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점기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한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배상해주는 ‘제3자 변제’ 방식을 밀어붙이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2023년 3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찾아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배상 문제를 해결하는 안을 양쪽이 공식 확인하고 일본의 면죄부에 쐐기를 박았다. 4월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 5월에는 일본 히로시마 한·미·일 정상회의가 잇따라 열릴 전망이다. 이는 윤석열식 ‘셀프 배상’ 해법을 공인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다지는 과정이다.
앞서 3월6일 한국 정부는 2018년 대법원의 피해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한국 기업들의 기부금을 받아 배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사과나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는 담기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일본의 완승”이라며 반겼다. 미국도 한국 정부의 발표가 나온 지 불과 한 시간여 만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잇따라 환영 성명을 냈다. 그러나 한국에선 피해 당사자들이 “그런 돈 받지 않겠다”며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거듭 촉구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이른바 ‘셀프 배상’이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굴욕적 외교일 뿐 아니라, 향후 한일 관계를 더욱 꼬이게 한 최악의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앞서 2월, 국방부는 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했다. 문재인 정부 때 삭제된 문구를 6년 만에 되살렸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반도는 급격한 안보 위기에 빠져들었고, 외교는 ‘친미 일변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이 문제일까.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통일 정책을 주도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전 장관은 최근 신냉전으로 표현되는 국제질서 격변기에서 한국 외교·안보의 길을 모색한 <정세현의 통찰>이라는 책을 펴냈다. 정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3월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현재 그는 전·현직 통일부 공무원이 주축인 한국통일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3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찾아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이 바라는 것을 자진해서 다 들어준 회담이었다. 그러고도 외교 프로토콜(의전) 면에서도 대접을 못 받았다. 윤석렬 대통령 개인이 푸대접을 받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푸대접을 받은 거다. 국회에서 따져야 할 문제다. 사후약방문이라거나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격을 되찾고 향후 정권이 바뀔 경우 후속 협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국회가 따져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이렇게까지 일본에 굽히고 들어가야 할 이유가 뭘까.
“미국이 인도 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한미일 관계를 긴밀하게 만드려고 하는 전략을 착착 진행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그렇더라도 뭐가 그렇게 급해서 서둘러 졸속 협상을 했는지 의문이다. 일본은 손 안 대고 코 푼 셈이다. 나라의 체면은 다 구기고, 한일 관계에서 우리의 국익을 다 포기하고, 미국의 입맛대로 일본 기시다 총리 앞에 상을 차려준 거다. 일본의 책임이 빠진 제3자 변제안은 내용 면에선 일본이 요구해온 대로 들어준 것이고, 형식 면에서 ‘이제 모든 게 해결됐으니 덮고 미래로 가자’는 것은 미국의 요구라고 본다.”
―그런 구도와 별개로, ‘제3자 변제’라는 해법에 타당성은 있는가.
“그게 무슨 해법인가, 억지춘향이지. 윤석열식 해법은 ‘우리가 일본한테 지배를 받게 된 것부터 우리의 잘못이었다’는 식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우리 탓이니 우리가 해결할게’ 한 것이잖나. 피해자가 가해자한테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자기에게 셀프 배상을 하면서 가해자한테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한 것인데, 이는 세계 외교사의 ‘신기원’으로 기록될 만한 문제적 해결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 뒤 “한-미 관계를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의 구체적 의미는?
“외교에서는 말이 화려할수록 복선이 많이 깔렸다. 수사적 표현의 속뜻을 파악하고 상대의 의중을 헤아려야 한다. ‘글로벌’은 미국 중심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끌고 가겠다는 것을 미화한 거다. ‘포괄적’이란 말에도 함정이 있다. 모든 부문에서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오라는 뜻이다.”
―너무 일방적 해석이 아닌가.
“한-미 관계는 1953년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돕는 군사동맹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이 과거와 달리 세계 10위 경제대국, 세계 6위 군사대국이 됐다. 미국이 아직은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체제를 유지하지만 중국의 도전이 거세다. 그런데 이제 한국이 미국의 신세만 지던 나라에서 미국을 도와줄 수 있는 정도의 힘이 생겼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 안보에 투자한 걸 회수하겠다는 수사적 표현이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즐겨 쓰는 단어들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동맹, 가치외교가 그렇다. 어떻게 해석하는가.
“모든 국가의 목표는 첫째가 시큐리티(Security·안보), 둘째가 프로스페리티(Prosperity·경제적 번영), 셋째는 오소리티(Authority·국격, 권위)다. 안보는 자주국방이 기본이다. 자력만으로 불안할 때 보조 수단이 동맹이다. 그런데 안보동맹을 ‘가치동맹’이라고까지 확대해놓으면, 번영과 권위까지도 동맹 하나로 묶어버린다는 얘기다. 동맹을 통한 경제적 번영? 지금은 미국이 오히려 안보에서 한국 편을 들어주는 대신, 경제적으로 우리한테 얼마나 많이 요구하는가? 가치동맹은 우리의 번영을 침해하는 것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 독소적 함의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도 그렇다. 한 국가의 체제에 자유민주주의만 있는 건 아니다. 크게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세 가지가 있다고 치자.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잘 살지 않나.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미국의 가치와도 좀 다르다. 중국도 지향하는 가치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 속에는 미국식 체제가 최고라는 전제가 깔렸다.”
