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이 역풍으로 돌아왔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이준석 대표가 ‘성접대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해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2022년 7월7일 ‘당원권 정지 6개월’이란 중징계를 내렸다. 윤리위는 “징계심의 대상이 아닌 성접대 의혹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면서도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이 성접대를 주장한 장아무개씨를 만나 ‘성접대 사실이 없다’는 사실확인서를 받고 7억원 투자 유치 약속 증서를 써준 건 단독으로 결정했다고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성접대 의혹 자체를 거듭 부인했던 이준석 대표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이 대표는 8일 <한국방송>(KBS) 라디오에 출연해 윤리위 결정의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당 대표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납득할 만한 상황이 아니면 징계 처분을 보류하겠다”고 반발했다. ‘성접대 의혹’과 관련한 경찰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윤리위 판단이 자의적이란 주장이지만, 리더십 자체에 타격을 받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라 징계받더라도 10일 안에 재심 청구를 하거나 법원에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낼 수 있다. 징계 명목은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지만, 그가 대표직을 수행하는 내내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라 칭하며 날을 세웠던 ‘친윤계’(친윤석열계)와의 싸움에서 사실상 패배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준석 대표로선 2023년 6월까지 남은 임기 2년의 반환점을 돌자마자 위기를 맞은 셈이다. 2021년 6월, 30대의 나이에, 국회의원 경험이 전무한 채로, ‘당심’이 아닌 ‘민심’을 앞세워 당대표에 당선된 그는 ‘변화와 공정’을 기치로 내걸었다. 정치인 자격시험과 토론 배틀을 통한 대변인 선발제도 도입은 그의 대표 공약이었다.
‘혁신’의 외피를 쓴 그의 정치는 “‘종북’ 프레임처럼 국민의힘이 오랫동안 해왔던 차별·혐오 조장이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으로 확대되는 과정”(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이란 비판이 뒤따랐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만들고 결집하기 위해 그는 때론 혐오 선동에 올라탔고, 때론 혐오가 펼쳐질 수 있는 장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정치인 이준석’을 이렇게 평가한다. “한국에서 반지성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치를 가장 잘 실천한 정치인이자 도널드 트럼프와 대안우파(Alt-Right)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고, 이해하고, (그것을) 한국에서 실천한 사람이다.”
“대안우파는 백인의 정체성과 백인의 문명이 ‘정치적 올바름’과 ‘사회적 정의’를 이용한 다문화 세력의 공격을 받는다는 것을 핵심 신념으로 삼는 극우 이념과 집단, 개인들의 집합이다.”-미국 인종차별 방지 단체 ‘남부빈곤법률센터’
미국과 유럽의 포퓰리즘, 극단주의 등을 연구하는 카스 무데 미국 조지아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는 책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에서 ‘대안우파’의 본질을 가장 잘 포착한 문구로 위 정의를 인용한다. 그는 대안우파의 특성을 이렇게 덧붙인다.
이 설명은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국민의힘 당원 투표에서 졌지만 국민 여론조사에서 표를 몰아줌으로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선을 가능하게 한 이들,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뭉치는 2030 남성이 표출하는 정서도 이와 유사한 관점을 공유한다. 반페미니즘은 이들을 결집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박선경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금의 청년 세대가 이념적으로 보수화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지금 청년 세대 내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가 이들의 정치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인으로 보인다. 청년 남성의 반페미니즘적 성향이 정치적 선택과 추후 반복적으로 연결된다면 다른 정책영역에 대한 이념 태도가 보수적으로 공고화될 것이고, 이것이 결국 젠더 간 균열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2022년 <국회입법조사처보> 여름호)이라고 봤다.
트럼프 포퓰리즘 정치로 지지층 결집여성혐오는 장애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도 확장한다. 남초 커뮤니티에선 여성, 장애인 등이 더는 약자가 아니라고 본다. 대신 함께 ‘노오력’을 하지 않고 “반칙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한겨레21> 제1418호 ‘혐오문화 안에서 당신은 언제든 일베’) 현존하는 차별을 보정하기 위한 할당제나 여성가족부의 존재는 규칙을 어긴 특권적 요구이자 존재가 된다. 한국식 ‘대안우파’의 보편 정서다.
이준석 대표는 이런 정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주류가 될 수 없어 화난 젊은 남성에게 어필하면서 정치 자원을 쌓고, 그 자신도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온라인에서 의제를 발견하고 어떻게 정치화, 언어화해야 지지받을 수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손희정 연구교수)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늘 사회적 약자를 타자로 놓고 이들을 비난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대표가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한 어법은 대개 이런 식이다. ①차별이 존재하는 구조적·사회적 맥락을 소거하고 ②사회적 약자를 ‘합리적이지 않은’ 집단으로 정의한 뒤 ③그들의 요구를 ‘반칙과 특권’으로 규정한다. 이 전략의 화룡점정은 자신을 포함한 우리 편, 즉 2030 남성 비장애인 다수를 ‘피해자화’하는 데 있다. ‘역차별’ 주장과 ‘언더도그마’(약자는 선하다는 믿음) 비판이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20대 여성이 그들만의 어젠다를 형성하는 데 뒤처지고 있다”(2022년 1월 <오마이뉴스> 인터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시위를 지속하고 있다”(2022년 3월 최고위원회의)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가현 페미니즘당창당모임 공동대표는 “이 대표는 (차별받는 이를) 무시해도 되는 사람들, 그냥 ‘나쁜 사람’으로 만들면서 (상황을)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한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선거 전략으로만 활용했다”고 짚었다.
이런 한국식 ‘대안우파’에 대항할 수 있는 정치가 세력화됐을까. 미지수다. 대신 이 대표가 했던 방식 그대로, 이들의 지지를 붙들어놓으려는 흐름은 또렷하다. 여성가족부의 성평등문화추진단 사업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문제’로 여겨지자 이를 공론화한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여가부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해당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윤리위 결정으로 ‘정치인 이준석’이 흔들릴지라도 그가 차곡차곡 효능감을 쌓아왔던 ‘이준석식 정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방송 출연으로 몸집을 키운 이 대표가 계속 원외에서 ‘스피커’ 역할을 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권수현 여.세.연 대표는 “이 대표는 라디오나 시사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면서 과다 대표된 스피커 역할을 해왔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표가 활동할 공간은 충분히 넓다”며 “언론에서 그를 다시 부를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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