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 가운데 유의미한 당선 성과를 거둔 정당은 진보당이 유일하다. 진보당은 기초단체장을 포함해 21명(기초단체장 1명·광역의원 3명·기초의원 17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진보당 소속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당선자는 전국에서 유일한 ‘진보 단체장’이다. 원내정당인 정의당(9명 당선)보다 많고, 진보당이 민중당 이름으로 출마했던 제7회 지방선거(기초의원 11명 당선)와 견줘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성적표다.
앞서 진보당은 전신인 통합진보당이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해산당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과거 통합진보당이 8년 뒤 ‘진보당’이란 이름으로 재기할 수 있던 배경엔 ‘지역 속으로’ 들어간 전략이 유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과 밀착해 지역에 필요한 의제를 꾸준히 발굴했고 기존 정당과 노동운동이 대변하지 못한 사각지대와 접촉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진보당은 “노동자, 농민, 지역 주민들 속에서 노동자 권리 보장, 농민수당 등 농민 권익 보호, 주민대회 등 주민들의 직접정치를 실현”한 점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자평했다.
서울 노원구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원구의원으로 출마한 최나영 당선자는 2019년부터 노원구 50여 개 주민단체와 함께 ‘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를 꾸려 활동했다. 조직위는 주민투표를 통해 △아파트 경비실 에어컨 설치 △골목길 가로등 CCTV 설치 △세금 페이백·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노원구에 요구해 실제 정책에 반영시켰다. 울산도 비슷하다.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예술인 등에게 보험료를 지원하는 ‘울산시 고용보험료 지원조례’, 아동돌봄 통합지원센터 등을 설치하는 내용의 ‘온종일 아동돌봄 통합지원조례’는 모두 진보당 울산시당을 중심으로 주민발의 형태로 나온 뒤 각각 2021년과 2022년에 시의회를 통과했다.
정경윤 민주노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당원과 지역 주민들의 직접정치를 실현하겠다는 목표, 노동계급성을 기반으로 한 대중정당이란 색깔이 (현재) 진보정당 가운데 가장 뚜렷하다”는 점을 진보당의 선전 요인으로 꼽았다. 진보당 후보로 단일화된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서는 당선된 반면, 정의당 후보로 단일화된 울산 북구청장 선거에서는 낙선한 이유에 대해 정 상임연구위원은 “(원내 의석 확대에 집중한) 정의당과 대중에 기반한 정당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지역과의 밀착 전략만으로 진보정당의 어려움을 타개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거대 양당에 유리한 선거제도 개혁, 차별성을 보여주는 의제 발굴 등도 진보정당으로선 포기하기 어려운 과제다. 정의당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과정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 등 선거제도 개혁 문제에 힘을 실었던 이유다.
‘선거정치’ 하다 서민 삶과 멀어져녹색당 역시 2020년 총선에서 선거연합정당에 참여하는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는 “진보정당이 반복해온 관습 중 하나가 광역 비례대표에 집중하는 것, 즉 정당 투표에서 많은 득표를 올리고 이를 기반으로 의원을 배출해온 점이고, 둘째는 단일화를 통해 여론을 만든 것이었다”며 “선거제도 개혁이 사실상 좌절되고 당분간 진전이 어렵다고 볼 때 소수정당이 광역 비례에만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지방선거에 임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해법을 김 대표는 녹색당 강령에 명시된 ‘직접·참여·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허승규 녹색당 후보는 보수적인 경북 안동에서 시의원 후보로 출마해 18%를 득표했다. ‘안동시민예산학교’ ‘버스타기좋은안동’ 운동 등 주민과 밀착한 평소 활동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는 “허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절반 이상이 비당원이었는데 이는 (허 후보가) 지역 활동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지역민들이) 잘 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이런 성과를 어떻게 선거로 연결할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바뀐 상황에서 소수정당인 진보정당들이 의제를 어떻게 주도해가느냐도 주요한 과제다. ‘기본소득’이란 단일한 의제를 중심으로 꾸려진 기본소득당은 지방선거 이후 고민이 깊어졌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 중심의 선거 전략을 내세워 25명의 후보를 냈지만, 모두 낙선했다. 신지혜 전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는 “민주당 정부일 때는 기본소득 재원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면서 (기본소득을) 해나가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차별을 정당화할 때마저도 ‘공정’이란 이름을 쓰고 있어서 ‘모두의 몫을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한다’는 기본소득 철학부터 어떻게 설득해나갈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노동당, 미래당 등도 선거 때마다 꾸준히 후보를 내지만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평가받기엔 아직 지지 기반이 미약한 수준이다. 진보정치를 추구하는 정당은 여럿이지만 유권자 입장에선 정당 간 뚜렷한 차별성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위기와 성평등 같은 진보정당의 의제를 기성 정당이 흡수해가는 탓도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진보정당들이 이념과 정책은 있지만 서민의 삶과 어우러지지 못한 채 선거 정치 중심으로 가고 있다”며 “실제 삶의 생활공간과 괴리된 점을 메꿔가면서 풀뿌리 기반을 강화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한국 정치에서 계속 배제됐던 사회경제적 약자를 중심으로 지역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정치만이 아니라 여전히 중앙정치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김혜미 마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지역에서 맨땅에 헤딩하고 (당원들이) 삶을 갈아넣어서 정치해야 한다는, 일종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점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조차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휘둘리고 촛불 정부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존재하는 것에 소수정당이 제대로 (입장을) 견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과연 지역만 닦아서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정의당뿐만 아니라 모든 진보정당이 선거 평가에 들어갔다. 진보정치가 위기를 딛고 일어서려면 “진보적인 대중이 원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모색하고 논의해서 다음 선거까지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정경윤 상임연구위원). 그 시작은 진보정당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달려 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