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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집단 반발, 그들만의 ‘허락된’ 관제데모

‘전관수임 떨어질라’ 밥그릇 지키기…수뇌부가 용인하고 부추긴 ‘검사 집단행동’ 반복의 역사
등록 2025-10-17 11:41 수정 2025-10-20 07:37
2022년 4월20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임진철 검사(서울중앙지검)가 검찰 수사권 축소 입법에 대응하기 위해 열렸던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4월20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임진철 검사(서울중앙지검)가 검찰 수사권 축소 입법에 대응하기 위해 열렸던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9월30일 김건희 특별검사팀(민중기 특검)에 파견된 검사 전원(40명)이 입장문을 발표했다. 9월26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검찰청이 해체되고 검사가 직접 수사에서 배제된 것을 두고 “혼란스럽다”고 불만을 표출하면서 검찰로 조기 복귀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검사들의 ‘의견 표명’이지만 배경을 들여다보면 제 밥그릇 지키기를 위한 ‘관제데모’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이후 시도돼온 검찰개혁에 반복적으로 집단 반발을 하면서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은 역사를 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1997년 영장실질심사 개선 때도 “범죄 천국” 반발

“그간 검찰에서 집단 반발한 사례들을 한번 짚어보세요. 대부분 수뇌부와 생각·의견이 일치할 때 수뇌부 입장을 대신 말해주는 식의 관제데모나 대리전같이 이뤄져요. 이런저런 이유를 들지만 결국은 조직 권한이 조금이라도 줄지 않도록 민감하고 비장하게 반응해왔죠. 검찰에선 조직 권한이 곧바로 ‘나’의 권한이라 받아들여지는 거죠.” 판사 출신 ㄱ변호사가 말했다.

이렇듯 일선 검사들이 먼저 목소리를 낸 뒤 검찰 수뇌부가 이를 이어받아 “책임에 통감한다”며 의견을 표명하거나 사퇴하는 건 검찰의 오랜 집단행동이 보여주는 양상이다.

2022년 4~5월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기존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 범죄로 축소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있었던 일이 대표적이다. 일선 검사들의 반발을 시작으로 김오수 당시 검찰총장이 2022년 4월17일 사표를 냈다. 전국 평검사 대표 207명은 4월20일 입장문을 내어 “(이번 개정안으로) 검사의 두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어 ‘범죄는 만연하되, 범죄자는 없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반발했다. 당시 검찰의 격한 반발은 퇴직 후 일자리를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검사들의 권한이 축소되면서 변호사가 됐을 때 사건 수임 시장이 변화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2023년 기준 접수된 형사 사건(160만3428건) 가운데 정식 재판까지는 가는 사건은 12.9%다. 수사 단계에서도 변호사 선임이 이뤄지는데, 검찰이 기소만 담당하면 검사 출신 전관들의 수사 단계 사건 수임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2011년 6월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인정해주고, ‘수사지휘’라는 용어를 ‘수사협의’로 바꾸는 등의 내용으로 행정부 내에서 비교적 가벼운 수사권 조정 논의가 이뤄질 때 나온 검찰의 반발도 눈에 띈다. 일선 검찰청 평검사들은 건의서 형태로 “수사지휘권을 흔드는 건 국민 인권 보호 후퇴”라며 일제히 반발했다. 이 때문에 결국 수사지휘권 강화 쪽으로 개혁 방향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검찰권 견제 목적으로 관련 시행령을 법무부령 대신 법무·검찰 밖의 대통령령으로 두기로 하자, 이에 항의해 홍만표 검사장(대검 기획조정부장)을 비롯한 대검찰청 간부들이 줄사표를 냈고, 결국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다시금 “조정안에 반대한다”고 강조하며 사퇴했다.

