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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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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보다 차별금지법이 급하다

릴레이 좌담을 마치며 더불어민주당에 보내는 공개서한
등록 2021-12-04 02:01 수정 2021-12-04 02:01
2021년 11월25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이 “차별금지법을 연내 제정하라”며 무지개 깃발 등 90여 개의 깃발을 들고 서울 여의도동 국회 담장을 에워싸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21년 11월25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이 “차별금지법을 연내 제정하라”며 무지개 깃발 등 90여 개의 깃발을 들고 서울 여의도동 국회 담장을 에워싸고 있다. 박승화 기자

3주에 걸쳐 왜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2021년 11월25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평등법(차별금지법)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오간 논의는 여전히 ‘동성애 찬반’에만 머물렀다. 이 토론회에 차별금지법 찬성 입장의 패널로 참석한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가 민주당에 공개서한을 띄운다. _편집자

더불어민주당이 무려 14년 만에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했다. 11월25일 열린 민주당 ‘평등법(차별금지법) 토론회’(이하 토론회)가 그 자리였다. 마침 나는 그날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20주년 기념식에 초대받았고 기념식 현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2017년 후보 시절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했던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나중으로 미룬 차별금지법을 다음 과제로 넘길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30초간의 내 외침에도 대통령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날 오후 나는 민주당 토론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토론자로 나섰다.

‘차별해도 된다’는 주장에 공적 자리 내준 민주당

이 토론회가 열린다는 공지가 뜨자마자 여론이 들끓었다. 성소수자, 아니 인권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들이 패널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반대 패널은 모두 보수 개신교를 배경으로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차별금지법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었다. ‘동성애는 성중독이며 에이즈를 전파해 사회적 폐해를 끼친다’ ‘성전환 수술을 하면 정체성을 상실한 영혼과 육체만이 남게 된다’ ‘성소수자는 치료나 치유해야 할 존재다’ 등 성소수자를 위험하고 불행하며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노골적으로 묘사해온 이들까지 포함됐다.

성소수자의 존엄을 훼손하는 이런 주장이 토론회를 통해 공론장에 울려퍼질 것이 예상됐다. 민주당에서 이미 3명의 의원(권인숙·박주민·이상민)이 평등법안을 발의했지만 이날 토론회에 민주당 쪽에서 평등법 제정 필요성을 논하거나 입장을 밝히는 발표자는 없었다. 대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지난 14년 동안 각계에서 활동한 이들이 여러 현장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내용을 발표했던 인사들과 ‘토론’하도록 배치했다.

‘중립적 위치’를 자임하며 특정한 사람을 차별해도 된다는 주장과 차별하지 말자는 주장 사이의 논쟁을 한번 들어보겠다는 민주당의 태도는 차별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목소리에 공적인 자리를 내줬고 민주사회에서 허용되면 안 되는 차별 선동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반인권적인 주장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없다.

존재 자체가 합법인지 묻는 어처구니없는 말들

아니나 다를까 반대자들은 하나같이 잘못된 통계와 정보를 가져와 동성애를 집중 타격했다. 방청석에 있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사는 참다못해 ‘자료에 의과학적 근거라며 인용된 논문의 본 취지는 사회적인 성소수자 차별이 일으키는 불건강에 대한 것인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기 위해 왜곡돼 실렸다’는 점을 지적했다. 찬성 패널인 성공회 자캐오 신부는 반대쪽에서 ‘2021년 영국에서 게이 주교가 서품을 받았다’는 가짜뉴스나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에서 평등법이 제정된 이후 종교와 사회가 어찌됐는지’를 교묘하게 왜곡해 자료집에 적어놓은 내용을 바로잡느라 할애된 토론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법안의 구체적인 쟁점과 내용은 도외시한 채 성소수자에 대한 찬반을, 누군가의 존재가 합법인지를 묻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오갔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근거로 등장하는 촌극은 말할 것도 없다.

예측 가능한 그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14년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활동해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남성 동성애자로서 왜 연내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지를 민주당 토론회 현장에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민주당의 차별금지법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민주당의 현실이라면, 우리 사회의 평등을 진전시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인 성소수자가 직접 토론회장에 서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차별과 혐오를 불식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임을 똑바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론회를 마친 지 수일이 지났다.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자임하는 민주당은 토론회에 쏟아지는 비판에 대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그 누구도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받지 않는 평등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토론회를 주최한 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환영사에서 밝혔다. 그러나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잘못된 정보를 늘어놓으며 성소수자는 차별받아 마땅하다는 주장을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는 첫 토론회의 제일 앞 좌석에서 마주한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이후에 어떠한 입장이나 계획도 없었다.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을 찾아가 ‘차별금지법 제정은 시기상조’라며 달랬지만, 성소수자 단체들이 보낸 숱한 정책질의서는 외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위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김대중 정부에서 설립된 인권위의 역사를 말하며 인권과 평등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민주당은 성소수자를 차별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일부 보수 개신교 세력의 목소리에 단호하게 입장을 내지 못하고 14년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유예해왔다.

보수 개신교는 달래고, 성소수자는 외면했다

성소수자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이 찬반의 대상, 다수결의 영역, 논쟁적인 의제처럼 다뤄져야 하는 수모를 14년 동안 겪어왔다. 나는 이런 수모를 겪은 당사자로서 민주당이 차별과 혐오를 조장한 세력에 동조함으로써 우리 사회 인권의 역사를 후퇴시킨 주역임을 밝히려 한다. 만약 민주당이 이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고, 과도한 비판이라고 여긴다면 지금 당장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당론으로 정하고 연내 제정을 목표로 추진하라. 그것만이 지난 14년 동안의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재명 후보를 포함한 20대 대선 후보들에게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사람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에 그 어떤 이유도 예외는 없다. 일부 보수 개신교 세력의 반인권적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더는 설 자리가 없음을 확인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인정하고 이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라. 나중에 하겠다, 언젠가 해야 한다고 말할 때는 지났다. 지금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때다. 대통령은 그다음에 하라.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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