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민주당, 엄청난 중상에도 ‘아프지 않다’

5년 만에 정권 내주고도 “졌잘싸”, 지방선거까지 불과 두 달 남아
등록 2022-04-03 07:40 수정 2022-04-03 09:12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원들이 2022년 3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앞서 새롭게 거듭나는 민주당이 되겠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원들이 2022년 3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앞서 새롭게 거듭나는 민주당이 되겠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권교체 10년주기설’이 깨졌다. 한때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나왔던 ‘20년 집권론’ 목소리는 이제 메아리도 남지 않았다. 제20대 대선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패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19대 대선에서 대통령 직선제 도입(1987년) 이후 최다 표차(557만951표)로 집권한 지 5년 만이다. 그 5년 동안 한국 사회에선 진보층이 크게 줄고 중도와 성향 유보층이 크게 늘었다. 한국갤럽의 ‘주관적 정치 성향’ 조사에서 2017년 1월 보수 27%, 진보 37%, 중도 26%, 성향 유보 10%로 나타났던 유권자 구도는 2022년 1월 보수 26%, 진보 24%, 중도 34%, 모름·응답 거절 15%로 재편됐다.

‘대선 이야기 나중, 지방선거 우선’ 분위기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고 당내에서 통렬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야 마땅한 시점이다. 산발적인 토론회를 통한 목소리(3월16일 박용진 의원, 3월28일 전국여성위원회, 3월30일 초선의원 모임 ‘더민초’)가 없진 않다. 그러나 대선 이후 3주가 지났는데도 당 차원의 대선 평가나 반성·쇄신 작업은 아직이다. 전국동시지방선거(6월1일) 준비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탓이다. 1614만7738표를 얻은 이재명 후보가 1987년 이후 대선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점, 0.73%포인트(24만7077표)라는 최소 득표율 차로 석패한 점에 기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도 한몫한다.

당 차원의 평가·쇄신 작업은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3월3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곧 평가기구를 만들어서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평가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선 평가작업에 들어가서 지방선거 결과까지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해도 패배에 대한 복기와 반성을 건너뛴 채 다음 선거에 뛰어드는 것이 국민의 기대를 받았던 집권여당의 책임 있는 태도일까. 대선 경선 주자였던 박용진 의원, 청년선대위 공동위원장으로 대선을 치른 뒤 당 지도부에 합류한 권지웅 비대위원, 전국여성위원장인 정춘숙 의원을 3월29~30일 전화 인터뷰해 대선 패배에 대한 평가와 쇄신 방안을 물었다.

세 사람 모두 대선에서 0.73%포인트의 근소한 패배와 관계없이 민주당이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용진 의원은 “당 분위기가 ‘대선 이야기 나중, 지방선거 우선’ 기조로 형성되면서 대선 평가가 처절하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 어제(3월29일) 광주에서 어떤 분이 ‘광주는 사실상 비밀투표가 무색할 정도로 (이재명 후보를) 밀어줘 발가벗겨진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민주당은 패배 이후 무능이나 잘못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다’고 하시더라. 이렇게 넘어가는 분위기가 되면 또 다른 패배만 부르는 건 아닌지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광주에서 84.82%를 득표해 전남(86.1%)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중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김진수 선임기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김진수 선임기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대 여성 표도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찍은 것”

박 의원은 이어 “반성하고 혁신해야 할 때 우리끼리 ‘졌잘싸’라는 등 격려하고 있으니 국민으로부터 되레 ‘지고도 정신 못 차렸다’는 얘기를 듣는 게 아닌가. 직선제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권력을 빼앗겼으니 엄청난 중상을 입은 건데도 아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지웅 비대위원은 “민주당이 이번 선거 캠페인을 매우 열정적으로 했고 잘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결국엔 ‘패배’가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졌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유권자를 아주 크게 실망시켜드린 부분이 있다는 건데 그것을 개선해내지 못하면 신뢰를 다시 얻기 어렵다고 본다”고 짚었다.