검찰의 반발 내용이 국민 정서와 지나치게 동떨어진 경우도 많다. 1997년 서류심사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다가 대면심사를 하도록 개정한 영장실질심사제도에 대해 서울지검 평검사들은 “검사가 청구한 영장을 판사가 임의로 기각해 범죄인 천국이 돼간다”고 반발했다. 2003년 3월에는 판사 출신인 젊은 장관(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고, 곧이어 기수·서열 파괴 검사장 인사가 이뤄지자, 일선청 검사들은 일제히 “검찰 일체감과 책임구조가 붕괴됐다” “검찰총장에게 인사권을 넘기라”며 반발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검사들의 공격적인 태도가 텔레비전에 생중계된 일까지 겹쳐 ‘검사스럽다’(‘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데가 있다'는 뜻)는 말이 국립국어원 신조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그간 검찰 반발들을 보면 (수사권, 지휘권 등) 권한은 자신들이 우월해서 당연히 가지는 것이라는 특권 의식이 드러난다. 개혁 대상이 됐다는 건 그동안 자기들이 권한을 남용하는 등의 문제 때문인데, 반성이 없다”며 “이번 특검 파견 검사들의 항명 사태도 마찬가지다. 일부분만 강조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수사를 열심히 하는데 수사권을 뺏어가냐’고 언론플레이 등으로 맞서려 한다. 일반 공무원의 의견 표현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는 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꼬집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9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전국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서울지검 허상구 검사의 질문을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9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전국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서울지검 허상구 검사의 질문을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선 검사들 주장하면 개혁 같아” 모의 들통

관제데모 모의가 들통난 일도 있었다. 2012년 11월 성비위 검사, 스폰서 부장검사 등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까지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를 공약하는 등 검찰개혁 여론이 고조됐다. 일선청 평검사들의 집단 반발 릴레이가 시작됐다. 한 검찰청 소속 윤아무개 검사가 대검에 있던 김아무개 검사(검찰연구관·윤석열 정부 검사장)에게 보낼 문자를 이름이 비슷한 한 일간지 기자에게 실수로 보내면서 ‘관제데모’ 논란이 불거졌다. “일선 검사들이 평검사회의를 개최해 주장하면 진정한 개혁안처럼 비치고, (검찰)총장님이 정말 큰 결단을 해서 개혁안을 수용하는 모양새가 좋다” “개혁을 하는 것처럼 하면서 우리(검찰)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였다. 이 문자가 공개된 뒤 줄줄이 예정됐던 일선청 평검사회의는 모두 취소됐다.

그간 숱한 추문에도 집단적인 내부 자정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검찰의 집단 반발이 뚜렷한 방향성을 지닌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현직 검사 ㄴ씨는 “가까운 예로 2018년 안미현 검사의 강원랜드 외압 폭로나 서지현 검사 미투 폭로 때를 봐라. 한 간부(정유미 당시 부장검사·윤석열 정부 검사장)는 서 검사를 두고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며 “그런데 2016년 김홍영 검사가 (김대현 부장검사에게) 폭언·폭행을 당하다 사망했을 때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김 검사의 검사 동기들조차 성명을 못 냈다. 지휘라인과 수뇌부에 부담 주는 걸 극히 꺼린다”고 말했다. ㄴ씨는 이어 “(이후 김대현 부장검사 등에 대한) 감찰과 수사 과정에선 시간을 끌거나 가해자 편에서 사건을 축소하기도 했다”며 “오직 조직 권한 축소 때만 목소리를 내니 국민을 포장지로만 내세운 것 아닌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현직 검사 ㄴ씨가 말하는 김홍영 검사 사건은 2016년 5월19일 김 검사가 사망하면서 발생했다. 이 과정에 김대현 부장검사로부터 폭언·폭행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족이 탄원서를 제출(6월1일)했지만, 대검은 사건 한 달이 훌쩍 넘게 지난 6월27일에야 묵인·방조 책임이 불거졌던 김진모 당시 서울남부지검장에게 자체 조사를 지시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7월2일 감찰에 착수했지만, 정병하 당시 감찰본부장은 “언론 등에서 제기된 폭언·폭행은 모두 사실이지만 사회상규상 폭행은 아니다”라며 김 부장검사를 해임 처분했을 뿐 기소하진 않았다. 사건 발발 3년5개월 뒤인 2019년 11월 대한변호사협회가 김 부장검사를 고발하고서야 사건이 배당됐다. 그래도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11개월이 지난 2020년 10월 수사심의위원회의 기소 권고를 받고 마지못해 김 부장검사를 재판에 넘겼다.

