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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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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멀어지고 위험은 다가온다

한-미 정상회담 ‘판문점선언’ 지지 성과… 미국의 ‘중국 견제’에 휘말릴 위험 피해야
등록 2021-05-29 16:45 수정 2021-05-30 10:14
2021년 5월2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던 중,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특별대표에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2021년 5월2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던 중,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특별대표에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우리는 2018년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하였다.”

2021년 5월21일(현지시각)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가장 큰 성과로 일컫는 부분이다. 특히 판문점선언이 명시된 것을 두고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이 넓어지고 남북대화로 북-미 대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관계 진전을 촉진해 북-미 대화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판문점선언이 빛바랜 이유부터 성찰해야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는 4·27 판문점선언을 두고 종전선언과 완전한 비핵화 외에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 전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 전환 등 다양한 남북협력 방안이 담겼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판문점선언에 대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를 이끌어낸 만큼, 이들 합의 가운데 일부를 추진해볼 공간이 생겼다고 전망한다.

이러한 진단은 2019년 이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가 좌초 위기에 처한 원인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판문점선언 이후 정부·언론·전문가들이 간과해온,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에서 최초로 합의한 문구가 있다.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조건이 붙었다.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가 바로 그것이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 해소와 신뢰 구축은 전통적으로 남쪽이 중시한 부분이다. 이는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 분야 합의로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정작 이때부터 “단계적 군축”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또 북한은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판문점선언과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약속에 따라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이 중단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한-미 훈련도 계속됐다.

북한은 2021년 들어서도 한-미 연합훈련과 남한의 첨단무기 도입을 “근본 문제”로 일컬으면서 이것의 시정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판문점선언 같은 봄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동맹의 억제 태세 강화를 약속하고, 합동 군사 준비 태세 유지의 중요성을 공유”하기로 했다. 이는 동맹 차원의 군비 증강과 연합훈련을 지속하려 한다는 해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이 제기한 근본 문제와의 간격은 여전히 남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역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던 결정적 이유는 대북 제재 집착에 있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제재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체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은 일절 없었다. 오히려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제재에 대한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북한과의 간극이 더욱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21년 5월2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한국전쟁 참전 군인 명예훈장을 받은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5월2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한국전쟁 참전 군인 명예훈장을 받은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왜 한국의 미사일 주권을 인정했나

정부 안팎에선 한-미 미사일 지침이 종료됨에 따라 미사일의 사거리와 탄두 중량 제한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 것이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미사일 주권 회복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하면서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를 빌미로 삼을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도 있다. 우리가 미-중 충돌에 연루될 위험을 키울 소지도 품고 있다. 이는 ‘미국은 왜 한국의 미사일 주권을 인정해준 것일까?’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남중국해 문제와 더불어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표현이 담겼는데, 한-미 공동성명에 이런 구절이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를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한국이 미-중 충돌에 휘말릴 위험은 대만해협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거나 충돌이 발생할 때 가시화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폴 라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는 5월18일 미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의미심장한 입장을 내놨다. “주한미군은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예하 사령부”라며 “주한미군은 인도·태평양 사령관에게 역외(한반도 밖) 우발 사태나 지역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여러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우발 계획과 작전 계획에 주한미군의 능력을 포함시키는 것을 옹호할 것”이라고도 했다.

라캐머라를 비롯한 미국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 밖에서의 “우발 사태나 지역적 위협은” 바로 중국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의미한다. 만약 미-중 긴장이 고조하거나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주한미군이 투입되면 제3자인 한국은 미국에 발진 기지를 제공하는 셈이다. 우리의 운명적 순간의 지점이 여기에 있다. 미국은 필요할 때 주한미군 투입,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레이더 동원, 제주해군기지의 기항지 사용 등에 나서려 할 것이고 한국이 이 중 하나라도 허용하면 미-중 충돌에 연루될 위험이 매우 커진다.

중국은 이 가능성에 대비해 군사적 대응책을 강구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중국 군사 행동의 플랫폼이 될 수 있는 주한미군 기지, 사드 기지, 제주해군기지는 모두 한국 영토다. 이는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대중 억제력 강화의 필요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중장거리 미사일은 그 유력한 수단이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국도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은 동맹과 함께할 때 가장 강력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는데, 미국이 이번에 한국의 미사일 주권 회복에 동의해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을 최대 경쟁자로 여긴다. 한국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미국의 동맹국이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미국으로선 한국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대중 억제력을 강화해주는 것이 환영할 만한 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미-중 충돌에 연루될 위험과 더불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셈법이 달라질 가능성을 잉태한다. “동맹 강화”에 박차를 가해온 바이든 행정부는 4월 미-일 정상회담과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 때문에 아시아 세력 균형이 중국에 불리하게 전개될 수 있다. 이에 맞서 중국 역시 러시아와의 결속을 강화하며 북-중 동맹을 강화하려 할 것이다. 북핵 문제는 전통적으로 중국에 ‘전략적 부채’처럼 간주됐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 동맹이 강화되면, 중국 내에선 북핵을 한·미·일을 견제하는 데 유용한 ‘전략적 자산’으로 삼자는 인식이 자라날 수 있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 6자회담 재개를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한반도 문제를 미-중 전략 경쟁과 더욱 유착시켰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는 더욱 멀어지고 미-중 충돌에 연루될 위험은 키우면서 말이다. 지나친 기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과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 투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제주해군기지에도 이지스함을 시작으로 핵잠수함과 핵항공모함을 순차적으로 보낸 바 있다. 임시 배치 상태인 사드의 정식 배치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느낌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이끌어낼 돌파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반전을 도모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2021년 여름에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조속히 발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상황 악화 방지와 대화 재개를 모색하는 거의 유일한 가용 수단이다. 동시에 2008년 이후 산소마스크를 낀 신세로 전락한 6자회담 재개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 사이의 신냉전 유령이 배회하는 오늘, 이들 나라를 모두 포괄하는 6자회담 재개는 공동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는 거의 유일한 대화 틀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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