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우토로를 몰랐던 일본 역사교육자협회 히라노 노보루씨
잡지에선 본 소식에 충격받아 우토로 방문하고 모금운동에도 참여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일본인은 우토로를 모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모른다.
최근 일본 역사교육자협회의 한-일 역사교사 교류모임 참석차 한국을 찾은 일본 치바현의 초등학교 교사 히라노 노보루(56). 역사와 사회 과목이 주 전공인 그 또한 우토로를 몰랐다.
“사회 시간에 학생들에게 설명했던 우지시는 차로 유명한 곳, 10엔 동전에 나오는 국보 보됴인이 있는 곳, 유명한 절인 오바쿠산의 남푸쿠지, 이 세 가지를 떠올려요. 이러한 우지시에 일제 강제징용촌 마을이 존재하리란 상상을 못했죠.”
우토로 할머니의 ‘낙천주의’
그 또한 지난해 말 일본의 사진잡지 <포토재팬>에서 우토로를 처음 접했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을 찍은 ‘재일 특집’에서 우토로에 사는 조선인들이 소개된 것이다. 신문을 보고 진보적 잡지까지 챙겨보는 ‘진보 교사’ 히라노다. 그러나 그는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타>와 최대 발행부수의 종합지인 <아사히신문>, 진보적 성향의 주간지인 <세카이>에서도 우토로를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내가 몰랐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유감스럽게도 우토로를 아는 학생들은 한 반에 한명도 없을걸요.”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가르치는 다른 역사 교사들도 우토로를 몰랐다. 8월 초 히로시마에서 열린 전국역사교사모임 전국대회. 히라노는 일-한 역사교육 분과회의에서 우토로 살리기를 호소하는 전단을 나눠줬다. 모두들 이런 곳이 있었냐며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한국의 역사교사모임이 제안해 황급히 이뤄진 모금 캠페인이었다.
“미리 모금운동을 준비했으면 좋았을 텐데. 교사들 대부분이 한-일 공동 역사 부교재에 매달려 있는 터라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벌이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분과를 중심으로 일부만 성금에 참가했어요.”
그는 히로시마 전국대회를 마치고 곧장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에 갔다. 우지시 이세다역 뒤쪽에 숨겨놓은 듯한 우토로 마을의 위치는, 일본인의 역사적 자의식 속에 꼭꼭 숨겨진 제국주의 과거사와 비슷했다. 하지만 마을 계단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할머니들이 그를 보더니 ‘여기 와서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어요. 일본에선 낯선 사람을 보고 흔쾌히 환대하는 예절이 이미 사라졌거든요. 그런데 몇분 동안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더우니까 냉커피를 타주겠다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대접을 해주시는 거예요.”
우토로 마을은 일본 사회의 게토처럼 닫혀 있었지만, 정작 사람들은 일본 사회에 열려 있었다. 경남 사천이 고향이라는 할머니의 집에 들어가 커피를 두잔이나 얻어먹었다. 자식 키우는 고달픔에 대한 이야기, 요즈음 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 일상사를 주고받았다.
한-일 역사교류모임이 나선다
그가 바라본 우토로는 사라질 마을이 아니었다. 우토로 사람들에게선 강제 퇴거에 대한 위기감보다는 삶에 대한 낙천주의가 읽혔다. 할머니들은 우동을 들고 이웃에 찾아가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며 인사했다. 일본 사회에서는 1960~70년대 이후 사라진 풍경이다.
“일단 우토로를 아는 일본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가능성이 보일 거예요. 물론 8·15가 되어도 과거사 숨기기에 급급한 일본 언론들을 믿어서는 안 되지만요.”
히라노는 치바현 치바시립 기시로다이히가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일본 역사교육자협회는 1945년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역사 교육에 어떻게 접목시킬까를 고민하면서 결성됐다. 1년에 한번씩 전국의 역사교사들이 모여 전국대회를 연다.
이 협회의 소모임인 일-한 교류위원회는 한국의 역사교사 모임과 함께 1년에 한번씩 수업 실천 사례를 발표하며 ‘한-일 역사교류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교류모임은 내년으로 예정돼 있는 한-일 공동 역사 부교재 출판사업과 함께 우토로 마을 돕기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 8월14일 우토로국제대책회의를 방문해 소정의 성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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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소식]
우토로 문제에 미적거리는 한국 정부에 시민단체가 발끈하고 나섰다.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지난 8월26일 낮 12시 서울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에게 우토로 문제의 해결 방안을 즉각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직까지 일본 중앙정부는 물론 교토부, 우지시 등 해당 지자체가 단 한번도 우토로를 방문하거나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다”며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정부가 취하고 있는 ‘인도적 차원의 외교적 노력을 통한 해결 방식’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정부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들먹인다거나 한일협정 재협상을 시사하는 등 역사적 관점에서의 접근은 합리적 해결을 방해한다며 일본 정부에게 주거권 차원에서 우토로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아무런 ‘대답’을 보내오지 않는 것처럼 이런 접근법은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게 우토로국제대책회의의 시각이다.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우토로 땅 매입 비용의 부족분 충당 여부와 그 방식 △우토로의 평화와 역사 박물관 건립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다.
김경남 우토로국제대책회의 공동대표는 “우토로는 일본 정부가 주장하듯이 민법상 해결된 문제도 아니고 민간과 민간 간의 문제가 아닌, 과거청산과 관련한 한-일 양국 간의 문제”라며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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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내신 성금이 우토로 주민의 강제퇴거를 막을 수 있습니다. 성금이 한푼두푼 쌓일 때마다 우토로의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가 느끼는 부담은 커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우토로를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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