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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법’ 부결, 악수 중의 악수

이탈표 단속 성공했지만 ‘방탄 여당’ 민심 역행에 보수층 이탈 가능성까지
등록 2024-05-31 20:30 수정 2024-06-11 14:59
2024년 5월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채 상병 특검법’이 부결되자 국민의힘 쪽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5월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채 상병 특검법’이 부결되자 국민의힘 쪽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연합뉴스


‘채 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2024년 5월28일 제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끝내 부결됐다. 채 상병 특검법은 5월21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국회로 다시 넘어왔지만 이날 재표결에서 찬성 179표, 반대 111표, 무효 4표로 부결되면서 자동 폐기 수순을 밟았다. 본회의 직전 비상 의원총회를 열어 특검법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국민의힘은 이탈표 단속에 성공하며 단일대오를 과시했다.

찬성 179표·반대 111표·무효 4표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추경호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는 막판까지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설득 작업을 벌이며 표 단속에 나섰다. 황 위원장은 5월28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라는 ‘친구의 도리’를 강조하며 의원들의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낙천·낙선자를 위한 대규모 공공기관장 인사 예고나 배신자 프레임 등도 부결 이유로 거론된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는 정국 주도권을 야당에 뺏기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당 전체를 관통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이번 재표결에서 뒤로 한발 물러나게 될 경우 의석수가 더욱 쪼그라드는 제22대 국회에서 야권에 휘둘릴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탈표가 두 자릿수가 넘어갈 경우 여권 분열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지던 상황도 여당 의원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당장에 임박한 선거가 없다는 점 또한 여당이 민심을 비껴갈 수 있는 요인이 됐다.

이러한 선택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채 상병 특검법 부결은 대다수 국민의 기대에 역행한다.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5월25일부터 이틀간 만 18살 이상 시민 10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를 보면, ‘국회가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3.7%가 ‘특검법 통과에 찬성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대 의견은 25.5%였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선택이 보수 유권자층의 지지 이탈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보수 텃밭인 영남에서조차 특검법 찬성 의견이 더 높았다. 부산·울산·경남에선 찬성이 59.6%, 반대가 28.1%였고, 대구·경북에서도 찬성 47.1%, 반대 39.1%로 나타났다. 채 상병 특검법이 부결된 직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해병대 예비역들이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너넨 보수가 아니다. 보수 참칭하는 쓰레기들”이라며 격렬하게 항의한 것은 보수 지지층 분열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보수층·국민 여론과 먼 자충수 가능성

국민의힘이 이번 채 상병 특검법 부결을 주도하며 윤 대통령 방탄에 나선 것은 총선에서 참패한 정당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총선 참패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수직적 당정관계를 개선하며 쇄신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에 여전히 스스로 ‘용산 출장소’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에 대해 정치권 안팎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당과 정부의 지지율 동반 하락을 견인하면서 동시에 야당의 공세를 더욱 강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번 채 상병 특검법 부결이 오히려 윤석열 정권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야당이 함부로 탄핵 이야기를 못 꺼낼 텐데, 저런 식으로 하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점점 떨어지고 야당은 대통령을 더 만만하게 보고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2024년 5월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채 상병 특검법’ 표결을 앞두고 긴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2024년 5월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채 상병 특검법’ 표결을 앞두고 긴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앞길도 더욱 어두워졌다. 채 상병 특검법이 부결되면서 당장 거부권이 무력화하는 상황은 피했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는 대통령의 목을 점점 더 조여오는 상황이다. 특히 2023년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결과가 경찰로 이첩되던 날 윤 대통령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로 세 차례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 사건의 국면을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하고 있다. 그간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의 정황들은 대체로 ‘대통령실 개입’ 중심이었으나 윤 대통령의 직접 통화로 인해 ‘대통령 개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국민의힘이 ‘방탄 여당’을 자처하고 있지만 국면에 따라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당장 8월로 예상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어떤 지도부가 등장하느냐가 관건이다. 잠재적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의 경우 이번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에서 당론과는 다르게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유승민 전 의원도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가장 유력한 당권주자인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우 총선 기간이던 지난 3월 “특검은 수사가 잘못되거나 부족한 점이 드러날 때 하는 것”이라며 한 차례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총선 참패 이후엔 침묵하고 있다. 다만, 그가 최근 정부의 ‘해외 직접구매(직구) 규제’ 논란 속에서 처음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현재 거론되는 당권주자들 가운데 친윤계(친윤석열계)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은 윤 대통령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채 상병 특검법 부결이 몰고 올 후폭풍

이들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설지는 전적으로 국민 여론에 달려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부의 핵심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며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아가는 것이지만 윤 대통령은 이마저도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온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인 국민연금 개편안을 더불어민주당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걷어차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은 5월29일 제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등 4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또다시 야당과 맞섰다. 채 상병 특검법 부결의 후폭풍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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