―2022년 11월 윤석열 정부는 ‘자유·평화·번영’을 3대 비전으로 내세운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국제정치에서 평화는 군사적 충돌 위험이 있는 관련국이나 이웃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평화는 ‘피스 키핑’(Peace Keeping·평화 지키기)이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 영속적인 평화가 오진 않는다. 피스 키핑을 넘어 적극적인 ‘피스 메이킹’(Peace Making·평화 만들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미국 중심의 피스 키핑을 위한 한-미 군사협력을 평화라는 뜻으로 개념 규정을 했다. 번영도 미국적 경제질서 안에서 한국이 잘살 수 있다는 뉘앙스가 담겼다. 한마디로 미국 중심, 미국 편향적 대외정책을 하겠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감춰놓은 거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이 미국의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가.
“대한민국이 미국의 한국전쟁 지원과 전후 경제원조 덕분에 부유해질 기회를 잡았고 이제는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나갈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 그런데 보수 성향의 정치의식을 가진 국민과 정치인들은 조선시대 지식인과 관료들이 가졌던 소중화(小中華) 사상이나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再造之恩) 같은 약소국 타령을 지금도 한다. 가치동맹이니 포괄적 글로벌 동맹이니 이런 식으로 미국에 질질 끌려다니지 말자, 줏대 있는 외교를 좀 하자는 거다.”
―미국의 외교 정책에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양 갈래가 경합해왔는데, 지금 바이든 정부는 어떻게 보나?
“미국의 정치학자와 정책가들에 리얼리스트도 있고 아이디얼리스트도 있다. 그건 그들 세계에서 갈릴 뿐이지 정치의 세계로 넘어오면 바이든이 됐건 트럼프가 됐건 기본적으로 리얼리스트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장사꾼들이라는 거다.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보이도록 ‘글로벌’이니 ‘포괄적’이니 ‘가치’ 같은 개념으로 포장하는 것일 뿐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게 없다. 이상적인 국제질서를 꿈꾼 <영구평화론>을 쓴 이마누엘 칸트도 대통령이라면 리얼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외교에서 개념, 그리고 개념이 구속하는 용어와 그 선점이 매우 중요하고 효과가 큰 것 같다.
“정치의 세계에서 논리나 이론은 매우 큰 힘을 갖는다. 북한의 정치 사전을 보면 ‘문학과 예술은 혁명과 건설의 유력한 무기’라고 설명한다. 사람을 세뇌하고 행동을 끌어내는 게 다 말의 힘이라는 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이 끊이지 않았고,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열렸던 것과 천양지차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끊임없이 ‘행동 대 행동’을 요구하며 상당한 수준의 양보도 했지만 실제로 얻은 것은 거의 없다. 지금으로선 미국이나 윤석열 정부의 전향적 태도도 기대하기 힘들다. 향후 당분간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는 어떻게 될까.
“먼저 ‘행동 대 행동, 말 대 말’이란 것부터 정리하자. 어느 나라든 국가 관계에서 상대의 선의만을 믿고 먼저 무조건 양보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말로 시작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확인해가면서 그다음 단계로 가는 거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한 불신이 크다.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세상에 크고 작은 나라는 있지만 높고 낮은 나라는 없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냥 하는 말이고, 국제정치에는 실제로 높고 낮은 나라가 있다. 미국은 그 정점이다. 내가 책에 썼듯이 ‘국제정치는 기본적으로 조폭의 세계’와 같다. 약소국은 행동 대 행동을 꼭 이행하고 싶어 하고, 강대국은 먼저 행동을 요구하게 돼 있다.”
―그런 평행선이 좀체 좁혀질 것 같지 않은데.
“잘 안 좁혀진다. 그런데 지금까지 북-미 관계를 보면, 북한이 벼랑 끝 전술로 미국을 애먹이고 체면을 손상하는 식으로 하면 미국이 조금은 ‘행동 대 행동’으로 옮겨준다. 그러고는 ‘당근을 줬더니 말을 잘 듣네?’ 싶으면 다시 채찍을 든다. 북한이 거기에 저항하면 미국은 ‘보편적 가치’나 ‘인류의 평화’를 꺼내 든다. 그런데 ‘평화’라는 것도 완전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게 아니다. 자기가 유리한 상태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평화라고 한다. 옛날에 로마제국이 전세계를 좌지우지 장악했을 때는 ‘팍스로마나’(Pax Romana·로마에 의한 평화)라 했고, 영국이 전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을 ‘팍스브리태니카’(Pax Britannica)라고 했다. 지금의 팍스아메리카나도 마찬가지다. 자기 중심성이 굉장히 강한 말이다.”
―미국이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을 유지하려 한다는 건가.
