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란전담재판부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된 상황은 당혹스럽다. 결국 이번에도 대통령실이 나서면서 여당 내 논란이 정리되는 장면이 재연됐다. 이 과정을 짚어보면, 법안의 위헌성 논란과 별개로 내란전담재판부를 둘러싼 정치가 각자의 좌표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보도만 보면 정권과 여당이 내란전담재판부에 사활을 건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란전담재판부에 해당하는 아이디어가 입법으로 제기된 것은 2025년 7월이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란특별법을 발의한 것인데, 전당대회와 윤석열 재구속 이슈의 영향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이보다는 검찰·사법 개혁 논의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시기 대통령실과 여당의 ‘엇박자’ 논란도 불거졌다. 대통령실의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개혁을 추진하자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전당대회에 이은 지방선거 대응이라는, ‘선명성 경쟁’이 핵심일 수밖에 없는 정치 일정 과정에 있는 여당으로선 소화가 쉽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놓고 “그게 왜 위헌이냐”라고 말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제 이 사안은 당정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재인 것처럼 비쳤고, 그 덕에 논의에 다시 속도가 붙었다.
당시 대통령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나라를 통치하는 데 야당 대표 시절처럼 할 수는 없다. 개혁을 추진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고, 정치적 상징성만 챙기는 게 아니라 제도가 실제 작동하도록 해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여당에서 논의하는 모든 일에 개입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당무 개입’ 등 정치적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결국 큰 방향은 가리키되 쟁점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건 최소화해야 한다. 대통령이 ‘내란전담재판부를 추진하자’는 것 이상의 얘기를 꺼내지 않은 건 이런 이유일 터이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손 놓고 있을 사안은 아니다. 대통령실은 법안 발의 당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위헌성 시비를 없애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여당에 전달했다고 후에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후 내란전담재판부 논의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어느 정도 입법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줄기각되는 판국에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일이 다가오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위헌성을 제거하자는 논의와는 차이가 있는 내용의 안을 12월3일 법사위 전체회의 의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해버렸다. 이 과정에 당 지도부는 사실상 배제된 듯하다. 법안의 본회의 제출을 앞두고 여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법안 내용을 다시 따지는 이례적 사건이 벌어진 이유가 이것이다.
여당 법사위원들의 태도는 이후 지방선거 후보자 경선 등을 의식한 결과로 볼 때만 이해가 된다.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이 출마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나머지 법사위 핵심 구성원들도 출마 예정자로 자천타천 거론된다. 법안의 완성도보다 지지층 내의 화제성을 중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안 나올 수 없는 구조다.
2025년 12월7일 대통령실이 ‘6개월 성과 기자간담회’에서 “위헌 소지 최소화”를 다시 거론한 것은 이 맥락이다. 이번엔 당 지도부도 대통령실과 크게 뜻이 다르지 않아 보였다. 12월8일 정책의총 상황을 보면 여당 내 지배적 분위기는 ‘법사위 안으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사법부는 물론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등도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여당이 법사위 안을 그대로 밀어붙이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립된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위헌성을 최대한 제거한 형태로 다시 추진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련의 상황에서 분명해진 것은 여당의 방향을 주도하는 힘이 결국 대통령실에 있다는 사실이다. 여당 의원에게 중요한 것은 대통령 의중과 지지층 여론, 곧 ‘명심’과 ‘당심’이다. 여당 법사위원들은 앞서 이유로는 ‘당심’을 내세웠으나, 의원총회에서 발언한 다수는 ‘명심’을 방패로 이에 맞선 모양새다. 정청래 대표는 ‘당심’을 타고 대표직을 거머쥐었으나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에선 양쪽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 그러나 당내 기반이 약해서인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 ‘1인 1표’ 도입 무산 사태가 이를 방증한다. 결국 평소에는 자제하고 있는 ‘명심’이 방향을 가리켜줘야 일이 정리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플레이어는 조국혁신당이다. 조국혁신당은 ‘쇄빙선’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사실상 ‘강경파’를 자처해왔다.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선명성을 부각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선 위헌 우려를 거론하며 법안 수정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이미지의 도식으로 보면 ‘강경’보다는 ‘온건’인데, 이러한 행보는 앞서 민변·참여연대와 함께 여당 내 강경파의 고립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충정도 있겠지만, 정당 행보 분석에는 정파적 셈법을 빼놓을 수 없다. 차별화 관점에서 보면 조국혁신당 행보가 일차적으로 이해되는 면이 있다. 사실 많은 유권자에게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방선거에서 승부를 보려면 일부러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강경’의 자리엔 이미 여당 법사위원들이 있다. 더 ‘강경’한 이미지로 가긴 쉽지 않다. 이럴 땐 ‘온건’으로 방향을 트는 게 정답일 수 있다.
여기서 ‘명심’과 ‘당심’을 기준으로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 지지층의 비판을 받아왔다.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사면을 단행했는데 고마운 줄 모르고 자기 정치에만 몰두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조국혁신당의 입장은 모처럼 ‘명심’과 코드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여당 지지층은 불쾌한 기색이지만, 민주당 지지층이 양분되는 상황에서 이런 전략은 장기적으로 조국 대표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 지지층의 거부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명심’을 방패로 조국 대표의 존재감을 다시 부각하고, 지방선거 대비 차별화에 나서면서, 원내 전략에선 법안 처리 협조를 고리로 교섭단체 기준 하향 등 실리를 얻어내려는 방향에 가깝다. 물론 이런 수가 성공을 거두느냐는 별개 문제일 터인데, 흥미로운 건 여기서도 결국 중심이 되는 건 ‘명심’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스스로 제왕으로 비치는 것을 꺼리는 권력이 한국 정치에선 왜 제왕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내란전담재판부든 아니든 7월부터 성실히 논의했다면 지금쯤 실효적 결론이 이미 나오지 않았겠는가. 염불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나올 법하다. 제왕의 뜻이 없으면 스스로 문제 해결을 못하는 정치는 더 이상 곤란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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