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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구멍’ 메우려다 ‘논란의 구멍’에 빠지다

#미투에 ‘스펙쌓기’용 창업 의혹… 민주당 부실 인재영입, 왜?
등록 2020-02-01 05:34 수정 2020-05-02 19:29
#미투 의혹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두 번째 영입 인재인 원종건씨가 1월28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격 반납’ 입장을 밝힌 뒤 퇴장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미투 의혹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두 번째 영입 인재인 원종건씨가 1월28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격 반납’ 입장을 밝힌 뒤 퇴장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1월29일 여의도는 ‘인재들’로 들썩였다. 국회 정론관.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2호 원종건(27)씨 앞에 카메라가 몰렸다. 이 자리에서 원씨는 영입 인재 자격을 반납하고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옛 여자친구의 #미투 고발로 당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원씨는 기자들 질문을 받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정치권 입성 30일 만이었다.

비슷한 시각 국회 당대표회의실, 영입 인재 14호 조동인(30)씨가 이해찬 당대표에게 입당원서를 냈다. 다른 영입 대상과 마찬가지로 조씨도 대학 4학년부터 시작한 창업 전선에서 8년 동안 다섯 차례나 회사를 창립했다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영입 인재 둘러싼 논란

구설은 계속됐다. 조씨의 경험담이 ‘스펙 쌓기’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2015년 일주일 동안 기업을 3곳 창업했고 2년3개월 뒤 동시에 폐업한 것이 문제였다. 영입 인재 11호 최기일 건국대 교수 또한 논문 표절이 확인되면서 비판 대상이 됐다. 양승태 사법농단의 주역으로 꼽히던 이수진 전 판사나 이탄희 변호사의 영입도 다시 한번 입길에 올랐다. 당 내부에서 영입 인사 검증과 선정 기준이 투명하지 않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당내 기존 정치 신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선거 국면에서 영입 인재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공천에서 혜택받을 경우 당내에서 열심히 준비하는 이들한테는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앞장섰다.

원종건·조동인씨의 진퇴가 갈리고 영입 인재들이 재조명받은 당일, 원씨를 제외한 영입 인재들이 한곳에 모였다. 비공개 일정이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각자의 영역 현안을 발제해 공부를 이어가자는 계획을 내놓았다. 전례대로라면 조씨를 환영하고 열네 명이 총선 각오를 밝히며 활기가 넘쳤어야 했다. 이날 분위기는 침통했고 오가는 말에는 걱정이 스몄다. 당 안팎에서 갈등의 진원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엿보였다. 총선까지 70여 일, 곡절 많은 대한민국 선거를 고려하면 아직 시간은 많다.

은 오랜 시간 인재영입에 관여해온 민주당 관계자를 인터뷰해 영입 속사정을 들었다. 당에서는 인재영입과 관련된 업무나 조직은 공식적으로 비공개가 원칙이다. 당대표인 이해찬 인재영입위원장이 발언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입 대상 선정 과정에서 들어올 수 있는 외부의 ‘부당한 압력’을 방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선거 실무를 총괄하는 윤호중 사무총장, 지난 선거부터 인재영입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최재성 의원 정도가 거론되지만 사실확인에는 늘 인색하다. ‘밀실영입’이라는 비판에도 영입 대상 비공개 방침은 변함없어 보인다.

1월29일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관계자는 민주당 인재영입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현재 제기되는 비판은 영입 인재를 위해서라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밀실논의일 수밖에 없다”

밀실논의가 영입 대상자를 위해서라니.
“명망가가 아니라 부문별로 당에서 (영입해) 내세울 만한 사람을 고르다보니 대상자가 정치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직업군에 따라서는 정치권에서 접근한 것만으로도 더 이상 일하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도 있다. 당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려는 순간, 당사자는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돼버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광일지 몰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생계를 잃을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여의도 정치가 신뢰를 잃어버리고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돼버린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김해영 최고위원처럼) 당내 위원회 등에서 활동해온 당원을 키워내자는 목소리가 높다.
“인재 육성 시스템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유권자에게 표를 구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그것대로 가고 당이 유권자에게 들려줄 이야기의 구멍을 채울 자원은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구해야 한다.”

이야기의 구멍을 채운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선거가 다가오면 유권자가 원하는 내용이 있다. 대개는 그걸 인물로 보여주는데 당 안에서 다 채울 수 없다. 지난 선거를 예로 들면 개혁적 보수 색깔을 갖고 있던 표창원 경찰대 교수, 업계에서 손꼽히는 자수성가형 인물인 김병관 당시 웹젠(게임업체) 의장,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등을 영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그에 걸맞은 메시지를 던졌고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메시지 중심으로 인재를 영입한 것이다.”

