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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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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엿으로 바뀌고

조국 후보자를 사실상 ‘특별수사팀’급으로 수사한 윤석열 검찰…

검찰 개혁의 아이콘이 검찰 힘을 키운 딜레마
등록 2019-09-07 14:18 수정 2020-05-03 04:29
9월3일 윤석열 검찰총장 앞으로 배달된 호박엿. 연합뉴스

9월3일 윤석열 검찰총장 앞으로 배달된 호박엿. 연합뉴스

9월4일 가 보도한 사진 한 장은 ‘윤석열 검찰’이 처한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윤석열 검찰총장 앞으로 배달된 호박엿, 가락엿, 쌀엿 소포 더미를 찍은 사진이다. 는 관련 기사에서 ‘지난 월요일(9월2일)부터 계속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수신자로 하는 엿 소포가 배달되고 있다’는 대검찰청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기사는 이 소포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반대하는 이들이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민주당 “검찰이 생활기록부 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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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는 꽃바구니 배달이 줄을 잇고 있다. 조 후보자 지지자들이 보낸 응원의 꽃바구니다. 이런 꽃바구니는 윤 총장도 받아본 적이 있다. 2017년 초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으로 있을 때였다. 당시 특검팀에 꽃바구니를 보낸 이들과 지금 조 후보자에게 꽃을 보낸 이들은 정치적 성향이 같다고 봐야 한다. 국정 농단 특검과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이 윤 총장의 취임을 강력히 지지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배경을 가진 ‘윤석열 검찰’이 출범 한 달여 만에 조 후보자 지지자들로부터 ‘엿 세례’를 받은 것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조 후보자 지지자들은 문재인 정부 핵심 지지층이다. 이들의 엿 세례는 윤 총장에 대한 배신감을 표출한 것으로 읽힌다. 이들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개시된 초유의 검찰 수사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한다. 검찰 개혁의 아이콘인 조 후보자를 낙마시키거나, 최대한 많은 약점을 틀어쥐어서 개혁의 칼날을 무디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정치 영역인 장관 후보자 검증 문제에 검찰이 심판자로 나선 것이 과연 이치에 맞느냐는 근본적 질문도 던진다. 검찰이 ‘정치해결사’를 자임한 것은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9월4일 여당이 검찰의 ‘피의 사실 유포’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조 후보자 딸의 생활기록부가 유출된 배경으로 검찰을 지목했다. 앞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조 후보자 딸의 고교 생활기록부 내용을 공개한 데 따른 것이다. 여권은 8월27일 검찰이 조 후보자 의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이후부터 검찰을 향해 날 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 주재로 긴급최고위원회를 열어 검찰을 성토했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조 후보자 딸의 개인정보가 주 의원 등에 의해 공개된 것을 매우 심각한 범죄행위로 보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사실상 검찰을 통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그 근거로 “교육부 차관 답변에 따르면 딸의 자료 열람은 2건이 있었다. 조 후보자 딸 본인과 수사 당국”이라고 설명했다. 조 후보자 딸이 타인에게 유출할 리 없으니 검찰이 유출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홍 수석대변인은 “주 의원이 검찰 출신인데, 검사 출신 선배 정치인에게 고의로 흘린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며 “검찰이 유출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월4일 대검찰청 구내식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월4일 대검찰청 구내식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법 농단 수사처럼, 언론플레이로 피의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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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다음 대목이다. 홍 수석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을 서거에 이르게까지 한 ‘논두렁 시계 사건’에서의 검찰 행태를 잊지 않고 있다. 윤 총장이 엄정하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분이라고 믿는데, 민주적 절차와 인권 보호를 무시한 수사는 올바를 수 없다”고 말했다. 윤 총장에게 ‘당신을 지지했던 이들을 실망시키지 말라’는 경고였다.

