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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길 잃을라

새 비대위 꾸렸지만 책임론 분분, 계파 갈등 드러나이재명 당권 논쟁만 하다가 쇄신 물 건너갈 수도
등록 2022-06-10 15:47 수정 2022-06-10 22:54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된 우상호 의원이 2022년 6월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5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된 우상호 의원이 2022년 6월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5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총선과 대선, 두 번의 선거에서 패했다. (중략) 우리가 그 벌을 마땅히 받아야 하고 그 지은 죄를 씻기 위해 당과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곧 구성될 비상대책위원회가 당을 올바로 혁신하도록 감시하고 견인하겠다.” 2012년 12월26일,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20여 명은 이런 반성문을 발표하며 국회 정문 앞에서 ‘참회의 1천 배’를 올렸다.

2013년 1월, 문희상 위원장을 주축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서 리모델링 수준이 아닌 재건축 수준까지, 재창당의 각오로 민주당과 정치 혁신을 실현하도록 하겠습니다”(문희상)라고 밝힌 당시 비대위는 대선평가위원회, 정치혁신위원회, 전당대회준비위원회를 각각 꾸려 활동한 끝에 ‘18대 대선평가보고서’와 ‘정치혁신안’을 발표했다.

10년 전 대선 패배 뒤 계파 갈등 데자뷔

보고서에서는 대선 패인으로 ‘친노/비노’ 등 계파 갈등과 당 지도부의 취약한 리더십 등을 지적했다. 혁신안은 계파 나눠먹기식 당직·공직 후보 선출을 막기 위해 최소 1년 전까지 선출 규칙을 확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의원과 당직자의 계파 해체 선언이 필요하다는 점도 담겼다. 그런데 보고서를 두고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 캠프 핵심 인사들은 “정치 편향적으로 작성됐다”고 비판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공개토론회에서 “마녀사냥이다”(강기정), “(혁신안을) 수용하면 된다”(김한길)며 맞섰다. 계파에 따라 분열하고 서로 비난했다.

10년 뒤인 2022년 더불어민주당에서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했고, 참회를 앞세워 비대위가 사퇴했으며, 의원총회에서 우상호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새로운 비대위가 6월7일 꾸려졌다. 이용우(초선), 박재호(재선), 한정애(삼선) 의원이 포함됐고, 박홍근 원내대표가 당연직 비대위원으로, 김현정 평택을 지역위원장이 원외위원장 몫으로 비대위에 포함됐다. 청년·여성·기타 몫 비대위원 구성이 남아 있다.

비대위 활동기한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까지다. “2개월 관리형 비대위일 수밖에 없다.”(우상호 의원, 6월6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우 의원은 6월8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선거 결과를) 평가하는 것과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것, 두 개 트랙을 돌릴 수밖에 없다”면서도 “한 달 뒤면 사실상 전당대회 국면으로 확 넘어가기 때문에 혁신하고 싶어도 분석하고, 내용을 정리하고, 당내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 지도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큰 그림, 즉 “혁신의 방향 정도를 제시하면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비대위 안에서조차 아직 역할과 활동범위에 대해 그리는 상이 다르다. 이용우 의원은 같은 날 라디오 인터뷰(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관리형 비대위로 전당대회만 잘 치른다고 한다면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중략) 맞지 않다고 본다”며 “당연히 쇄신이 수반돼야 하고 (문재인 정부) 집권 5년과 총선, 대선, 지선 과정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평가가 같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비대위”라고 말했다.

“이재명이 역할” vs “본인 위해 안 나와야”

당장 전당대회 관련해서도 계파에 따라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단일형이냐 집단형이냐’ 하는 지도체제 형태, 선거인단 구성 비율, 권리당원 투표권 부여 기준 등에서 이견을 봉합하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이재명 의원의 당권 출마를 놓고도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에서까지 선거 패인을 두고 계파 갈등을 드러냈던 10년 전의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비대위로서는 첩첩산중이다.

일단 비대위는 선거인단 구성 비율 등 ‘전당대회 룰 변경’ 요구에 ‘출마자들의 합의 또는 당내 구성원의 60∼70% 이상 동의’(우상호)란 조건을 내건 상태다. 전당대회 룰 변경은 자칫 계파 갈등만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선거 평가와 정치 혁신 논의가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당대회 룰 변경을 하더라도 (최소한) 적용은 다음부터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합당하다.”(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이재명 의원의 당대표 출마 여부다. 이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그는 국회 첫 출근날인 6월7일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관해 “시간이 많이 남아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면서도 “0.5선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이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대선 패배 직후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부터 사실상 “당내에서 역할을 하기 위한 선택지였기 때문에 (당대표로) 출마하지 않는 결정은 하기 어려울 것”(김민하 시사평론가)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선에서 떨어지자마자 이러는 후보는 처음 봤다. (이재명) 본인을 위해서는 (전당대회에) 안 나오는 것이 좋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6월9일 <김현정의 뉴스쇼>)는 일부 비판도 나온다.

현재 민주당이 겪는 계파 갈등이나 강성 지지층에 대한 고민은 “정당의 속성”(이준한 교수)상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당의 큰 방향을 놓고 겪는 진통이 아니라 특정 인물 출마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당의 변화 방향에 대한 찬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잡느냐로 싸우는 것만 비춰진다”(김민하 평론가)는 게 문제다. 민주당 쇄신의 길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극렬 지지층에 의존하면 ‘주변정당’으로

민주연구원의 이진복 정책연구실장은 2019년 펴낸 보고서(‘대한민국 중심정당의 혁신적 포용노선-더불어민주당의 길’)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당을 ‘대한민국 중심정당’으로 규정했다. ‘중심정당은 진영 내 지지층을 넘어 진영 밖 지지층으로까지 확대하며, 온 국민이 지지하는 이슈를 주도하면서 이를 공고화’하는 정당을 뜻한다. 반대로 ‘주변정당은 진영 내 균열이 심화하고 생존을 위해 소수 극렬 지지층에 집착하는’ 정당이다. 2022년 6월, 민주당은 ‘중심정당’일까 ‘주변정당’일까.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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