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8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본관의 좁은 복도는 경찰기동대 7개 중대와 KBS 직원들로 가득 찼다. 직원들은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을 ‘날리려는’ 임시이사회 개최를 막으려 했고, 경찰은 이런 직원들을 끌어냈다. 사흘 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KBS 이사회의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재가했다. 그날 오후 정권의 공영방송 사장 ‘찍어내기’에 분노한 KBS 직원들이 KBS 시청자광장에 모였다. 5년차 아나운서였던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그곳에 있었다. 이날 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한 달 너무 많이 고민해왔다. 언론인으로서 참된 진실과 희망을 알리고자 꿈을 갖고 들어왔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6개월차, 언론탄압이 본격화하던 때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당시 대통령실 대변인이었다. 그는 이후 대통령실 홍보수석과 언론특별보좌관 등을 지내며 주로 언론을 상대하는 일을 도맡았다. 2008년 언론인으로서 이동관 위원장으로 대표되는 언론탄압에 맞선 고 의원은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위원장과 맞서고 있다. 언론인 시절 그의 앞엔 수많은 동료가 있었지만, 지금 그의 앞엔 아무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언론자유대책특별위원회(언론특위)의 위원장으로서, 정치권에서 가장 앞서 이동관 위원장과 두 번째 싸움을 진행 중이다. 고 의원을 2023년 11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터널을 통과하다가 터널 입구가 무너져서 그 안에 갇혀버리는 영화 <터널> 있잖아요? 딱 터널에 갇힌 느낌이었어요. 끝도 보이지 않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 공기는 언제 고갈될지 알 수 없는, 그런 막막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이동관’이라는 이름을 오랜만에 다시 국회에서 들었을 때, 고 의원은 이런 생각을 했다.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었던 이 위원장은 2023년 5월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이 해임되기 전부터 차기 위원장으로 거론됐다.
고 의원은 2022년 7월 방통위를 담당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로 왔다. “언론탄압에 맞서는 싸움이 얼마나 외로운지 잘 알아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상임위였다. 그러나 점차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언론인으로서 재직할 때 선후배들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 “(KBS 선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이 저는 되게 많아요. (동료들이 징계 등으로) 다 잘려나가는 동안 투쟁과 파업을 같이 못해줬거든요.” 이명박 정부 시절 공영방송 탄압이 극에 달했을 때, 그는 공개적으로 비판은 했지만 출산과 유학 등으로 정면에서 싸우지 못했다. 빚을 갚겠다는 생각으로 온 과방위엔 수많은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언론탄압이 본격화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발언 보도 이후 이어진 문화방송(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부터 MBC 세무조사, 와이티엔(YTN) 민영화 등 언론 관련 이슈가 연달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 의원이 민주당 지도부에 언론 관련 특위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제가 지도부이기도 하고 강한 의지를 보였어요. 고집도 좀 피웠고요. MBC 취재 거부 문제로 일단락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사태가 상당히 커질 것 같았거든요. YTN 문제의 경우 YTN 주식을 가진 한국마사회나 한전케이디엔(KDN)이 각각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할이라 한 상임위에서 해결할 수 없기도 했고요.”
2022년 11월16일, 고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언론특위가 출범했다. 특위 출범 뒤, 더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원래 여러 특위가 만들어졌다가 금방 없어지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후로 사건이 너무 많이 생기는 거예요. KBS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 언론사·기자 압수수색도 있었고요. 거기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KBS 이사회에 있는 분들이 부당하게 해임당하기 시작했어요.”
2023년 5월30일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 면직을 시작으로 KBS와 방문진, 방심위 주요 인물들이 대거 해직됐다.(제1479호 ‘이렇게 마구 ‘날리면’ 나중에 어쩌려고’ 참조) 고 의원이 우려한 것은 ‘도미노효과’였다. 방심위나 KBS, 방문진 이사회 구성은 공영방송 사장 선임과 직결된다. 결국 9월12일 KBS 김의철 사장이 해임됐고, 11월13일 박민 사장이 새로 취임했다. 박 사장은 취임 첫날부터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해온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저녁 뉴스 진행자를 교체했다. 취임 이튿날에는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불공정 편파 보도에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사 한 명이 부당하게 해임되면 이게 도미노처럼 계속 무너질 게 너무 뻔하거든요. 저는 그걸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언론인으로서 봤어요. 근데 이게 직접적 민생(관련 사안)이 아니라서 국민이 관심이 별로 없으세요. 언론인들이 들고일어나도 (국민의) 분노를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거든요. 하물며 지금은 더 (언론탄압 강도가) 센 거 같은데 언론인들마저 크게 분노하지 않아요. 당내에서도 이런 건 잘 모르고요.”
