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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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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포퓰리즘’의 굴레와 ‘저항 서사’의 늪

지지층 분화하는 민주당, 기회 와도 ‘윤 어게인’ 머무르는 국힘…민주주의 없는 정치 난맥상
등록 2025-09-25 21:22 수정 2025-09-29 17:15
유엔 총회 참석차 출국하는 이재명 대통령(앞줄 오른쪽)이 2025년 9월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로 향하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화하는 모습을 김병기 원내대표가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 총회 참석차 출국하는 이재명 대통령(앞줄 오른쪽)이 2025년 9월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로 향하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화하는 모습을 김병기 원내대표가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권에 반대한다는 국민의힘의 태도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가령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025년 9월21일 대구 동대구역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재명을 끝내야 한다”고 했다. 꼭 장 대표가 아니더라도 국민의힘 인사들이 ‘탄핵’을 연상케 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한 지 이제 100일이 조금 지났다. 여론조사상 국정수행 지지율도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끌어내리자는 식의 태도는 대다수 유권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색깔론으로 다시 만난 친극우와 반극우

놀라운 것은 ‘윤 어게인’ 등 보수정치 내 극단적 분파를 대변하는 국민의힘 주류만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당대회 국면에서 국민의힘의 우경화 등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왔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극단적 주장을 내놓기는 마찬가지다. 한 전 대표는 당내 노선 투쟁의 맥락에서 메시지를 내놓는 것은 사실상 포기한 듯한 모습으로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이슈파이팅에 몰두하고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배임죄 폐지를 거론하자 이 대통령 재판이 재개될 경우 유죄 선고 가능성이 커져 면소 판결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는 게 대표적이다. 이러면 생산적 방식의 정책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그래도 한 전 대표의 메시지는 장 대표 같은 부류와는 결이 다르지 않으냐는 반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동훈식 이슈파이팅과 장동혁 스타일의 선동은 어떤 면에서 본질을 공유한다. 가령 한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이 대북 정책에 대해 한 발언을 비판한 걸 보라. 한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비핵화 3단계론’을 비판하면서 “단계별 비핵화는 결국 그 중간 과정에 북한에 퍼주고 싶다는 뜻” “이재명 대통령은 대북 송금 사건으로 북한 김정은에게 단단히 약점 잡혔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색깔론과 연결한 것이다. 장 대표가 대변하는 극우적 정권 비판론도 “대한민국이 인민독재로 달려가고 있다”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이 원하는 나라는 결국 중국과 북한”이라는 식의 색깔론적 세계관으로 귀결된다. 한쪽은 ‘친극우’를, 다른 한쪽은 ‘반극우’를 표방하는 것 같지만 결국 ‘색깔론’이라는 보수정치의 고전적 프레임에서 만난다.

최근 보수정치 전반이 일제히 공세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특검 수사 등을 의식한 방어 성격도 있지만 반격 혹은 역습에 가까운 자기 인식 또한 작용한 것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와 ‘독재 대 자유민주주의’ 구도를 색깔론과 연결하기에 적절한 때를 만났다고 판단한 듯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보는 이유는 여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를 공격하는 과정에 틈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법원장 사퇴론’ ‘4인 회동설’에서 보인 틈

근래 민주당 안팎을 흔든 것은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론이다. 이 논란은 특검법 개정 국면에서 각자의 입장차를 봉합한 직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추미애 의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대통령실이 “원칙적 공감”을 언급하고 정청래 대표가 호응하면서 조 대법원장 사퇴론의 파급력은 더욱 커졌다. 부담을 느낀 대통령실이 뒤늦게 진화를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조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과 만나 이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재판을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다는 이른바 ‘4인 회동설’이 부승찬 의원 등에 의해 공개적으로 다시 거론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여당 소속 법사위원들이 조국혁신당 의원들과 함께 조 대법원장 청문회를 하기로 한 것은 의구심을 키우는 일이다. 이 시점까지 4인 회동설을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당은 적어도 이 의혹과 관련해선 퇴각을 선택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4인 회동설은 회동 여부 그 자체보다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이나 윤석열 구속 취소 결정 등이 문제의 본질이니 여기에 집중하자는, ‘본질설’로 대체되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 사법부 수장에 대한 국회 출석을 요구하는 청문회 강행은 맥락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앞서 4인 회동설을 둘러싼 논란이 없었다면 청문회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나름의 독립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4인 회동설을 둘러싼 논란이 이미 선행한 이상, 언론과 여의도 이야기꾼들은 이 의혹의 핵심 증거나 증언을 확보했는지가 청문회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고 여길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상황에 진전이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청문회가 상황을 다시 4인 회동설의 늪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추 의원을 중심으로 한 여당 소속 법사위원들이 지도부와 협의 없이 청문회를 강행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니 맥락이 맞지 않을 수밖에. 조 대법원장 사퇴론에 드라이브를 거는 건 대개 지방선거 출마가 예상되는 이들이다. 지방선거를 의식한 주요 인사들이 강경론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당 지도부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올 법한 대목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도부 일부 인사도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에 포함된다. 그렇다고 청문회를 강제로 중단시킬 수도 없으니 정청래 대표는 ‘원팀’이라도 챙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태의 진원지인 추 의원에게 당 지도부가 경고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에 언론이 갈라치기를 해선 안 된다며 반발하면서도, 당 지도부와 일정을 공유해달라는 취지의 통화를 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집권세력의 ‘저항 서사’가 가지는 한계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집권세력 내에 존재하는 통치와 저항 사이의 긴장이다. 그 진위를 떠나 조 대법원장이 기득권과 손잡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대선 후보를 제거하려고 했다는 인식은 저항의 서사에 기반하고 있다.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은 이러한 ‘기득권에 대항하는 개혁’이라는 저항 서사로 지지자를 조직해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려 한다.

