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8월29일 새 대표를 선출한다. 이낙연, 김부겸, 박주민(기호순) 세 후보가 경합 중이다. 앞으로 2년간 176석의 거대 여당을 이끌 당대표가 되기 위해 세 후보는 7월25일 제주를 시작으로 주말마다 전국 광역시·도 대의원대회에서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 후보가 당대표가 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겨레21>은 각 후보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측근’ ‘동지’ ‘절친’들에게 물었다. ‘당대표 후보 대신 쓰는 출사표’ 콘셉트다.
김부겸 후보 쪽에선 이진수 김부겸 후보 캠프 비서실장이 나섰다. 여의도 필독서로 꼽히는 <보좌의 정치학>의 저자인 그는 김 후보의 보좌관이자 동지적 관계로 26년 동안 끈끈하게 인연을 이어왔다._편집자주
경기도 부천에서 시흥으로 넘어가려면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우고개와 여우고개인데, 둘 중 어느 고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갯마루에 있던 찻집 2층에서 만났다. 제정구 의원의 상을 치르고, 추모사업회 발족을 위한 첫 모임까지 마친 1999년 3월 말이었다.
1994년부터 나는 제 의원의 보좌관이었고, 김부겸 전 의원은 제 의원의 정무팀을 이끌어온 수석 참모였다. 내가 물었다. “정치를 어디까지 할 거예요?” 무엇을 목표로 정치할 거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응, 난 좋은 정당의 당수를 한번 하고 싶어”라고 답했다. 대통령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하지만 ‘좋은 정당’이란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21년 전의 꿈, 좋은 정당의 당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마다 한 번씩 다 감옥에 갔던 김부겸이다. 체질에 안 맞는 한나라당에서의 하루하루가 치욕이었다. 그때는 많은 정치인의 인생이 그렇게 꼬였다. 우선 원외 위원장이던 김부겸을 등원시켜야 했다. 2000년 총선에서 당선됐고, 2003년 한나라당을 때려치웠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렇게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을 거치며 긴 곡절 끝에 마침내 민주당은 ‘좋은 정당’이 되었다.
이제 그는 당대표(당수)에 도전하고 있다. 21년 전의 꿈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묻는다. “왜 나와요?” 대선 지지율 1위 후보가 나오니 질 게 뻔한데, 왜 나오느냐는 뜻이다. 그러나 언제는 질 거 몰라서 대구로 내려갔던가?
어차피 김부겸은 어디서든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대구·경북(TK) 출신인데 운동권이다. 그러니 대구 가면 ‘김대중 당에 있는 빨갱이’ 소릴 듣고, 서울 마포 민주당사에 오면 대구 사투리 쓰는 유일한 정무직 당료였다. 그렇게 어디서도 주류에 끼이지 못한 그가 3선을 한 수도권 지역구를 버리고 또 대구로 내려갔다.
대구는 정말 어려운 곳이다. 2016년 총선 때, 한때 운동권 선배이던 김문수 후보조차 선거 내내 김부겸에게 ‘간첩에게 돈 받은 빨갱이’라고 대놓고 공격했다. 지난봄, 총선 중반에 해괴한 제안이 들어왔다. 대구의 이른바 여론주도층 그룹이 ‘조국 사태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문재인 정부의 5대 실정에 대해 공개 비판해라. 그럼 너 하나는 살려주자고 우리가 지지 선언을 해주마’라는 유혹(?)이었다. 물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구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20%다. 미래통합당과 일체감이 높고, 보수적인 그들과 대화하려면 일단 쏟아붓는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욕을 한판 거하게 들어줘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게 아니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찬찬히 설득해야 한다. 그 설득으로 30%를 더 얻으면 정당 지지율 20%와 합쳐 50%를 넘길 수 있다. 김부겸이 2016년 총선에서 62.3%를 얻어 이긴 건, 그가 보수를 설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1980년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학생 1만 명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김부겸이 그렇게 대구에서 보수를 설득하다보니, 화끈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번 경선에서도 그 문제는 계속 김부겸을 괴롭히고 있다. 대선 지지율 1위 후보와 싸우니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우리는 기꺼이, 즐겁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두 가지 목표 때문이다. 첫째, 당이 이제 김부겸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그동안 ‘고구마’처럼 보였던 그가 달라지고 있다. 대구에서처럼 참지 않고, 가슴에 담긴 말을 다 한다. 선거운동을 한 지 한 달밖에 안 됐지만, 이미 속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르겠다. 그의 말이 ‘사이다’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재보선과 대선에서 ‘김부겸의 쓰임새’
둘째는 쓰임새의 재확인이다. 김부겸에게 이번 선거는 자신의 쓰임새를 당에 다시 묻는 선거다. 그동안은 지역주의 벽을 깨고 당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선봉대 역할을 했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가야 할 때다.