‘0.73%포인트’의 득표차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쇄신 방향이 갈릴 것이다. 대선 직후 “0.73%포인트는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 반성의 출발점이지 민주당 위로의 출발점이 아니다”(박성민 정치평론가)라는 평가가 나왔다. 대선 기간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연장 여론보다 10%포인트 안팎으로 줄곧 높게 나왔는데도 승부가 역대급 박빙으로 결론난 데 대해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춘숙 의원은 “단 한 표 차이라도 진 건 진 거다. 이건 지난 5년 우리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막판에 20대 여성이 민주당에 거의 몰표를 준 것은 본인들이 얘기하듯 ‘저쪽 당(국민의힘)이 될까봐 너무 두려워서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찍은 것’이다.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잘 살피고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도 “0.73%포인트에 집중할 게 아니라 5년 만에 패배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 5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했기에 패배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 ‘내로남불’, 태도의 문제, 약속 불이행, 소탐대실의 정치, 반사이익의 정치 등. 세 사람이 돌아본 패배 원인이다. 박용진 의원은 “부동산 정책으로 대표되는 정책 실패와 무능, 조국 사태로 대표되는 인사 문제와 내로남불 정치” “소탐대실의 정치”를 패배의 주원인으로 봤다. 그러면서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비례위성정당을 ‘꼼수 창당’하거나,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 위해 당헌을 개정한 일 등을 ‘소탐대실’의 대표 사례로 꼽았다. 박 의원은 “해당 국면마다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지만,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원칙을 저버리며 자충수를 두는 정치를 해온 걸 국민이 이번에 심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투쟁하는 야당’ 아닌 ‘성과 내는 야당’으로

권지웅 위원도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해 국민의 질타가 있었다. 또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우리가 옳았다고 설명하려 하거나 때론 오만했던 태도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많은 변화의 약속을 했는데 실제로는 많이 변화되지 못했다. 그런 것들에 대한 답답함이 누적돼오다 이번 선거에서 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이라고 유권자가 선택한 것이라 봐야 한다. 뼈저린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돌아봤다. 정춘숙 의원은 “유권자가 민주당을 지지해 표를 줘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사실상 여성차별인 ‘젠더 갈라치기’를 하는 상대방(국민의힘)의 부족함 때문에 우리가 얻은 표이다 보니 승리로 이어지지 못하고 석패한 것”이라 평가했다.

패배 원인 진단은 쇄신 방안으로 이어진다. 박용진 의원은 거대 양당 간의 ‘반사이익의 정치’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우리가 대선 전에 약속한 선거제도 개혁과 분권형 대통령제를 위한 개헌 등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팀이 스파이크를 구사해 공격 포인트를 따는 게 아니라 저쪽 팀에서 헛발질해 점수를 따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당이 된 민주당은 (태극기부대라는) 강성 지지층에 끌려다니다 21대 총선에서 크게 패배한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처럼 ‘투쟁하는 야당’이 돼서는 안 된다. ‘입법 여당’(입법의 주도권을 갖는 다수당), ‘국회 수권 정당’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먹고사는 민생 문제에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대선 이후 2030 여성이 대거 민주당에 입당한 점을 잘 기억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성평등한 대한민국을 견인하는 민주당이라고 본다. 혐오와 배제의 정치에 맞서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지방선거에서 ‘청년 30% 공천’ 등을 통해 새로운 인물을 찾고 우리 당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평등법 입법, 단호한 정치 역할 요구 수용하는 것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3월30일 비대위 회의에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청년 후보를 30% 이상 공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절반 수준밖에 지키지 못했다”며 청년 공천 30% 원칙 준수, 심판받은 정책의 책임자 공천 금지 등 5대 공천 원칙을 제시했다. 권지웅 위원도 청년 공천 30%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40대 미만 청년 당선자가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각각 7%도 되지 않는다. 공천받은 청년들이 모두 당선되지는 않겠지만, 공천만으로도 큰 변화가 될 것이고 이후 그들이 민주당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적 쇄신만큼 가치의 쇄신도 중요하다. 앞서 권 위원은 비대위 회의에서 평등법(차별금지법) 입법도 민주당의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2030 여성이 (국민의힘의) 젠더 갈라치기 정치에 반대하면서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본다. 차별에 반대하면서 정치가 좀 단호하게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요구라고 생각한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서라도 평등법이 지방선거 전에 통과되면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도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대위원들과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이 평등법 본회의 통과를 위해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 패배 직후 민주당은 ‘반성과 혁신’보다 ‘질서 있는 수습’을 택했다. 판단은 유권자 몫이다. 지방선거까지는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