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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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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맞서는 관료, 이런 나라 또 있을까?

폐쇄적·계급제적 관료집단의 특권 세력화
‘기후위기’ ‘부동산’ 등 긴급한 시대적 과제 해결에 걸림돌
등록 2021-08-18 07:29 수정 2021-08-20 01:10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7월29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1인시위를 하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찾아가 격려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7월29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1인시위를 하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찾아가 격려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으면서도 계속 각을 세우며 대립해왔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모두 야당에 입당해 ‘호기 있게’ 대권에 등판했다. 그런가 하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치권의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신념’에 가득 차 있다. 이렇게 행정과 사법의 관료들이 대선으로 직행하고, 관료 출신 장관이 집권 정당과 정치인 총리에 맞서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과연 이런 한국 관료들의 행태가 다른 민주주의 국가의 사례에 비춰볼 때 합당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장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미국·프랑스

미국의 공무원 임용 방식은 기본적으로 분권화돼 있다. 각 부처 또는 각 기관에서 공석이 생길 때마다 채용하는 방식이다. 전문성과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경력자를 많이 선발한다. 그러니 미국 공무원의 전문성은 높다. 대학원 수료자의 대학 추천에 의한 중간 간부 채용 제도도 시행한다.

그리고 ‘정무직’의 임명 범주가 대단히 넓다. 즉, 대통령과 정부가 바뀌면 정부 국장급까지 정무직(Political Appointees)으로서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최고위층 공무원은 행정부 직급 1~5등급까지다. 이 다섯 등급은 한국으로 치면 장관(1등급)과 부장관(2등급), 차관(3등급), 차관보(4등급), 실국장(5등급)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장차관과 고위공무원단 전체가 정무직이며, 대통령이 자유롭게 임명한다. 한국처럼 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승진해서 올라가는 자리가 아니다.

프랑스는 부처별 채용을 기본으로 하며, 채용뿐만 아니라 승진에서도 항상 공무원 체계 밖 외부 인사의 진입을 허용하고 이를 제도화한다. 프랑스 역시 중앙부처의 국장, 임명직 도지사, 교육감, 대사 등 500여 개 직위가 정치적 임명직(자유재량 임명직)이다. 대통령은 이들을 국무회의 심의·심사를 거쳐 특별 채용하는 등 모두 7만여 개의 직위를 임명할 수 있다. 프랑스 헌법 제13조, ‘국가공무원 지위에 관한 법률’ 제25조와 시행령은 ‘중앙 행정부 국장은 국무회의에서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즉, 대통령이 국장급 이상의 직위를 모두 직접 임명한다.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대통령의 정무직 공무원 임명권을 제한하는 것은 통상 변화와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인 기존 경력직 공무원의 강력하고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우리나라 언론은 자주 말단 직급부터 차관이나 장관까지 올라가는 ‘입지전적 인물’이 많다는 뉴스를 ‘미담’으로 소개한다. ‘늘공’(공채 정규직 공무원)과 ‘어공’(개방형 임기제 공무원) 논리에 언제나 ‘어공’의 폐해만 특별하게 강조된다. 하지만 우리 공직사회는 현대적 공직 시스템의 표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철밥통’의 신분보장과 외부 진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독점을 기본으로 하는 일제강점기 ‘봉건적’ 공무원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차 추가경정 예산안을 설명하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차 추가경정 예산안을 설명하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시대적 과제 앞에 게으른 의사결정

독일에서는 정당에 고위 공직자들이 연계되고 소속된다. 정부의 정치적 의도와 목표에 지속적으로 일치하는 게 필요한 정치적 임용직 관료는 언제든지 이유를 명시하지 않고도 해임할 수 있다. 이 같은 고위 공직자 해임 제도가 도입된 것은 바이마르공화국 수립 후 이전 시대에 임명됐던 행정부의 ‘왕당파 공무원’들을 통제하고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일반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절차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임용된 관료는 해임에 대한 불복 신청의 권리가 없으며, 연방정부 인사위원회와 연방의회는 이에 관여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임명된 정무직 관료는 정당에 소속된다. 각 정당에 소속된 수백 명 규모의 정책 전문위원들은 많은 경우 행정부 근무 경험이 있으며, 정책 전문가로서 높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정책 전문위원 외에 에버트재단이나 아데나워재단 등 각 정당의 정치재단에 소속돼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전국 단일 시험으로 공무원을 채용하는 국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고등고시 제도를 포함한 공무원 채용시험은 박정희 군사정권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공무원들은 단순 시험에 의해 임용되는 일반 행정가이며, 더구나 1~2년 주기로 순환근무하기 때문에 전문가와 거리가 멀다. 일반 공무원의 최대 관심사는 승진이다. 승진을 꿈꾸는 자는 국민에 대한 봉사보다 인사권자에 대한 봉사와 충성을 앞세운다.

우리나라처럼 폐쇄형, 계급제적 관료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외부와의 경쟁에서 벗어난 관료들은 국민의 요구와 시대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철밥통’ 신분보장 제도하에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 특권 세력화한다. 그들은 모든 권한을 갖지만 자신들의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의사결정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발견되면 최대한 의사결정을 게을리한다. 이것이 그들이 취하는 최선의 전략이다. 지금 가장 긴급한 시대적 과제인 부동산 문제나 기후위기 대응도 관료들의 손에 넘어가면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크다.

무능한 정치가 조장한 세력

무능한 정치가 관료집단의 특권 세력화를 조장해왔다. 이것이 우리 사회 관료 문제의 핵심이다. 결국 이 관료조직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해 ‘관료지배의 사회구조’를 바꿔낼 수 있는가에 한국 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다.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지금의 ‘공직 시스템’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 프랑스처럼 고위 공직을 정무직으로 전환하거나 독일처럼 정치적 임용에 의한 정당 소속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변할 수 있다. 차기 정부가 관료지배 체제의 대개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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