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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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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개정안, 뭐가 문제길래?

8월19일 국회 문체위까지 통과…
정당한 보도 위축시킬 우려, 고의나 과실 입증 어렵다는 문제도
등록 2021-08-21 04:15 수정 2021-08-21 10:25
국민의힘 의원들이 2021년 8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도종환 위원장(왼쪽 앉은 이)을 에워싼 채 마이크를 빼앗으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 의원들이 2021년 8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도종환 위원장(왼쪽 앉은 이)을 에워싼 채 마이크를 빼앗으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언론 말살! 언론 장악! 민주당은 중단하라.”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언론재갈법 철회하라.”

2021년 8월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국민의힘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허위·조작 보도(가짜뉴스)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날 문체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의원 16명 중 9명이 찬성했다. 개정을 추진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들과 열린민주당 김의겸 위원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고, 국민의힘 위원들은 반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활용해 8월25일 열릴 국회 본회의에서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다만 시민사회·학계·언론계 등이 언론중재법의 적용 범위와 실효성 등 전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6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처음 발의했다. 가짜뉴스로 피해를 본 시민에게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액배상(손해배상금)’을 해주자는 게 핵심이었다. 손해배상액이 커질수록 언론사는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고, 손해배상액도 상향해 피해자의 실질적 피해구제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법안은 한 달 만에 문체위에 상정됐고 1년여 동안 계류됐다. 같은 기간 비슷한 발의안이 16개 나왔다.

이 16개 법안을 병합해 ‘새로운’ 개정안이 2021년 7월27일 문체위 소위를 통과하면서 논란이 불붙었다. 개정안에는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신설 △정정보도를 해당 언론 보도와 같은 시간, 분량 및 크기로 보도 △열람차단청구권(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결정을 받기 전에 미리 차단 조처를 하는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에 대해 야당은 물론 학계와 법조계, 시민단체, 언론계까지 반발했다. 민주당은 8월17일 수정안을 내놨다. △고위 공직자와 기업 임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제외 △열람차단청구표시 조항 삭제 △입증 책임을 원고로 명확히 규정 △손해배상 언론사 매출액 비율 기준 삭제 △구상권 청구 조항 삭제 등이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언론계 입장이다. 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는 공동성명을 내고 “자의적 해석과 오남용이 가능한 문제적 골격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설계부터 다시 하지 않는 한 ‘허위·조작 정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언제라도 비판적인 언론을 질식하게 하고, 거꾸로 민주당 자신을 겨눌 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① 가짜뉴스, 막을 수 있나

가짜뉴스를 막기보다는 정당한 보도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해 비판적 여론을 잠재우는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인 ‘허위·조작 보도’는 △허위 사실을 보도한 경우나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경우를 말한다. 2005년 삼성 X파일 보도, 2016년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처럼 보도 당시에 사실관계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언론인권센터가 “‘알 권리’를 무시한 채 법률 위반 보도를 징벌적 보도로 규정하는 것은 언론의 정당한 보도마저 위축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신설되는 열람차단청구권도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개정안을 보면 △언론 보도가 개인의 사생활 핵심 영역을 침해하거나 △인격권을 계속 침해하는 경우 언론과 포털 등에 기사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 보도의 사실 여부를 떠나 ‘전략적 봉쇄 전략’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언론중재위로 가든 소송으로 가든 최소 두 달 이상은 걸리는데 그 기간에 잘못된 보도로 개인이 입는 손해가 막대하다”며 “피해자의 권리는 최대한 늘리되 남용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반박했다.

