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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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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여, 청년의 ‘노동’에 구애하라

비정규직·근로기준법 바깥 청년노동자, 현실에 발 붙인 청년 공약을 요구하다
등록 2022-02-19 02:31 수정 2022-02-19 11:19
민주노총 청년사업실이 2022년 2월16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복합문화공간 ‘공존’에서 ‘청년노동자 대선 요구 토론회’를 열어 청년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했다. 민주노총 제공

민주노총 청년사업실이 2022년 2월16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복합문화공간 ‘공존’에서 ‘청년노동자 대선 요구 토론회’를 열어 청년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했다. 민주노총 제공

임아무개(30)씨는 간호조무사가 되려 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들은 간호조무사의 실습노동 환경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려면 740시간의 이론교육을 마치고, 780시간의 실습교육을 해야 한다. 문제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실습교육이 무임금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무임금 실습노동이다. 실습생 역시 일은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병원 내 가장 낮은 위치에서 일하다보니 다칠 일이 많지만 산재보험조차 받을 수 없다. “생활비가 보장되지 않아 주말에 아르바이트하며 조금이라도 벌려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도 참는 게 답이라 생각하고 무임금 실습노동을 나가야 할까요?” 임씨가 말했다.

비정규직 가능성 가장 높은 세대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임씨 같은 청년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을 ‘청년과 노동이 실종된 대선’으로 규정한다. 물론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청년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만 19~29살 청년에게 2023년부터 연간 100만원씩 지급하는 청년기본소득 공약을 내놨다. 청년기본대출, 청년기본저축, 청년기본주택 등 ‘기본’ 시리즈 공약도 아울러 내놨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한다며 ‘원가’ 주택 공급을 약속하고, 저소득 청년에게 월 50만원씩 최장 8개월간 ‘청년도약보장금’을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정치권은 표를 달라고 구애하며 20대를 띄우지만, 청년들은 대선에서 청년 의제가 부족하게 다뤄진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2021년 12월 2030세대의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정책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청년 1025명(여성 665명·남성 356명·기타 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0.5%가 ‘대통령 선거 진행 과정에서 청년 의제가 다뤄지는 정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보통’ 응답은 36.7%, ‘긍정적’ 응답은 12.8%였다.

‘대선에서 비정규직 처우와 복지를 개선하는 것에 동의하냐’는 물음에는 61.9%가 긍정했다. 부정적 응답은 12%에 그쳤다. 2022년을 살아가는 요즘 20대는 어떤 세대보다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보면, 20대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40%(2021년 기준)에 이른다. 20대 노동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모든 연령대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에서 비정규직 비중(38.4%)보다 높은 수치다. 20대 노동자에서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29.6%였다. 이 수치는 당시 전체 노동자에서 비정규직 비중(32.6%)보다 낮았다. 대통령 네 명을 거치는 동안, 청년노동의 질은 더 나빠졌다.

“근로기준법에 들어가게 해달라”

민주노총 청년사업실은 2022년 2월16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복합문화공간 ‘공존’에서 ‘청년노동자 대선 요구 토론회’를 열어, 노동자의 권리를 오롯이 인정받지 못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 4명이 나와서 발언했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많은 청년노동자가 근로기준법 바깥에 존재해요. 이제는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말하기보다는 근로기준법 안으로 들어오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이서영 민주노총 서비스노조연맹 조직부장의 말이다.

“지난해만 해도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사람이 440명이에요.” 배달노동자로 일하는 김종민(36)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배달플랫폼지부 기획정책국장이 말했다. 2022년 1월에는 배달노동자 2명이 마주 오던 트럭에 치여 숨졌다. 2월에는 버스에 부딪힌 배달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배달노동자가 사고에 가장 취약한 때는 배달이 몰리는 시간대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조사를 보면, 배달용 오토바이 교통사고는 저녁식사 시간대인 저녁 7~8시에 가장 많았다.