민주당 당원들은 워낙 선거학 박사들이다. 특히 호남 당원들은 전략적 투표를 한다. 역대 전당대회 결과가 항상 황금분할이었던 이유다. 당원들은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고민할 것이다. 김부겸이 몇%를 득표하게 할 것인가? 영남을 상징하는 김부겸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건가?
김부겸의 선거 구호도 ‘영남 300만 표를 가져와 대선 승리에 앞장서겠다’이다. 누가 대선 주자가 되느냐에 따라 영남 표심은 확확 바뀐다. 1997년 김대중 후보는 영남에서 13.6%를 얻었다. 2017년 문재인 후보는 31.5%를 얻었다. 20년 동안 지역주의는 많이 완화됐다.
그러나 지난 총선을 보면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야당의 대패가 예상되자 영남은 다시 똘똘 뭉쳤다. 모든 게 걸린 2022년 대선은 더 강고하게 뭉친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만약 호남 후보가 될 경우, 김부겸은 더더욱 필요한 존재다. 2017년 문재인 후보 때처럼, 그는 마이크를 들고 유세 방해와 싸워가며 경상도 장마당을 샅샅이 누빌 것이다.
쓰임새는 또 있다. 재보궐 선거가 커졌다. 서울과 부산은 유권자만 1150만 명인 대한민국 양대 도시다. 만약 통합당에 뺏긴다면 민주당에는 악몽이 시작된다. 보수언론과 야당은 매일 아침 레임덕을 운운하며 대통령을 흔들어댈 것이다. 대선도 위험해질 수 있다.
져서는 안 될 선거다. 재보선 지휘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그때 대선 주자인 당대표는 민주당의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물러나고 없다. 그럼 지금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세워서? 물러난 대선 주자를 다시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세워서? 그래서는 선거에 힘이 안 붙는다. 안 그래도 명분이 약한 재보선이다. 후보를 보호하고 자신이 대신 욕먹어도 될 대표라야 한다. 자기 지지율이 아니라,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을 우선할 대표라야 한다. 대선 주자는 아무래도 자기 인기를 더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다. 임기 말로 갈수록 여당은 정책적 성과를 내야 한다. 여러 정책 현안이 정부와 여당을 괴롭힌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문제다. 김부겸은 2012년 낙선한 뒤 장관 시기를 빼고 지금까지 거의 매주 공부 모임을 해왔다. 같이 공부한 교수만 200명이 넘는다.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는 7월15일 김부겸과 ‘경제와 한반도 정책’을 주제로 2시간30분 동안 인터뷰했다. 그리고 총 3만 자에 가까운 긴 기사를 썼다. 성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19개 질문에 김부겸의 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질문지나 어떤 정보도 사전에 주지 않은 인터뷰였다. 전당대회가 약속 대련처럼 흘러가는 게 안타깝다. 코로나19 때문에 언택트(비대면)로 이뤄지니, 연설 분위기도 안 뜬다. TV 토론도 미리 짜인 각본대로 진행된다. 김부겸의 정책 내공이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2021년 4월에 강을 건너려면…
민주당 앞에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재보선과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 정책 과제를 꼼꼼히 챙겨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한 개인이 아니라 당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2021년 4월에 강을 건너야 하는데, 3월에 말 갈아타는 법 아니다.
김부겸의 ‘진심’을 알아봐준다면, 지금 그의 ‘쓰임새’는 당대표다.
이진수 ‘김부겸 당대표 후보’ 비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