정의당과 언론현업 4단체(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8월17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의당과 언론현업 4단체(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8월17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②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적절한가

우리나라는 명예훼손죄로 처벌이 가능하고 언론중재위나 재판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데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인정하면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이 있다. 언론에 의한 피해구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독일·프랑스·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들은 형사처벌을 원칙으로 하지만, 영미법계는 손해배상으로 다룬다. 예컨대 미국은 ‘악의적 허위 보도’에 대해선 피해자의 실질적 손해를 훨씬 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판례로 인정하지만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대륙법 체계를 따라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2항),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죄(형법 제309조 2항),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법 제70조 2항)에 의한 형사처벌이 가능한 상황이다. 또 기존 언론중재법을 보면 ‘언론 등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인하여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을 받은 자는 그 손해에 대한 배상을 언론사 등에 청구’할 수 있고 민법에 따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도 있다. 2021년 발표된 논문 ‘언론사의 위법한 보도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합헌성 검토’(김상유)를 보면 “우리 민사법과 형사법에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이 적지 않으며, 반드시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니라 정정보도의 강화, 위자료 산정의 현실화 등이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침해의 최소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은 언론사의 언론 출판의 자유의 과도한 제한으로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③ 피해자 구제, 가능한가

개정안은 언론사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요건으로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가중하는 경우 △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정정보도·추후보도가 있었음에도 이에 해당하는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사진·삽화·영상 등)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를 제시했다.

고의·중과실이 있는 경우를 단 네 가지로 분류하기 어려운데다 그 기준도 모호하고 추상적이라서 ‘삭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고의·중과실은 현실적으로 악의가 있었는지, 허위 보도가 되지 않게 충분히 취재했는지 종합적으로 사법부가 판단할 문제이므로 법률에서 요건을 명시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용성 한서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 요건은 피해자가 고의·중과실을 쉽게 추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비판적 언론 보도를 차단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8월17일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고의·중과실 추정은 국민이 입증하기 편하도록 만들어놓은 규정이라서 그 자체를 없애자고 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반대로 시민이 언론의 고의·중과실을 입증하기는 어려워 효과적인 피해자 구제 방법이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언론사보다 시민은 사실관계에 관한 정보를 불균등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한국의 언론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인 일반 시민 피해자가 허위·조작 보도로 인해 자신의 인격권이 침해됐음을 입증하고 더 나아가 그 보도가 언론의 고의·중과실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까지 입증해야 한다면, 고액의 소송비용으로 소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법원이 실제 배액배상을 인정할 가능성도 크지 않으니 시민의 피해구제책으로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④ 피해 배상, 현실화될까

잘못된 언론 보도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 손해배상액이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됐다. 2021년 7월 발표된 논문 ‘언론보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관련 시계열 데이터 분석’(김정민·황용석)을 보면, 2005년 언론중재법 제정 이후 2019년까지 손해배상액은 꾸준히 하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논문은 “법원의 (손해배상액) 인용액 분포는 1천만~2천만원, 조정 사건은 그보다 낮은 500만원 이하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을 미루어보면 현재 언론 관련 손해배상사건 인용액의 실질적인 수준은 20년 전보다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법원과 언론중재위의 손해액 산정에 대한 기준 확립과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손해액의 5배로 배상하라는 법률 규정이 생겨도 법원이 손해액을 낮게 인정하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중재위 위원으로 활동하는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중재위 위원장은 판사, 위원은 언론계·학계 인사 등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이 판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위원장이 손해배상액을 결정하고 위원들은 이의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라며 “법원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법원의 보수적 판결 성향으로 미뤄볼 때 개정안에 하한선은 없고 상한선만 있어서 법의 무력화가 우려된다”며 “손해배상액을 낮게 인정하지 않도록 하한선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러 논란에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8월25일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가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히며(8월19일) 언론중재법 개정 작업에 힘을 실었고, 국민 절반 이상(응답자 56.5%)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YTN 7월30일)도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짜뉴스를 막고 그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입법 취지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서중 교수는 “언론사가 언론답지 않거나 무책임한 태도로 피해를 주고, 언론이 시민보다 권력 상위에 있음에도 제대로 구제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온 법”이라며 “언론사는 허위·조작 보도를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믿을 만한 언론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우리 사회가 고민할 때”라고 당부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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