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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할 거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공수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고발장 작성자·작성의도 밝혀내지 못한 채 손준성 검사만 불구속 기소
등록 2022-05-07 02:22 수정 2022-05-07 09:29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021년 10월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왼쪽).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2022년 4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수완박’ 법안 상정이 예정된 본회의에 앞서 박병석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공동취재사진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021년 10월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왼쪽).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2022년 4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수완박’ 법안 상정이 예정된 본회의에 앞서 박병석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공동취재사진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수사가 8개월 만에 끝났다. 최강욱 의원 등 범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던 손준성 검사(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수사를 맡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고발장 ‘전달’ 사실만 확인했을 뿐, 고발장을 누가 어떤 의도로 ‘작성’했는지 등을 밝혀내지 못했다. 손 검사의 ‘윗선’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당시 검찰총장) 등에 대한 조사는 진행되지도 못했다. 윤 당선자는 피의자로 입건만 됐다가 무혐의 처분됐다. 공수처는 2022년 5월4일 이같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윤석열 당선자 조사도 없이 무혐의 처분

검찰이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 사건은 2020년 4·15 총선을 앞둔 시점에 일어났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준성 검사가 누군가에게 고발장 2건을 작성하도록 한 뒤, 이를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현재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고발장은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후보(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윤 검찰총장 가족을 흠집 내는 내용을 언론에 제보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었다.

2020년 4월8일에 작성된 고발장은 텔레그램 등을 통해 손준성→김웅→정점식 당시 미래통합당 법률지원단장을 거쳐 넘어갔고, 2020년 8월 대검에 접수됐다. 수사정보를 수집하며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보직에 있는 손 검사가 2020년 5월 중순 윤 총장 가족과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전담해 정보를 수집했다는 검찰 내부 증언이 ‘윤석열 징계결정문’에 등장하는 등 당시 윤 총장이 ‘고발사주’에 관여했거나 최소한 묵인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였다.

5월4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수처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검찰총장 또는 검찰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일을 했던 것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수처는 윤 당선자를 조사도 없이 무혐의 처분했다. 공수처는 “(윤 당선자가) 애초 고발장 작성을 지시했다는 의심으로 고발됐지만, 고발장 작성자 특정 단계에서 혐의 없음 처분해 수사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아서”라고 무혐의 처분 이유를 밝혔다.

고발장 작성자를 밝혀내진 못했지만, 공수처는 고발장 ‘전달’만으로도 손준성 검사의 ‘총선 개입’ 혐의가 확인됐다고 판단했다. 손 검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공수처는 “손 검사와 김웅 의원은 범여권 인사인 최강욱·황희석 등이 입후보한 21대 총선에 부정적 여론 형성 등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을 공모”했으며 “손 검사가 최 의원 등에 대한 고발장 및 실명 판결문 등을 김 의원에게, 김 의원은 이 고발장을 당시 미래통합당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손 검사 홀로 모든 책임과 불명예 짊어져”

손 검사가 “고발장 등을 활용해 검찰총장과 그의 가족, 검찰 조직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점”은 공직선거법 위반, “검사로서 수사정보 등이 담긴 고발장을 입수하는 경우 이를 직무상 누설하지 않을 의무가 있음에도 고발장을 김 의원에게 전송한 점”은 공무상비밀누설에 해당한다고 공수처는 판단했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공무원에게 지시해 열람하고 수집하게 한 채널에이(A) 기자 강요미수 사건 제보자의 실명 판결문을 김 의원에게 전송한 것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보호법 및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공수처는 손 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 등에게 고발장 작성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검사가 실명 판결문을 출력하도록 지시한 일은 대법원 판례를 따를 경우 직권남용죄의 ‘법령상 의무에 없는 일’을 지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도 들었다.

김웅 의원에 대해서는 손 검사와 공모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가 확인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 후보라 공수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 신분이 아니어서 직접 기소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공수처가 고발장 작성 등 핵심이 빠진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고발사주 의혹을 언론에 최초로 제보한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공수처는 손 검사가 이 사건의 주범이라고 봤지만 (김 의원에게 전달한) 고발장으로 손 검사가 얻는 이익이 전혀 없다. 결국 손 검사가 모든 범죄 책임과 불명예를 혼자 짊어지게 됐다. 공수처가 윤석열 당선자를 무혐의 처분한 결과를 국민이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공수처 관계자 역시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직권남용 부분으로, 고발장 작성자가 누구인지, 누구 지시에 따라 고발장이 작성됐는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고발장 작성자로 의심되는 이를 특정하는 수준까지 상당 부분 수사했지만, 제3자가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는 등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사전구속영장 두 차례 기각 등 수사력 한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 검경개혁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지미 변호사는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사건은 공수처 설립 취지에 딱 맞춤인 사건이었는데,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당하는 등 공수처의 실수도 많았고 그 실수를 만회할 정도로 수사 의지가 강력했냐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번 사건은 수사 능력이 아주 뛰어나야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데다 정치적 바람도 많이 탄 사건이라 수사 결과를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면서도 “공수처가 설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행착오 단계에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집중적이고 전문적으로 제대로 수사를 해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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