검찰은 펄쩍 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과 전혀 무관한 일이다. 지난번 TV조선 보도 관련해서도 그런 주장(피의 사실 공표)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 무관하다고 명백히 밝힌 바 있다”고 밝혔다. 앞서 8월27일 TV조선은 검찰이 이날 전격적으로 실시한 압수수색 관련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부장검사 고형곤)가 조 후보자 딸에게 6학기 연속 장학금을 지급한 노환중 부산의료원장의 집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노 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주치의 선정에 일역을 담당했다’고 쓴 문서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해당 언론사가 ‘독자적으로 취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압수물을 유출했다거나 심지어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방송을 대동했다는 등 사실이 아닌 주장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검찰에서 수사 내용을 야당에 흘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목표를 쫓아가는 인지수사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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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피의 사실 공표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사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 수사 내용을 언론에 조금씩 흘리는 ‘언론플레이’는 검찰의 장기 가운데 하나였다. 더구나 인지수사(특수수사)를 전담하는 특별수사부(특수부)는 노골적인 언론플레이로 수사 대상자의 반발을 자주 샀다. 최근 사법 농단 수사에서도 수사팀의 피의 사실 공표 시비가 벌어졌다. 판사들을 조사한 당일에 조사 내용이 거의 실시간으로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당시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판사들은 “노무현 대통령 수사를 했던 옛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의 언론플레이를 보는 듯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사법 농단 수사는 ‘윤석열 사단’의 작품이다.

조 후보자 수사에 특수부 인력을 대거 투입한 것도 논란거리다. 윤 총장은 기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다 특수3부와 대검찰청 반부패부 소속 일부 검사까지 투입했다. 검사만 10명이 넘는 사실상의 특별수사팀이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특수부 검사들이, 장관 후보자 딸의 ‘입시용 스펙’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작업을 하는 게 과연 합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고등법원 부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스펙 위조는 기껏해야 사문서 위조죄로 처벌될 텐데, 특수부 검사들이 대거 투입된 것에 견줘 옹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수사 초기에 조 후보자 가족의 사모펀드 의혹에 초점을 맞추는 듯했으나, 펀드운용사 대표 등 핵심 관계자들이 국외로 출국하는 바람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수사 착수 배경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반박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으로서, 객관적 자료로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크고, 만약 자료 확보가 늦어질 경우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처”라고 밝혔다. 오로지 ‘수사 논리에 따른 결정’이었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지시에 따랐는데 뭐가 문제냐는 항변도 나온다. 하지만 윤 총장 임명에 기를 쓰고 반대했던 세력이 오히려 검찰 수사를 지지하는 상황은 검찰을 곤혹스럽게 한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무기력한 야당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아줄 곳은 검찰뿐”이라며 검찰을 응원했다.

검찰이 앞세운 ‘수사 논리’에는 커다란 함정도 도사리고 있다. 인지수사는 단순히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사 목표(혐의)를 정한 뒤 그것을 쫓아가는 특성이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성과를 내려다보면 혐의를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특수통’ 검사의 원조로 꼽히는 심재륜 전 고등검사장(고검장)이 후배 검사들에게 ‘수사의 곁가지를 치지 마라’고 조언한 이유다. 인지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관계자는 “혐의를 향해 달려가다가도 벽을 만나면 곧바로 돌아서야 한다. 그것도 중요한 수사 원칙”이라고 말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월2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모펀드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월2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모펀드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font size="4"><font color="#008ABD">촛불의 명령이었던 검찰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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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앞으로 정국 주도권을 검찰이 장악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검찰 개혁의 아이콘인 조 후보자가 역설적으로 검찰 힘을 더욱 키워준 셈이 됐다. 검찰은 2020년 4월 총선 전까지 조 후보자 가족 의혹 수사로 ‘살아 있는 권력’의 명줄을 쥐었다. 이뿐만 아니라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 59명의 제1야당 의원들도 검찰의 사정권 안에 들어 있다. 총선 뒤에는 선거 사범 수사까지 더해져 이래저래 ‘윤석열 검찰’의 국정 장악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갈등을 정치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로 가져간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정철승 변호사(법무법인 더펌)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곧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조국도, 의원들도 검찰의 손바닥에 놓인 것이다. 앞으로 정치인들은 정치 문제를 형사사건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 확실히 배우게 될 것이다.” ‘촛불’의 명령이었던 검찰 개혁은 물 건너간 것일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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