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과 포탄으로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윤석열 정권의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6월3일 오전 10시 ‘국정 브리핑’을 통해 경북 포항 영일만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은 8분 전에야 기자들에게 공지됐고 약 4분 동안 진행됐다. 대통령 옆에 서 있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매장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정도”라고 했다.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다. ‘석유 가스 테마주’ 주가는 급등했다.
곧바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실제 매장량은 몇 단계에 걸친 시추 과정을 거쳐야 확인 가능하다. 상당량의 자원이 확인되더라도 이 가운데 실제 채취 가능한 게 얼마나 될지, 심해 광구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채산성이 맞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른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그것도 아프리카 10개국 정상 10명과 연쇄 회담이 진행되는 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직접 브리핑에 나선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가령 <한국일보>는 6월5일 “시추 계획 승인이라고 했지만 통상 그런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부처 장관이 전결이나 대결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이러니 무슨 다른 의도가 있지 않냐는 추측이 나오는 거다.
한국가스공사에서 데이터를 넘겨받아 분석한 ‘액트지오’라는 미국 회사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그래서일 거다. 마침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액트지오 본사는 평범한 주택이다. 오해(?)하기 좋다. 논란이 커지자 한국석유공사와 정부는 언론을 대상으로 추가 설명에 나서는 한편 액트지오사의 소유주이자 ‘영일만 석유’의 근거를 제공한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를 급히 한국으로 불렀다.
아브레우 박사의 이력 자체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한겨레>는 6월3일 “상당한 비용이 드는 개발 사업의 시작을 전문기관 한 곳의 분석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액트지오사는 2023년 말 한국에 분석 결과를 회신했는데, 한국석유공사는 국내외 전문가들과 교차검증을 벌인 결과 분석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국일보>는 이날 “액트지오사의 분석 이후 정부 및 석유공사가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자문했을 때도 ‘현재로선 정확한 매장 여부 및 매장량을 알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분명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어떤 소통 과정의 오해이거나 아브레우 박사만 특별히 과감한 결론을 제시한 것일 텐데, 대통령이 갑작스레 ‘국정 브리핑’을 자청한 것과도 관계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정부의 ‘오물 풍선’ 대응에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 있다. 정부는 6월4일 국무회의에서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남북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정지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서북도서 주둔 해병대의 해상 실사격 등을 포함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군사 훈련도 강행하겠다는 태도다.
문제는 이런 조처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가령 2015년 북한은 11년 만의 대북 방송 재개에 반발하며 확성기를 조준해 고사총 1발과 직사화기 3발을 발사한 일이 있다. 만일 이번에도 북한이 이런 식의 대응을 한다면 사태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5월26일 북한의 김강일 국방성 부상은 자신들의 해상 주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수상 수중 자위력 행사”를 운운했는데, ‘오물 풍선’에 더불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의 지피에스(GPS) 전파 교란 공격까지 감행한 걸 보면 이어질 군사적 충돌의 공간적 배경이 서해상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오물 풍선’을 날리는 등 북한의 기행은 단지 대북전단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만 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중국은 한·중·일 정상회의 등을 통해 미-중 갈등 구도에서 나름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북한의 시각으로 보면 이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인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강도를 높여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 구도가 강화되면 반대편에서 중국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여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신들의 새로운 대남 규정인 ‘두 국가 관계론’에 따라 자신들의 영토·영공·영해 개념을 재규정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특히 서해상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각오해야 한다. 결국 군사적 긴장 강도를 높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볼 만한 시점인 거다.
이런 때는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줄 필요가 없다. 대북전단을 날리는 국내 민간단체에 자제와 협조를 요청하고 북한에는 구두로 경고하며 주변국들의 책임 있는 처신을 촉구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해나가는 것이 정공법이다. 그러나 이 정권은 정반대 편의 해법으로 달려간다. 채널에이(A)는 6월4일 북한이 다시 ‘오물 풍선’을 보내는 등의 사태를 일으킬 경우 정부가 직접 대북전단을 날리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에 압박이 아니라 빌미를 주는 게 아닐까? 진지한 대응을 모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러니 이것 역시 뭔가 다른 효과를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총선 대패에도 달라진 게 없고 사법리스크는 계속되는데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앙금 등 문제로 보수층이 분열한 탓이다. 그런데 ‘북한’과 ‘석유’는 보수 유권자층의 단결을 도모할 만한 소재다. 대통령의 ‘급발진’이 여기서 비롯하지 않았느냐는 해석이 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그게 맞는다면 하나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한국 정치의 렌즈로 볼 때 ‘북한’은 ‘공포’로, ‘석유’는 ‘돈’으로 치환된다. 지도자 입장에선 통치를 위해 어느 정도 공학적 접근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느냐는 지도자의 철학과 연관돼 해석될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공포와 돈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본질로 봤다면, 그런 정치관은 천박한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라 믿고 싶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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