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가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십원 한 장 피해 준 적이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021년 5월26일 국민의힘 의원들을 만나 “장모는 비즈니스를 하던 사람일 뿐”이라며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에 적극적으로 해명했다고 한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전한 말이다.
그런데 불과 한 달여 만에 ‘10원’도 없다던 피해액이 ‘22억9420만7480원’으로 불어났다. 윤 전 총장의 장모 최아무개씨가 불법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급여비를 부정수급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최씨와 동업자들은 의사가 아닌데도 형식상의 의료법인을 세운 뒤 요양병원을 개설해 의료법을 위반했다. 2년간 가로챈 요양급여비가 23억원 가까이 된다. 7월2일 의정부지법 형사13부(재판장 정성균)는 의료법을 위반하고 요양급여비용을 편취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로 최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지 사흘 만의 일이다. 판결 선고 이후 윤 전 총장은 “법 적용에는 누구나 예외가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거듭 밝혔다.
과연 최씨는 ‘예외’가 아니었을까. 의혹이 제기되는 핵심은 ‘뒤늦은’ 구속이다. 최씨와 공모 관계인 동업자들은 이미 2015년 경찰 수사를 받은 뒤 1명은 징역 4년, 2명은 각각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17년 3월 대법원 판결까지 내려졌다. 최씨는 동업자 B에게서 ‘앞으로 병원 운영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책임면제각서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2020년 4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이 최씨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고, 그해 11월 최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최씨의 사위인 윤 전 총장은 2012년 김건희씨와 결혼했고, 이 사건 수사 당시 검찰에 재직 중이었다. ‘검사 사위’가 불입건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윤 전 총장 쪽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다가 대구지검으로 좌천된 처지였다고 항변한다.
최씨 판결문에 나타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그림 참조). 2012년 9월, 최씨는 A와 함께 경기도 파주에 있는 건물 3개층과 의료시설(요양병원)을 사들였다. 최씨는 요양병원 운영자인 의사 D에게 계약금 2억원을 지급했다. A도 3억원을 투자했다. 그해 11월까지 잔금 9억원을 지급하고 D의 대출금 24억원도 인수하기로 했다. 최씨와 A가 의료법인 이사장이 되도록 D가 서류 절차에 협조하는 조건이었다. 애초 이 건물과 병원을 인수하려던 이는 동업자 B와 C 부부였다. 이들은 건물 인수자금이 부족하자 최씨와 A를 끌어들였다. 대신 의료법인 이사장 자리와 병원 수익금을 주기로 약속했다. 2012년 11월 최씨와 A는 자신들의 이름 중간글자를 딴 의료재단을 설립하고 2013년 2월 파주에 요양병원을 열었다.
의료법상 의료인이나 비영리 의료법인이 아니면 병원을 개설할 수 없도록 금지한다. 이른바 ‘사무장 병원’, 즉 의사 면허만 빌려서 병원을 열거나 비의료인이 의사를 고용만 하면 불법이다. 법원은 최씨 등이 운영한 요양병원도 “형식적으로만 (의료법인 등을 통해)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로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의료법을 위반한 ‘사무장 요양병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병원 이사장이 된 최씨는 사위인 K를 병원에 보내 근무하도록 했다. K는 2013년 2~6월 행정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간호사 채용 면접을 보는 등 병원 내부 업무를 총괄했다. 최씨는 병원 직원들에게 줄 월급이 부족할 때 의료재단 계좌에 1억5천만원을 송금하는 등 병원 업무에 깊숙이 관여했다. 병원 건물을 추가로 인수할 자금 17억원을 대출받기 위해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내놓기도 했다. 다만 최씨는 2013년 7월 병원 운영에서 손을 떼고 의료재단에서 3억9700만원을 돌려받았다. 2014년 5월 B로부터 ‘의료재단은 이사장에서 사임한 최씨에게 민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책임면제각서까지 받았다. 최씨는 2014년 7월 의료재단 이사장직에서 정식 사임했다.
최씨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 위해 이사장으로 이름을 올렸을 뿐이고 병원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최씨가) 애초부터 병원 수익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생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특히 2015년 수사 당시 최씨를 불입건한 주요 근거였던 책임면제각서와 관련해서 법원은 “오히려 피고인이 (2014년) 이전에 의료재단 및 병원 설립·운영에 관여했다는 점을 추단케 한다”고 명시했다. “각서를 받는 등 최씨가 자신의 책임을 은폐·축소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고, 공범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징역형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
최씨는 현재 의정부지법에서 사문서위조 혐의로도 재판받고 있다. 2013년 경기도 성남시 도촌동 땅을 사들이면서 동업자 안아무개씨와 공모해 347억원이 있는 것처럼 통장 잔고 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한국자산관리공사 직원에게 부동산 정보를 얻으려면 자금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 안씨에게 속아서 거짓 증명서를 만들어줬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사기 사건 피해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씨는 최씨와 동업 관계라고 맞선다. 최씨 등은 이 땅을 안씨 사위 명의로 계약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아내 김건희씨 역시 2020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고발돼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2010~2011년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시세조종을 해 주가를 조작하는 과정에 김씨가 주식과 자금을 대고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는다. 김씨가 2012~2013년에도 권 회장한테서 도이치모터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신주인수권 51만여 주를 헐값에 넘겨받은 뒤 사모펀드에 팔아 차익을 얻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윤석열 전 총장에게 가족과 관련한 각종 의혹은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장모 구속’이라는 첫 악재는 야권 대선 주자 1위의 높은 지지율을 아직은 흔들지 못하는 분위기다. 윤 전 총장은 7월6일 “제 뿌리는 충청”이라며 대전·충청 지역을 찾고 탈원전 반대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광폭 민생 행보에 나섰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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