재판 기록을 보면 김홍영 검사의 폭언·폭행 피해를 목격한 동료 검사들은 재판 과정에서 “술에 취해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폭행의 의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어떤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등으로 가해자 편을 들었다. 그래도 2심 재판부는 ‘악의·해의(해칠 의도)가 있었는지는 폭행죄 성립의 요건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김 부장검사는 2023년 3월 징역 8개월 형을 받았다. 김홍영 검사 사망 7년 만에 나온 재판 결과였다. “이런 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검사들이 폭행 사건 하나 제대로 판단 못한다는 말밖에 안 되잖아요.”(현직 검사 ㄴ씨)

 


법관회의와는 다른 평검사회의의 의미

평검사회의는 수뇌부와 법원 내부를 겨냥해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는 하의상달식 법관회의와도 구분된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2019년 11월 제도화된 법관회의와 같이 ‘평검사회의·수사관회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라고 권고했지만, 검찰은 이 권고를 특별한 이유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직 검사 ㄴ씨는 “‘평검사회의’라고는 하지만 관련 근거가 없다. 많은 검사가 업무시간에 모이려면 소속 검찰청 검사장들이 반드시 오케이 해줘야만 한다”며 “조직 수호 내용이 아니면 집단행동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게다가 검찰의 집단 반발이 지금껏 단 한 번도 감찰 내지 처벌 대상 혹은 인사 불이익 사유가 된 적이 없다는 점도 주목된다. 다른 공무원 사회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가 행정안전부 내에 경찰국을 신설하려 할 때 총경 회의를 주도했다가 정직 3개월 중징계 처분(품위 손상 등)을 받은 류삼영 전 총경이 대표적이다. 류 전 총경은 징계 취소 소송을 했지만 ‘시행령 개정이라는 정책 행위에 반대 의견을 표시한 점’ 때문에 1심(2024년 4월)에서 ‘징계는 정당했다’는 판단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 축소 법 개정에 반발한 검사들에 대한 감찰은 개시조차 되지 않았다.

부장검사 출신 ㄷ변호사는 “집단행위 금지(국가공무원법 제66조)나 품위 손상(제63조)에 해당한다고 보이는 평검사들의 집단행동도 검찰 수뇌부와 같은 생각이라는 점에서 감찰·징계가 진행될 리 없다”며 “설사 감사원이나 법무부가 고발하더라도 기소 여부는 검찰이 하게 돼 있다. 기소할 리 없으니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ㄷ 변호사는 이어 “검찰 권한 축소에 반대했으니 내부에선 ‘훌륭한 검사’ ‘용기 있는 검사’ 소리 들으면서 정권에 상관없이 승진하고, 검사를 그만두고 나가더라도 예우받고 큰돈을 번다”며 “홍만표(전 검사장·2011년 수사권 조정에 반발해 사퇴)가 2016년 적발됐을 때를 보자. 어떻게 한 해 100억원의 수임료 수익을 올렸겠는가. 많은 대기업이 검사 출신 임원을 선호하는 것도 다 검찰이 힘이 세기 때문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부장판사 출신 ㄹ변호사는 김건희 특검 파견 검사들의 입장문을 두고 “(국회의) 입법적 결단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행동은 (검찰의) ‘공무 밖의 일’이라고 평가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공무가 아닌 일에 대해 집단행동을 했으니 국가공무원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ㄹ변호사는 아울러 파견 검사들이 입장문을 내기 전 △내부 의견 개진 등 과정이 있었는지 등 목적의 정당성 △(입장문을 내기 전이나 직후에) 곧바로 언론플레이를 한 건 아닌지 등 수단·방법의 적절성 △대검·정치권 등 외부와의 공조 여부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만표의 100억원 수임료가 말해주는 것

“(검찰의 집단 반발과 그 처리 문제는) 기본적으로 검사들의 조직 문화나 공직관, 자기 사상의 문제잖아요. 공직 수행 의지가 전체적으로 오염됐거나 탈락한 것으로 보여요. 조그마한 빌미만 줘도 언론플레이도 하고 정치권하고 연결해 이슈화하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바로잡히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습니다. (특검이) 징계 의뢰를 하고 조사도 해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대검 감찰부장을 지낸 한동수 변호사가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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