근로계약서 없는 ‘4차 산업의 꽃’

그런데도 배달노동자의 사고를 책임지는 사업주를 찾기 힘들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법의 보호에서 벗어나 있다. “(화력발전소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숨진) 고 김용균씨는 사고 책임을 회사에 묻는 일은 가능했죠. 저희는 못해요. 사업주와 근로관계가 아니고 위탁계약을 맺고 있으니까요.” 20대 배달노동자 대부분은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채 일한다. 사고가 일어나 다칠 때를 대비하려면,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유상종합보험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20대 초중반의 경우 사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유상종합보험에 가입하려면 보험료를 연간 1천만원 이상 내야 한다. 20대 노동자 대부분은 보험료가 부담돼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 오토바이를 탄다.

서비스일반노조 배달플랫폼지부는 배달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해달라고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김종민 기획정책국장은 “적어도 배달대행사나 플랫폼 업체가 배달노동자와 계약할 때 상해보험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배달노동자 공제조합을 만들어 보험료를 할인받게 하자는 요구도 나온다.

이른바 ‘4차 산업의 꽃’인 데이터산업에 종사하지만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청년노동자도 있다. 인공지능 데이터를 가공하는 아르바이트 업무를 했던 대학생 최한울(26)씨는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했다. 급여 기준이나 유의사항 정도가 들어간 계약서만 쓴 채 일해야 했다. “업무로 몸을 다쳐도 배상받을 근거가 없었죠. 게다가 주어진 일이 난도가 높을 경우, 계약서에 기준으로 한 작업 시간보다 오래 걸리다보니 결국 급여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곤 했어요.” 오랜 시간 앉아서 일하는 업무다보니 근골격계질환이 생길 위험도 컸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노동자로 인정받긴 하지만, 고졸 출신 청년노동자는 또 다른 차별에 맞닿게 된다. 이남호(21)씨는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하루빨리 당당한 사회인이 되고 싶어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공기관에 입사했다. “21세기인 지금도 커피와 심부름, 종이 파쇄는 저임금 고졸 노동자가 해야 한다는 문화가 여러 기업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아이엠에프(IMF) 시절에 입사해 20년 넘게 근무한 고졸 선배들은 2022년 현재도 사원 직급에 머물러 있었어요.”

이씨는 특성화고에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산업재해를 당하는 후배들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장실습에 나가면 보통 직원들과 똑같은 업무량에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해요. 법의 사각지대에서 죽거나 다치기도 하고요. 현장실습은 야간근로가 제한됐다고 하지만 3교대를 시키는 회사를 학교가 묵인하고 있어요. 현장실습생이라 직원들이 들어가는 휴게실에 못 가고 비상계단에서 상자 깔고 쉬었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도 많았습니다.” 아울러 대선 후보들에게 고졸 일자리 정책을 더 강화하고, 학력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을 약속해달라고 이씨는 말했다.

민주노총은 2월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청년노동자 대선 요구안’을 발표한 뒤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안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한 요구안 초안에는 △5명 미만 작은 사업장까지 노동법 준수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보장 △학력, 고용형태, 병력 등 직장 내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가부 폐지 공약, 소외감 느껴”

이날 토론회에서 청년노동자 대선 요구안 초안을 발제한 김우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선 후보들이 내놓는 청년 맞춤형 공약도 유효한 지점이 있지만, 그것이 청년노동자 이외의 열악한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고 사회구조적 변화를 끌어낼 가능성을 좁혀버리는 부작용이 있다”며 “(2월27일 발표할) 요구안은 청년을 포함한 열악한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방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요구안은 노조에 가입한 청년노동자와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청년노동자의 목소리를 모아서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하루 주어진 업무를 쳐내느라 정신없는 고졸 노동자에게 대선 후보들이 청년정책이라고 내놓은, 성별 갈라치기로 표 따는 ‘여성가족부 폐지’나, 물량이 부족해서 되지도 않을 청년주택 청약에 가점을 준다는 정책들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정치적 소외감을 느껴요.”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고졸 노동자 이남호씨의 말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은 3월9일. 아직 청년노동에 대해 대선에서 이야기할 시간은 남아 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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