대규모 연쇄 날림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윤 대통령은 이동관 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8월28일, 이 위원장이 취임했다. 그는 거침없었다.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음에도 비슷한 이유로 김기중 이사를 해임했고, 권 이사장 해임에 관한 법원의 결정엔 항고했다. 강제해임 뒤 빈자리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공영방송 직원들의 제작 자율성을 훼손한 전력이 있는 인사들로 채웠다. 부당노동행위로 벌금 300만원이 확정된 최기화 전 MBC 보도국장을 교육방송(EBS) 감사로 임명했고, 부당노동행위로 고소당하고 징계받은 신동호 전 MBC 아나운서 국장을 EBS 보궐이사에 임명했다.
언론 압박도 시작됐다. 이동관 위원장은 9월4일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를 두고 “인터넷 매체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며 “수사와 별개로 방심위 등 모니터하고 감시하는 곳에서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독립적으로 방송통신 내용물을 심의해야 하는 방심위는 다음날 이 위원장이 언급한 <뉴스타파>의 보도 민원을 긴급심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사흘 뒤엔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인용보도와 관련해 지상파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의 팩트체크 검증 시스템을 점검하겠다며 KBS와 MBC, 제이티비시(JTBC)에 ‘인용보도 방식 및 팩트체크 확인 절차' 등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다. 언론노조 등 언론 관련 단체들은 “방송사의 취재 및 보도 과정에 대한 개입”이라며 “방송 제작 및 편성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탄핵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동관 위원장이) 시간을 두고 속도조절을 했으면 저희도 속도조절을 했을 텐데, 취임하고 여러 위법 지적에도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당 내부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국정감사 전에 과방위원들에게 잘해야 한다(고 했어요). 당시엔 어떻게 국감을 치르느냐에 따라 탄핵 여부가 결정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고 의원이 말했다.
국감을 거치며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 사이에서 이동관 위원장 탄핵에 대한 뜻이 모였다. 이 위원장이 그간의 지적에 대해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하는 모습, 발언들이 쌓이면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고 의원은 말했다. 그는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 전원이 한마음이 됐다”며 “한 명의 반대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의원총회에서도 큰 반대 없이 이 위원장 탄핵이 당론으로 결정됐다.
민주당이 11월9일 발의한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에는 크게 다섯 가지 이유가 담겼다.(그림 참조) 고 의원은 이 중 방심위에 대한 직권남용 부분과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과 2인 체제로 14건의 안건(11월9일 기준)을 의결한 부분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먼저 “언론사들에 팩트체크 경위를 묻는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검열”이라며 “이 위원장이 ‘가짜뉴스에 대해 방심위 등에서 조치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방심위가 실제 시행한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추천 몫의 2인 체제와 관련해서도 “방통위가 합의제 기구임을 완전히 위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방통위는 “사실관계에 기반하지 않은 정치 공세”라며 반박했다. 고 의원이 언급한 방심위에 대한 직권남용 주장에는 “업무에 관한 원론적인 내용을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직권남용으로 보는 것은 정부기관의 모든 행정행위가 직권남용이라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도 나섰다. 이미 10월 국감 때 “2인 체제 운영은 전혀 위법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일축한 그는 민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에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어떠한 법률 위반 행위도 한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11월9일 이동관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했다. 국민의힘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등에 대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위한 무제한 토론)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 ‘보고’만 한 뒤 철회했기 때문에 재발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보고된 순간 ‘의제’가 됐다며 철회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철회안을 결재한 김진표 국회의장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가처분신청도 냈다.
고 의원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중에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포기하는 것이) 들어가 있었지만 진짜 할 줄은 몰랐다.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통과되도록) 그냥 두면 대통령의 부담이 엄청 커지기 때문에 쿠션을 주겠지 생각했는데 다 버리고 이동관을 지켰다”며 “내년 총선을 이기려면 언론이 자기들 손아귀에 들어와야 한다고 계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헌재에서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동관 위원장은 탄핵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6개월 정도 걸린다. 이 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면 방통위 기능도 멈추게 된다. 이상인 부위원장 혼자서 의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 의원은 “대통령이 국회 몫 (방통위원) 3명을 동시에 임명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경우 야당과 여당 추천 위원이 동수를 이루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 입장에선 부담이다.
“(이동관 위원장을 탄핵하지 않으면) 국민이 힘들어져요. 정부 비판 보도를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씌워 수사하고, 권력기관을 동원해서 흔들어대면 언론은 ‘자기검열’에 들어가요. 그럼 의혹 보도는 못하고 받아쓰는 보도만 하는 거죠. 군부독재 시절처럼 관영매체만 난무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민주당은 11월9일 발의했던 이동관 위원장 탄핵소추안에 이후 상황을 더해 11월 말 본회의 때 재발의할 방침이다. 11월14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1인 릴레이 시위도 시작했다. 민주당 언론특위와 과방위 소속 의원 2명이 하루에 한 시간씩 번갈아 하는 방식이다. 이날 오전 인터뷰를 마친 고 의원은 곧장 광화문으로 향했다. 이 싸움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고 의원은 이 위원장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인과응보입니다. 결국은 다 돌아오게 돼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도 이동관 위원장이 아름답게 마무리되시기를 바라요. 그러려면 본인이 내려오시면 됩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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