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요구하는 국회 청원 참여자가 100만 명을 넘겼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2024년 7월1일 시비에스(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어차피 일종의 정치적 인기투표”라고 했지만, 접속자가 폭주해 대기 시간이 30분 이상인 상황에서도 참여자가 꾸준히 늘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여자가 크게 늘어난 계기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을 둘러싼 논란이라고 한다. 주목할 대목이다.
김진표 전 의장의 회고와 박홍근 의원의 전언을 토대로 추론해보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태원 참사란 ‘정권에 타격을 입히기 위한 좌파의 공작이 의심되는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제이티비시(JTBC) 등 좌파 방송이 핼러윈데이에 이태원에 모이도록 사람들을 선동했고, 의심스러운 자들이 현장에서 실제 사고를 일으켰으며, 전 정권에 의해 고속 승진해 자리를 꿰찬 용산경찰서장은 거의 고의로 인파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일부러 만들어내기도 어려울 이런 주장들은 이태원 참사 직후 이른바 극우 유튜버들에 의해 ‘의혹 제기’라는 핑계로 유포됐다. 김진표 전 의장의 회고가 사실이라면 윤석열 대통령 버전의 ‘이태원 참사’는 극우 유튜브 서사의 종합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경찰은 사태 초기 이른바 ‘의혹’들에 대해 대부분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2년 11월7일 국민의힘 소속 이만희, 장제원 의원 등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경찰을 상대로 음모론적 질의를 이어갔지만, 경찰은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김진표 당시 국회의장을 만나 이태원 참사 관련 언급을 한 것은 이로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난 12월5일이었다. 대통령은 경찰의 공식 보고보다 극우 유튜브를 더 신뢰한 것인가?
대통령실은 일단 부정했다. 2024년 7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이도운 홍보수석은 김진표 전 의장의 회고를 두고 대통령실이 “개탄스러운 왜곡”이라고 한 데 대한 질의를 받았는데, 수차례 명확한 답변을 피하다 마지못해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김 전 의장 회고록 내용의 팩트를 명확하게 부정한 건 지금까지는 이게 거의 유일한데, 이렇게 떠밀리듯 나온 답변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정치는 인식의 게임’이라고들 하는데, “김진표 전 의장이 거짓말을 책에 적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과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많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만일 후자가 더 많다면 그건 윤석열 대통령이 음모론적 세계관에 빠져 있다고 가정할 때 풀리는 의문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참사 이후 검찰과 경찰은 마약 범죄 가능성 등을 이유로 희생자 주검의 부검을 유가족들에 여러 번 제안했는데, 이는 어떻게든 참사의 형사적 원인을 찾으려는 듯한 노력으로 느껴졌다. 이게 음모론적 현실 인식의 맥락에서 ‘배후’를 찾으려는 맥락이었다면? 실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12월8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 같은 데 보면 시신에 문제가 있다, 혹시 마약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가, 이런 우려를 하는 내용도 많이 있다”고 했다.
이런 식이니 대통령이 지나치게 극우 유튜브에 의존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처음도 아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식에 극우 유튜버 및 관계자 30여 명을 대거 초청했다. 극우 유튜버의 인척이 대통령실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된 일도 있었다. 영어 강사 출신의 극우 유튜버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현실이 이러니 김 전 의장의 회고가 사실에 가까울 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왜 극우 유튜브에 빠졌을까? ‘고발 사주’를 ‘제보 사주’로 뒤집어 반격하던 모습에 단서가 있다. 불리한 일이 생기면 잘못을 인정하고 해명한 뒤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게 아니라, 일단 자기 잘못은 외면하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러면서 불순한 배후를 상정하는, 현실을 덮는 큰 그림을 제시해 문제 자체의 맥락을 비틀어버린다. 유행하는 말을 응용해 이걸 ‘석열적 사고’라고 해보자. 이 ‘석열적 사고’에서 대안적 현실, 즉 ‘큰 그림’을 만들기 위한 각종 재료를 공급하는 게 극우 유튜브가 맡은 역할이다. 빼려야 뺄 수 없는 중책인 것이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배후’를 전제하는 정치관은 결국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과 갈라치기식 정치로 표출된다. 정권이 MBC를 가만두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명 체제의 방송통신위원회를 제대로 꾸리고 모범적인 운영을 해보자는 목표 같은 것은 대통령의 인식엔 없다. 법적 논란이 있더라도 2명 체제를 유지해 속전속결로 방송문화진흥회 새 이사를 선임하고, 그간 쌓여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과를 근거로 MBC 사장 교체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 직전 사퇴와 같은 낯 뜨거운 꼼수가 동원됐다. 상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제압해야 하는 어떤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음모론적 세계관을 가진 게 사실이라면, 이러한 편 가르기식 무리한 국정 운영은 전략 전술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이기에 앞으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국민은 그간 언론을 통해, 여론조사상 국정 수행 지지율 추이를 통해, 선거 결과를 통해 여러 번 대통령에게 국정을 이런 식으로 운영하지 말라는 경고를 전달했다. 그럼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느껴지면 더 강한 경고를 보낼 수밖에 없는 거다. 그게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청원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7월2일 “명백한 위법 사항이 있지 않은 한 탄핵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느껴진다. <경향신문>은 6월30일 대통령실의 분위기에 대해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이 “‘노무현 케이스’를 생각해 어차피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테고 역풍이 불면 동력을 찾으려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역풍만 기대하는 정치는 퇴행이고 악순환만을 불러온다. 대통령실은 김 전 의장 회고록 논란과 관련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과감하게 수용했다고 생색냈는데, 그렇게 억울하다면 외면당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여당이 적극 나서도록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해봄이 어떤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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