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거부한 집주인과 시당국에 행정소송 낸 재일조선인 변호사 강유미씨 기고…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일본의 일상적인 차별, 조국의 무관심에도 상처받는다
살 곳이 없는 재일조선인은 우토로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살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재일동포 2세 변호사 강유미(40)씨는 지난 1월 오사카의 한 아파트에 세를 얻으려다가 일본인 집주인에게 거부당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집을 내주지 않는 ‘입주 차별’은 일본 사회에서 뿌리 깊다. 1989년 고베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수모를 겪었던 강씨는 지난 11월17일 을사늑약 100년에 맞춰 오사카시를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강씨는 일상적인 차별을 받고 있는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심경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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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1월17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행정소송을 냈다. 지난 1월 내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입주를 거부한 집주인과 일본에서 가장 많은 재일동포가 살고 있음에도 이런 차별을 방치하는 오사카시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나를 긍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약 50만 명은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뒤 95년, 조국이 해방된 지 60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외국 국적을 유지한 채 일본 사회에서 계속 소외되고 있다. 재일동포들에게 이런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발단은 1905년 11월17일에 체결된 을사늑약이다. 을사늑약 100년, 재일동포는 아직도 방을 빌리는 것조차 국적을 이유로 거부당하고 있다.
이런 차별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내가 ‘차별받지 않고 있다’고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본 이름을 짓고, 일본어를 몸에 익히고, 일본 유치원과 소학교에 진학한다. 일본에서는 민족학교가 정규학교로 인정되지 않고 대학입시 자격 등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우리나라는 섬나라다’는 교과서를 읽고 일장기가 게양된 강당에서 기미가요를 계속 불러왔다. 이렇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성장한 경우가 많다.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다른 동포들과 서로 알고 지낼 기회는 거의 없다. 모두 일본 이름을 호적에 올려놨기 때문에 누가 동포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재일동포는 사춘기를 고독 속에서 지낸다.
고등학생이 될 무렵이면 외국인등록증을 작성하고 항상 휴대하는 것이 법률로 규정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본 사회에서는 외국인은 공무원이 될 수 없고, 회사에 취직할 때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채용된다고 해도 일본 이름을 올릴 것을 강요받고, 일본인과 결혼할 때도 상대방 가족에게서 국적을 바꾸라는 요구를 받는다. 재일동포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참정권이 없다. 죽을 때까지 한 번도 투표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면 난 왜 조선인인가. 조선인인데 일본에서 자랐던 것인가. 계속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일본 국적으로 바꾸는 게 좋지 않은가? 아니다. 나는 일본인이 아니고 조선인이다. 지금 이렇게 일본 이름을 짓고, 일본인의 가면을 쓰고, 일본인들에게 역행하지 않으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름’을 배제하는 일본 사회에 책임이 있다. 나는 조선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본명(한국 이름)을 쓰면서 살고 싶다. 하지만 내 자식에게까지 나와 같은 가혹한 인생을 살아가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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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는 항상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조선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조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조선어를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재일동포에게 조국은 냉정하다. 본국 동포들은 묻는다. 왜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느냐고. 전후 보상은커녕 일상생활에서 차별받아도 일본 국적만은 취득할 수 없다며 모든 불이익을 감수해온 재일동포의 삶을 동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 본국 동포가 이렇게 재일동포가 처한 현실을 모른다는 것에 상처받는다. 게다가 재일동포는 한국에서의 주민등록번호도 없다. 외국인도 아니라서 외국인 등록번호도 없다. 은행계좌를 만드는 것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보는 것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본명’을 쓰지 못하는 삶
그리고 재일동포는 깨닫는다.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우리 조국도 그렇다는 것을. 일본에서는 생활보호 등 복지정책은 자기 나라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재일동포는 그 권리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당연히 본국 정부도 재일동포를 위해 복지정책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전세계 어디를 가도 ‘이곳이 우리나라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논의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몇 년째 계속돼왔다. 과연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인가. 모든 재일동포가 항상 질문받는 문제다.
내가 일본에 사는 외국인이라는 것, 게다가 차별받아온 국적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사회에서 억압받아온 여자라는 것,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계속 사법시험을 봤다. 변호사가 된 지금 국적을 이유로 입주 거부를 당했을 뿐 아니라 변호사의 통상적인 업무 가운데 하나인 가정재판소 조정위원 일도 일본 국적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내 출신을 포함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그러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자. 일본인으로 생활하고 있어서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 동포도 내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얻기 바란다. 그리고 을사늑약 100년, 우리 민족이 아직도 치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본국의 동포들도 알아주기 바란다. 나는 이번 소송으로 그 첫발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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