기 운동을 위한 둥지에 새로 주민이 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font>
▣ 평택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ryuyigeun@hani.co.kr
주민들은 삼삼오오 마을 들머리에 모여들었다. 할머니들은 작은 북, 트라이앵글, 주판을 준비해 이날 문을 여는 ‘우리 동네 지킴이 안내소’ 쪽으로 향했다. 주민 김영애(56)씨는 “오늘 대추리를 평화마을로 꾸민다는 선포식이 열린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1월11일 대추리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은 기자들을 앞에 놓고 “주민들이 버리고 떠난 집을 고쳐 대추리를 평화마을로 가꿔가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중간에 할머니들의 특별 공연이 열렸다.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활동가 밥이 부는 오카리나 소리에 맞춰 주민들이 <고향의 봄>을 불렀다. 할머니들은 준비한 북과 트라이앵글을 치며 박자를 맞췄다. 주판알이 ‘칙칙’대는 소리가 경쾌하게 이웃한 캠프 험프리 쪽으로 흘러들었다. 마을 입구에는 경찰 두 명이 상주하며 주민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문정현 신부는 기자회견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며 “주민들은 비폭력 불복종 운동으로 대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대책위원회,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대추리 주민들이 함께한 ‘평화마을 선포식’은 한 시간 만에 끝이 났다.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나누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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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법률 상담소와 전시실도
이날 ‘대추리 평화마을 만들기’의 본부 역할을 하게 될 ‘우리 동네 지킴이 안내소’가 문을 열었다. 안내소에는 찻집, 헌 물건 교환소, 전시실 등이 꾸며졌다. 이곳에서 민변 변호사들은 주말마다 무료 법률 상담소를 열고, 젊은 예술가들은 돌아가며 예술작품으로 전시실을 꾸밀 예정이다. 첫 전시작품으로 사진작가 노순택씨가 ‘너른 못’이라는 표제 아래 찍은 주민들의 사진들이 걸렸다. 안내소 현관에는 “올봄 냉이에 밥 비벼 드시고, 동네분들 예 모여 차 한잔 하세요”라고 쓰여 있다. 녹차·둥글레차·장미차 등을 팔고 찻값은 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된다.
지난해 여름부터 국방부·한국토지공사 등의 압박에 못 이긴 주민들이 하나둘씩 대추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140여 가구가 넘던 마을은 100여 가구 정도로 줄어들었다. 주민들이 떠나면 고물상들이 귀신처럼 알고 찾아와 창틀, 문짝, 남겨진 가재도구를 마구 떼어갔다. ‘우리 동네 지킴이 안내소’는 원래 이곳 토박이 신석호 할아버지네 집이었다. 그가 죽은 뒤 딸들이 모여 살다가 두 달 전 집을 비웠다. 집은 버려진 채 방치돼 있었다. 1월5일 담장이 무너졌다. 주민들은 이 기회에 집을 새로 꾸미기로 했다. 바닥을 새로 닦고 건물 표면에는 황토를 발랐다. 작업은 3일 동안 이뤄졌다.
집이 하나둘씩 비는 만큼 대추리 주민이 된 젊은이들의 수도 점점 늘고 있다. 지난해 말 인권단체 활동가 ‘메이짱’(24)이 마을로 들어왔고, 평화 운동을 하던 ‘자두’(24), 스스로를 ‘양심적 예비군 거부자’로 소개한 ‘동소심’(30)이 대추리 주민이 됐다. 평소 평화바람 활동가들과 친하게 지내온 동소심이 들어오자 활동가들은 “이제 들어올 만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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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노순택씨는 1월11일 대추리 주민이 됐다. 그는 아내와 7살배기 딸과 함께 대추리를 찾았다. 그는 “여기 2~3주 정도 임시로 머물면서 주민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대추리에 살러 들어온 사람들을 위해 꾸민 ‘평택 지킴이네 집’에 여장을 풀었다. 딸 노을이는 지킴이네 집을 찾은 동네 아이들과 친구가 됐다.