원내지도부를 포함해 여당 핵심부가 이런 움직임에 일부 당혹감을 느낀 것은 집권세력 특성상 저항 서사를 통치 논리보다 항상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사법부 수장에게 사퇴 압박을 가하는 것은 통치 논리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에 가깝다. 통치 명목상 책임자 구실을 해야 하는 대통령 처지에서 보자면 이 딜레마의 압박은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온다. 가령 지방선거 압승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따라서 당 소속 의원들의 지방선거를 겨냥한 움직임을 강하게 통제할 것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움직임을 용인함으로써 발생하는 통치 논리의 유실은 두고 볼 수만 없는 문제다. 검찰개혁 방법론, 특검법 개정, 조 대법원장 문제 등에서 대통령실,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개별 의원들의 입장이 엇갈리는 모양새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이는 포퓰리즘을 둘러싼 대립의 전형처럼 보인다. 가령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여당 인사들의 행동 양식은 무능하고 부패한 기득권과 이에 저항하는 성난 군중을 가르고 자신을 성난 군중을 대변하는 자의 위치에 놓는 포퓰리즘적 문법의 자장 안에 있다. 반면 통치 책임을 지는 존재로 자신을 규정해야 하는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는 이와는 결이 다른 통치-엘리트적 시각에 상대적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비주류로서 저항 서사를 개혁 담론으로 연결하는 방식의 정치를 해왔다. 이 때문에 민주세력 집권기에 통치 논리와 저항 서사가 갈등을 빚은 사례가 왕왕 있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신비한 현상처럼 조명되는 집권세력 내 ‘지지층 분화’는 이러한 구도 자체가 팬덤정치의 방식으로 재생산된 결과다. 대통령의 통치-엘리트적 고충을 이해해야 한다는 지지층과 개혁 전선에서 후퇴할 수 없다는 지지층이 충돌하는 것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025년 9월21일 대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야당 탄압, 독재 정치 국민 규탄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025년 9월21일 대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야당 탄압, 독재 정치 국민 규탄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극우 포퓰리즘 못 빠져나오는 국힘

국민의힘으로서는 집권세력 내의 이러한 난맥상은 자신들이 통치-엘리트로서 좀더 나은 자격을 갖춘 존재라는 것을 보여줄 기회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앞서 짚었듯 이 상황을 그런 기회로 활용하지 않는다.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가 보여주는 국민의힘의 태도 역시 포퓰리즘적 문법을 철저히 따랐다. 이들의 포퓰리즘은 극우적 정치관을 이용하거나 그것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극우 포퓰리즘’이다.

왜 이럴까?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포퓰리즘적 정치를 활용하던 세력도 집권하고 나면 통치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극우 포퓰리즘적 캠페인으로 권력을 손에 쥔 윤석열 정권은 집권 이후에도 집권 전과 같은 태도를 고수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보수정치는 통치 논리를 정치세력으로서 구현하는 방법을 망각했다. 국민의힘은 이렇게밖에 할 줄 모르는 정치세력이 됐다. 이게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할 리 없다.

물론 세력은 개인과는 다르다. 경험보다 조건이 우선한다. 결국 집권세력의 혼선이나 보수정치의 무능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상태와 무관치 않다. 지방선거 준비에 몰두하는 여당 인사들, ‘윤 어게인’을 무시하고 갈 수 없는 장동혁 대표, ‘제2의 유승민은 될 수 없다’며 자신만의 계산법에 빠져 있는 한동훈 전 대표는 지지층의 수요 충족 논리를 따르는 선거-기계의 역할에 충실한 것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은 정치 개혁이 민주적 주체의 형성 또는 변화와 결코 무관치 않다는 사실이다. 즉, 오늘날 정치를 바꾸고 싶다면 참여와 책임에 기반하는 민주주의를 더 심화하고 실질화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우리 정치의 갈등선은 ‘통치-엘리트 대 무책임한 포퓰리즘 대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삼각구도 사이에 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은 통치-엘리트와 무책임한 포퓰리즘의 대립 구도만 눈에 보인다. 오히려 그 사실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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