“바로 그거다! 팍스로마나도 로마제국이 자기한테 반항하는 나라가 없는 상태를 만들어놓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희생 위에 올라서서 즐겼던 것 아닌가. 미국도 마찬가지다. 자기 세력권 안에 있는 나라들을 압박하거나 달래가면서 얼마든지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는 거다. 미국은 윤석열 정부가 자국에 요구하는 ‘확장억제’ 정책을 소원대로 들어주고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에선 북한에 굉장히 위협이 될 만한 첨단무기와 전략자산을 전개해준다. 그러면서 우리한테 경제적으로 얼마나 많이 빼가는가. 미국 전기자동차 지원법이나 반도체 공급망 편입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도 그렇다. 미국이 세계 각 지역에 꾸리는 안보동맹은 이른바 동맹국들을 자기 진영에 계속 묶어두기 위한 프레임이다. 한·미·일 삼각동맹,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4개국 협의체), 오커스(AUKUS,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삼각동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뽑아낼 만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인도는 중국과 러시아 편이 돼버리지 않았나. 필리핀은 아직 가난한 나라여서 별로 득 볼 게 없다.”
―국제외교에서 약소국의 비동맹 중립 노선을 뜻하는 ‘핀란디제이션’을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할 여지는 없나.
“한국의 대외정책에 핀란디제이션(핀란드화) 개념을 적용하기엔 우리 덩치가 커졌다.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미국이라는 해양세력과 중국이라는 대륙세력의 양대 강국 사이에 끼인 건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이 이제 더는 ‘두 마리 고래 사이의 새우’가 아니다. 좌우로 커다란 둑 사이의 도랑 속을 걸어가는 소가 왼쪽 풀도 뜯어 먹고 오른쪽 둑의 풀도 뜯어 먹고 새끼 먹일 젖도 만드는 식의 외교를 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이 20세기 초 소비에트 러시아와 독일이라는 강국 사이에 낀 핀란드처럼 약소국은 아니잖나. 인 것처럼 아닌 것처럼 눈치를 보며 그때그때 위기를 모면하는 식의 단계는 지났다. 다만! ‘약소국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도랑 속의 소’처럼 의연하게 갈 수가 없다. 이제는 ‘쿨’하게, 미국에도 중국에도 우리 입장을 당당히 설명하고 줏대 있게 가야지, 미국 아니면 살길이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에 빠지지 말자는 거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비롯해 남북 화해와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설 당시 통일부 차관이셨다. 김 전 대통령이 나중에야 미국을 설득했다는데.
“설득도 안 했다. 일을 저질러버리니까. 나중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참, 그 장면을 내가 도쿄에서 봤는데 아름다웠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했다. 장관 때는 대통령을 독대할 기회가 많았는데, 때때로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걸 보면 놀라웠다. 그분이 군사독재 정권 밑에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용기가 생겼다 하는 식의 설명은 말이 안 되고, (판단력과 결단력은) 역시 독서량 때문에 나온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서량이 방대하고 기억력도 좋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어땠나.
김대중 대통령이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을 읽고, 나중에 집권하자마자 정보통신(IT)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잖나. 디제이(DJ)는 늘 수첩을 가지고 다녔다. 책을 보다가 인상적인 대목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반드시 수첩을 꺼내서 옮겨 적는다. 그러면 머릿속에 들어가 기억이 되는 거지. 너무나 박식했다. 와이에스(YS, 김영삼 전 대통령)는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못 빌린다’고 했지만, DJ는 머리를 잘 빌리는 편은 아니었고 학자들을 중용하지도 않았다. 김대중대통령이 즐겨 쓰던 말씀이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을 겸비하는 지식인이 되라’는 것이었다. 학자들이 서생적 문제의식만 넘치고 실무 매듭을 못 짓더라는 이유에서다. 후임 노무현 대통령도 독서량이 굉장히 많았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 같은 노력이 있었고 한때는 ‘한반도의 봄’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남은 게 불분명하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시절은 남북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갔고, 극우 성향의 윤석열 정부에선 퇴행이 도드라진다. 자주적 외교는 어떻게 가능할까.
“무엇보다 대통령이 자주적 외교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뒷받침할 참모를 만나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동원(당시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을 만났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종석(당시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도와줄 참모가 있는데도 자주적 외교를 하겠다는 대통령은 많지 않았다. 서로 쿵짝이 맞지 않으면 못하는 거다.”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 4년 동안은 한국의 줏대 있는 외교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를 갖기 힘들까.
“남북관계에도 사계절이 있고, 나라의 시운에도 팔자가 있다고 본다. 당분간 5년은 그렇게 살 팔자라면 도리 없지 않겠나. 다만 그 팔자가 영속적으로 굳어지는 구조적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대통령이 바뀌고 좋은 참모를 만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번 한-일 양국 간 강제동원 배상 문제 같은 것도 재협상하든 버티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줏대 있는 대통령의 철학과 그를 뒷받침할 참모가 만나는 정부라야 한다.”
글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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