‘평택 지킴이네 집’은 주민들이 빈집을 고쳐 만든 대추리 평화촌 1호 집이다. 주민 홍민의(47)씨는 “지금은 말짱히 단장했지만, 처음에만 해도 귀신 나오는 집 같았다”고 말했다. 김양분(67) 할머니가 ‘며느리에게서 받은 한 번도 안 쓴 은색 침대보’를 기증했고, 김순득(67) 할머니는 “사람들이 모이니 방이 뜨뜻해졌다”며 웃었다. 커튼은 ‘4반 제일 끄트머리 집’에서 떼어왔다. 평택 이주민 마리아(25)가 찾은 ‘4반 제일 끄트머리 집’에는 이미자 가요무대 테이프, 헤어스프레이, 방석, 휴대전화 충전기, 수저 세트, 신영약국 내복약 봉지, 앨범 등이 뒹굴고 있었다.
만들자마자 계고장, 공무원들의 순발력!
지난해 12월6일 지킴이네 집이 완성된 직후 현관에 계고장이 붙었다. 집이 완성되고 채 2시간이 못 돼서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번뜩이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순발력에 주민들은 혀를 내둘렀다. 계고장에는 “본 가옥은 보상이 완료된 국방부 소유의 재산이므로 무단 점용 사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계고장을 통해 “빈집을 사용하면 국유재산법 제56조의 규정에 따라 2년 이하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은 계고문을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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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주민들이 쓰다 버린 물품들을 한데 모아 사용할 수 있는 재활용품 전시장 ‘나눔공작소-부활’이 만들어졌고, 그 앞의 빈 건물에는 아이들을 위한 ‘생각을 키우는 놀이방’이 꾸며진다. 대추리의 주민 수가 부쩍 늘어나면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을 수 있는 공동 식당도 만들 계획이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대추리로 모여들고 있다. 수원여성회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5개 시민단체, 대추리의 신음을 도저히 지나치지 못한 젊은 양심들이 빈집 입주를 준비 중이다. 대추리 평화마을에는 평화의 싹이 조금씩 움트고 있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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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들은 장롱 속에 숨어지냈어”</font>
땅차로 밀어젖히고 초가집에 불지르던 미군을 증언하는 김인순 할머니
<font color="6b8e23"> 김인순(72)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39-8</font>
지금도 미군기지 안에 원 대추리 우리 집 기억나요. 우리 집은 저 안짝에 있었는데, 안 나오니까 미군이 땅차로 밀어젖혔어. 그냥 막 초가집에 불 지르고, 나가라고. 노인네들이 놀래가지고 죽고. 우리네는 비행장이 가까워가지고 먼저 쫓겨나왔지. 그런데 또 비행장 가까운 데에 살게 됐어. 내가 항상 그게 이상하다는겨. 아휴 말도 못해. 일본제국 시대에는 먹을 게 없어서 우리 친정 밭에 참외도 키우고 그랬는데 일본군이 싹 밀어서 다 뺏겼어. 그랬는데 6·25 터지고 동짓달 피난 때 또 쫓겨나온 거야. 뺏긴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꼼짝없이 뺏겼지.
나는 학교도 못 다녔어. 오빠하고 동생은 다녔는데 나는 남부끄럽다고 해서 못 다녔어. 동무들하고 수놓고 뜨개질하고 놀았지. 딴 거 뭐 할 거 있어. 그러다 동짓달 피난 때 미군이 총을 가지고 들이닥쳐서 꼼짝 못하게 된 거지. 동짓달 피난 가기 전에 미군들한테 여 동네에서 여자들 셋이 당했어. 그때는 장롱을 이만큼 꺼내서 낮이고 저녁이고 그 뒤에 여자애들만 숨어 있었어. 미군들 피해서. 견디다 못해, 살 수가 없어서 아산으로 피난을 갔어. 둔포 아래 관터라고 있는데 미군이 없고 군사시설이 없으니까 간 거지. 그때는 다들 고생이 많았지. 그런데 또 이 지랄들이야. 정말 원통해 정말.
난 요즘 속 터져서 머리 아프고 전체 몸이 아퍼. 만날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말도 못혀. 난 여기서 떠나 서울 같은 데는 못살아. 그게 아주 걱정이야. 여기서도 노인정에 잘 안 가. 사교성도 없고 원체 활달한 성격이 아니라 미군부대 들어오면 죽을 거 같아. 어디 가서 살 수 없어. 암만 여기가 찌그러지고 그래도 여기가 제일 좋아 난. 다른 사람은 다 나가도 나는 못 나간다고 했어. 또 토지 수용되면 한이 된다니께.
* ‘들이 운다’에서는 1940년대 초와 1952년 일본군과 미군들에게 각각 고향을 잃고 쫓겨난 대추리·도두리 노인들의 육성을 그대로 독자들께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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