민주당이 인재영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96년 15대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는 김한길(작가), 정동영(방송인), 추미애(판사), 천정배(변호사) 등을 영입했다. 16대 총선에서는 규모를 더 키웠다. 우상호, 이인영, 임종석 등 총학생회장 출신을 중심으로 이른바 ‘386그룹’을 정치권으로 불러들였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지키는 이낙연 전 총리 영입도 이때였다. 시스템은 간단했다. 당 실세로 불리던 권노갑 의원 등이 공천권을 쥔 당 총재의 권한을 위임받아 영입 대상에게 전국구(현재의 비례대표) 또는 당선 가능 지역 출마를 약속하는 식이었다.

2016년 20대 총선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2015년 말 문재인 대표 시절, 명망가만 아니라 당의 메시지를 채우는 데 필요한 숨은 인재를 찾자는 원칙을 세웠다. 개인의 ‘이야기’에 집착한 것도 이때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가 1월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종건씨 영입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가 1월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종건씨 영입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연합뉴스

명망가 추천에서 빅데이터 분석까지

대상자를 선별해 접촉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외부 재야와 시민사회단체 또는 의원 등 당 내부에서 추천을 받아서 영입 인사로 언론에 소개하는 게 전부였다면 2016년에는 앞선 추천 목록에 인재영입팀이 따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포함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포털 사이트 등에서 공들여 찾은 인물을 더했다. 영입팀에서는 각 분야를 대표할 만한 상징성 있는 인물 100명을 모은 뒤 접촉해갔다. 이번 영입에서는 빅데이터로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별하는 방법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물은 중진 의원이나 당 관계자의 추천이나 설득을 통해 영입했다. 이 관계자는 “2016년 영입부터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영입 인재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는’ 영입 단계에서 지역구나 비례대표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말하자면, 영입 시스템과 출마자를 가르는 후보자 선출 시스템은 별개라는 것이다. 이어 “각자가 비례대표나 지역구를 택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며 “물론 혜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언론에 더 자주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혜라면 특혜”라고 했다.

검증은 어떻게 이뤄졌나. 검증 부실 논란이 크다.
“당사자 동의를 받는다고 해도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하듯 들여다보기는 힘들다. 나름의 절차가 있긴 하다. 2016년을 예로 들면 실무팀에서 몇 시간 동안 대상자 압박 면접을 했다. 그 뒤에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따로 일대일 면접을 거쳤다. 이번에도 실무자가 조금 바뀌었을 뿐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해도 이번 같은 #미투는 걸러내기 쉽지 않다. 대개 세평을 듣는 과정에서 소문을 접하는데 당사자가 강하게 부인하면 팀 단위에서 당락을 결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당대표가 직접 나서서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한 만큼 앞으로는 영입 때 더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원씨의 경우 영입 당시 이미 인터넷에 #미투 관련 소문이 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에서도 이를 접하고 물었지만 원씨가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인재영입 과정에서 당 내부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원씨에 대해서는 당내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필요하다면 제명 등 추가 조처를 검토하기로 했다.

개인의 성공을 위해 산 사람을 찾다보니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그 지적은 틀렸다고 하기 어렵다. 정치권 밖에서 찾다보니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2016년 한 영입 대상자에게 접촉하니 ‘민주당에 후원금을 내면 되겠느냐’는 식으로 나오기도 했다. 정치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이 인사는 결국 영입됐다). 그렇다고 무조건 스펙만 보고 뽑는 건 아니다. 또 영입된 인사들은 선거 국면에서 정치인으로 체질 개선이 되기도 했다. 이탈한 사람도 있지만.”

“언론, 당에서 키운 인물 주목한 적 있나”

그는 인재영입 시스템의 결점을 인정했다. 몇몇 당내 인사가 추천하는 인물이 영입될 때 부작용도 우려했다. 그럼에도 지금 달리 대체재를 찾을 수 없다는 뜻은 분명해 보였다. 특히 육성 시스템 안에서 정치인이 자랄 수 있을 만큼 정당정치가 성숙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이와 관련해, 언론엔 할 말이 있었다. 이 관계자는 “영입 인재를 제외하면 언론이 당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올라온 인물에 주목한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영입은 계속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원씨가 낙마한 직후 이인영 원내대표가 CBS 라디오 에 나와 “인재를 영입하면서 좀더 세심하고 면밀하게 살피지 못해 국민들께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이 있다면 사과드린다”며 “검증 과정에서 빠뜨린 부분들이 있는지 더 점검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불과 한 시간여 뒤엔 이해찬 대표가 직접 나섰다. 이 대표는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영입 인재 중 한 분이 사퇴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국민과 당원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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