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 종가 기준 4000선을 넘은 2025년 10월2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 코스피·코스닥 지수와 삼성전자 주가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 4000 시대가 드디어 열렸다. ‘3000피(p·포인트)’ 때도 떠들썩했지만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정권이 코스피 5000 시대를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4000피’를 달성하자마자 증권사와 투자사들도 2026년엔 코스피 5000포인트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보고서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4000피’의 비결은 정부 정책과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있다. 소액주주 출신인 대통령이 이끄는 자본시장 친화적 제도 개선이 한껏 분위기를 띄운 가운데, 인공지능(AI)을 등에 업은 아이티(IT) 거물들의 공격적 투자가 국내 반도체 관련 업체들에 호재가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과 대형주가 이끄는 시장은 한계가 있고, 소액 투자자들의 중소형주 투자 흐름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주식 부양의 분명한 신호에도 과거 ‘동학개미’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 입을 모아 긍정적 전망을 말하고 있으므로, 개미들이 돌아오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정치적 해석이 가미될 만한 대목도 눈에 띈다. 조선일보 2025년 10월28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주가 급등기에 중장년층 여성의 수익률이 높았고 남성은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령대별 투자 행태 차이에서 기인했다고 추측되는데, 중장년층 여성의 우량주를 사서 오래 묻어놓는 투자 방식이 유효했다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20·30대 남성의 수익률이 가장 낮았고, 남성이 가장 많이 투자한 종목이 ‘KODEX 200선물인버스2X’ 상장지수펀드(ETF)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더 정확한 데이터를 확인해야겠지만, 이들의 경우 이재명 정부의 자본시장 친화적 정책의 효과를 믿지 않아 주가 하락에 ‘베팅’했고, 결국 주가가 올라 손해를 본 게 아니냐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유독 낮은 20·30대 남성 유권자층의 현 정부 지지율까지 포함해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는 얘기다.
이러한 추론은 ‘4000피’ 시대가 모두에게 똑같은 행복을 안겨주지는 않는다는 통찰을 다소 낮은 수준에서 제공한다. 여기서 그치지 말고 성별, 연령, 정치 성향, 정파를 떠나 ‘4000피’로 상징되는 이 시대가 우리에게 어떤 삶의 자세를 갖게 하는지를 좀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최근 두드러지는 것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다.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는 시대는 현금 가치 하락을 예고한다. 남들이 다 돈 벌 때 가만히 있으면 손해라는 것이다. 투자 전문가들의 부추김과 무엇이든 과시하는 소셜미디어 문화 덕에 이런 인식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비슷한 감각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정부의 6·27 대책, 10·15 대책 발표 이후 거래량이 크게 줄었지만 전문가들은 후속 대책이 없으면 집값은 다시 오를 거라고 전망한다.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심리적 충격을 줄 정도의 대규모 공급 계획을 내놓는 것이고, 둘째는 보유세 인상과 거래세 인하 등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문제는 둘 다 묘수가 없다는 점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적절한 후보지가 있느냐도 의문이고, 계획을 내놔도 공급이 실제 언제 이뤄질지 수년은 두고 볼 일이다. 고가 주택 소유자의 경우 보유세를 강화해도 ‘정권 바뀌면 철회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버티는데, 정권 따라 바뀌는 부동산에 대한 비일관적 조세 정책은 이들에게 그 판단이 옳다는 학습효과를 이미 안겨줬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보유세 강화가 강력한 정치적 반대로 직결되는 환경이 존재한다. 현 정부·여당이 유권자 구성에서 불리한 서울에 큰 영향을 주는 보유세 강화를 강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조건을 다들 알기 때문에 ‘집값은 결국 다시 오를 거고, 지금 집을 안 사면 뒤처진다’는 인식을 버리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이 난제를 뚫고 결국 방법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도대체 우리에게 부동산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됐는가?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지위 상승의 수단을 상징한다. 중산층은 아파트 갈아타기를 반복해 ‘상급지’로의 진출을 단계적으로 시도한다. 이를 통해 자산을 불리는 동시에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것, 즉 축적된 지위 상승의 가능성을 대물림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그런데 이 과정 전체는 경쟁의 맥락 안에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래로부터의 도전을 물리치면서 아등바등 위로 올라가야 한다. 때를 놓치지 말고 고지를 재빨리 선점해야 남보다 우위에 설 수 있으며, 반대로 한번 낙오되면 원래 지위를 복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모두가 위를 향해 기어오르는 세계관에서 제자리에 있는 사람은 저절로 뒤처진다. 그러니 다들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집을 구매해 강남 아파트를 향한 ‘갈아타기’를 반복해야 한다. 부동산 대책이 늘 ‘집을 살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세상에서 “집을 사지 않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철없는 사람이나 하는 말이다. 세입자 권리 강화를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다 죽자는 것”이라는 핀잔을 듣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물론 세입자 권리 강화를 반드시 ‘3+3+3법’ 같은 형태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안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부동산 시장 변화에 따른 부담은 결국 세입자를 비롯한 약자가 떠안게 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최근 13년간의 데이터를 봤을 때 소득불평등은 점진적으로 줄고 있으나 자산 격차가 불평등의 핵심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내용이다. 국가데이터처는 최근 ‘2023년 소득이동통계’에서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는 경우와 고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하는 경우가 모두 줄고 있다고 발표했다. 양극 계층이 고착화되는 셈이다.
이러한 연구와 통계에 숫자로 등장할 때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낙오자’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해결책을 줄 수 있을까? ‘4000피’ 시대는 ‘머니 무브’를 해답으로 제시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저소득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장년층과 노인들에게 “부동산을 통한 부의 증대에는 실패했으니 주식투자를 통해 만회하라”고 할 수 있을까?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과로사한 젊은 노동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주식투자로 돈을 모아 지위 상승을 향한 경쟁 대열에 합류하라”고 하는 게 옳은 일일까?
투자가 죄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으니 우리 정치가 시야를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는 자기 책임, 즉 ‘각자도생’이다. 15년 전쯤에도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 세계관의 문제를 말했다. ‘이익이 곧 선’이라는 투자 감각이 모든 걸 뒤덮는 현실은 우리가 아직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4000피’ 시대의 민낯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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