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윤석열 리스크’ 드러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미국의 중국 견제 ‘인도·태평양 전략’ 맞장구쳤지만
국익과 세계 기여에 준비 안 된 채 비용만 키울 우려
등록 2022-05-31 15:58 수정 2022-06-01 10:16
2022년 5월22일 윤석열 대통령(왼쪽 둘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둘째)이 경기도 오산 공군작전사령부의 항공우주작전본부 작전상황실을 방문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2022년 5월22일 윤석열 대통령(왼쪽 둘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둘째)이 경기도 오산 공군작전사령부의 항공우주작전본부 작전상황실을 방문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한다고 해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소홀히 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기 때문에 중국 쪽에서 이것(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을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떠난 다음날인 2022년 5월23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시엔엔>(CNN)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중국이 비합리적이라는 발언은 어떤 외교 당국자도 하지 못했던 아슬아슬한 발언이다. 필자가 만난 국민의힘 관계자는 “참모는 이런 발언을 적어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직접 작정하고 한 말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일제히 제목으로 뽑은 국내 언론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정책 폐기’ ‘미국의 중국 견제에 한국 동참’ ‘대북 유화정책은 실패’ 같은 자극적 보도를 이어갔다. 그즈음 국내 증시에서 중국 관련주들은 일제히 하락했다.

돌발적인 중국 견제 발언

바이든 대통령이 제창한 IPEF는 무역과 노동, 환경, 인프라에서 국제규범을 만들자는 것으로, 과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무역에서 관세 철폐를 목표로 한 환태평양경제공동체(TPP)에 비해 결속력이 낮고 느슨한 다자간 연합체다.

한국 정부는 얼마든지 중국에 양해를 구하고 더 나아가 중국을 초청함으로써 명분을 구할 수도 있었다. 이를 고려해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대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공동성명이 나왔고, 이후 박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외교 당국자가 “중국과도 협력을 계속하겠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 중국 쪽에도 충분히 설명했다”는 등 외교적 언사도 나왔다.

5월2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강경한 대중 메시지로 채워진 것에 견줘서도 한-미 정상회담은 중국 견제 수위가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는 윤 대통령의 관리되지 않은 메시지가 튀어나오고 이를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외교부의 신중한 입장은 범람하는 반중 보도 속에 익사할 지경이다. 대통령실의 미숙한 관리가 의도하지 않은 대중 갈등으로 분출될 개연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집권한 지 11일 만에 이루어진 한-미 정상회담은 여러 가지로 불안한 대목을 드러냈다. 공동성명에서 ‘글로벌 중추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한다는 입장 표명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세계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세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우리 정부는 준비돼 있지 않으며 방향도 구체화한 적이 없다. 이런 말을 하려면 적어도 현 정부의 집권 전반기에 수많은 토론으로 걸러진 글로벌 핵심 의제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정상회담에서 표방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한-미 관계 규정은 향후 미국의 책임 분담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당장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 남태평양과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할 때 주한미군의 역할 보장과 한국의 지원, 한·미·일 군사협력 차원에서 공동군사훈련과 방위비 분담 확대로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전략자산의 시의적절한 한반도 전개와 배치 협의”라는 합의사항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아마도 미국의 항공모함, 전폭기, 핵잠수함 등 핵무기 운반수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시의적절한 전개’란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시 순환배치나 일시적 전개에 불과하다.

화려한 회담, 재탕삼탕 안보

정상회담은 화려했지만 우리의 안보를 위한 미국의 새로운 약속은 없었다. 이미 존재하는 “확장 억제 공약 재확인”,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이미 미국한테 약속받은 “한-미 연합훈련 확대” 등 재탕 삼탕이다.

반면에 불안은 커졌다. 경북 성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를 정상화한다는 약속은 사드 문제를 미해결 의제로 보는 중국에 가장 자극적인 메시지다. 중국 군부는 성주의 사드 기지 레이더에서 중국까지 도달하는 극초단파 전파를 여러 번 탐지했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여러 차례 비공식적으로 한국 국방부에 항의했다. 지금까지는 한-중 관계를 고려해 수면 아래서 이 문제가 거론됐지만 만일 사드 기지 정상화가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중국의 간섭을 거부한다는 메시지와 결합하면 사드 갈등은 표면화할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난 25년간 우리가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기본 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4자회담, 6자회담 같은 다자 외교였다. 그러나 한·미·일 결속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 정부의 북한 관리에 협조하지 않으면 한국의 안보 비용이 증폭된다. 이것은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으로도 상쇄되지 않는 비용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는 즉시 사라져버리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기회의 창문을 열게 된다.

인위적 공급망 재편이 불러올 위험

실제로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 무역을 복원하고 있고 북한의 나진 일대에 러시아가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가장 치명적인 분야는 한국의 공급망 교란이다. 2021년 말 요소수 사태를 겪으면서, 중국이 밸브 하나만 잠가도 우리 경제가 마비되는 요소수 같은 핵심 물자가 1700개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30년간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질서 위에서 이루어진 국제분업 체계는 대한민국 생존과 번영의 기본 틀이었다. 그런데 정상회담 한 번으로 이 질서가 부정되고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재편하는 방향으로 치달으면 우리는 자멸을 각오해야 한다. 이것이 ‘경제안보’ ‘기술동맹’이라는 개념이 남발된 정상회담이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동맹과 안보라는 정치 논리가 이념과 진영을 초월한 경제 논리를 침해하는 현상이 어디 정상인가. 외교 역량이 성숙하지 않은 막 태어난 정부가 역대 정부의 성과를 함부로 폄훼하고 현상 변경을 추구하면 그 자체가 불안이다. 참모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혼자 메시지를 결정하는 대통령의 스타일은 논리적이지 않고 외교적이지도 않다. 정상회담 이후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국가 비용이 증가하는 현상, 이것은 ‘코리안 리스크’를 넘어선 ‘윤석열 리스크’다. 무엇보다 외교안보에서 초당적 협력과 협치의 틀을 구성하고 미래 중견 국가로서 대한민국의 글로벌 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그 위험을 줄이는 최선이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