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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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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맞으면 문통이 아프다

‘민간인 사찰 의혹’에 청와대 압수수색까지…

민정수석이 검찰에 불려갈 처지 되면 ‘청와대 주도 검찰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가
등록 2018-12-29 13:35 수정 2020-05-03 04:29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8년 12월10일 ‘인권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앞쪽) 뒤에서 눈을 감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8년 12월10일 ‘인권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앞쪽) 뒤에서 눈을 감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요즘 보수 야당에게서 “문재인 정부의 우병우”라는 말을 듣는다. 조 수석이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논란에 책임지지 않고 자리를 고집할수록 문 대통령의 레임덕은 그만큼 빨라질 것이란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감싸고돌다 정권의 몰락을 자초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저주’이기도 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인사와 감찰, 대통령의 힘이 나오는 곳</font></font>

‘민간인 사찰 의혹’을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로 보는 청와대와 여당에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번 사태로 대통령 권력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권위가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검찰에서 파견 나온 6급 직원 한 명의 언론플레이에 쑥대밭이 되다시피 한 모습은 추상같은 권력을 연상시키는 민정수석실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공직사회에 대한 대통령의 힘은 인사와 감찰에서 나온다. 청와대는 인사(승진)와 감찰(징계)을 통해 공직자가 국정철학을 잘 구현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 청와대에서 이 두 기능을 모두 가진 곳은 민정수석실이 유일하다. 민정수석실은 감찰과 사정뿐만 아니라 공직 후보자 인사 검증을 통해 인사에 관여한다. 이런 이유로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인사들은 “민정수석실이 대통령 권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말도 한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민정수석실의 권위에 흠집이 나면 당연히 대통령의 영이 제대로 서질 않는다.

더욱이 민간인 사찰은 ‘촛불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에서 논란조차 허용돼서는 안 되는 말이다(“문재인 정부에 민간인 사찰 디엔에이(DNA)가 없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이를 의식해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과거 청와대에 있을 때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논란을 막기 위한 작업을 주도했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은 2003년 3월 노무현 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을 맡아 청와대 특별감찰반을 대통령비서실의 정식 기구로 하는 대통령비서실 직제 개정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전까지는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의 비위 행위 감시 활동을 ‘별관팀’이라는 곳에서 했다. 별관팀은 앞서 ‘사직동팀’이라 했던 경찰청 조사과가 김대중 정권 시절 ‘옷 로비’ 의혹 사건으로 해체된 뒤 만든 비공식 조직이다. 사직동팀은 장관 부인 등이 연루된 로비 의혹 사건을 은폐, 축소했다는 이유로 야당에서 해체 압력을 받았다. 경찰청 소속이면서도 청와대의 ‘비선 조직’처럼 운영해온 것도 사직동팀의 해체 이유였다.

하지만 별관팀도 사직동팀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이었다. 감찰이라는 민감한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이 법적 근거도 없이 활동한다는 것은 ‘투명한 정부’를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의 철학과 맞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특별감찰반 직제 개편안 올렸던 문통</font></font>

민간인 사찰 논란을 막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잘 드러난다. 2003년 3월19일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특별감찰반 설치에 대해 아예 대통령령으로 규정하고 감찰 대상, 업무 범위 등을 특정해서 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감찰반이 월권이나 권한의 남용을 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제도화하면서, 일반 국민이 가지는 여러 가지 오해들을 완전히 불식시키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특감반을 대통령비서실 직제 속에 규정하는 이유다.”

그리고 민간인 사찰 시비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듯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감찰 대상은 대통령비서실 직원,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 대통령의 친인척, 그리고 특수관계자로 한정된다. 일반 정치인이나 일반 국민, 기업인은 아예 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주장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특감반이 10년 전 문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운영돼왔음을 보여준다. 김 수사관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주장한 것들 가운데 일부 논란이 될 만한 것이 있는 게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가상화폐 투자 루머 확인과 ‘드루킹’ 특검 후보자의 세평 수집 등은 청와대의 업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문건인 ‘코리아나호텔 사장 배우자 자살 관련 동향’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사찰’이라는 논란을 부를 수 있다. 김 수사관이 작성한 문건에는 시댁인 사주 일가와 금전 거래가 관련돼 있다는 등 내밀한 정보를 비롯해 유서와 고소장 등이 첨부돼 있다. 청와대(박형철 반부패비서관)는 “김 수사관이 주장하는 언론사 관련 보고는 ‘언론 사찰의 소지가 있으니 작성하지 말라’고 특감반장이 폐기한 보고서다”라고 즉각 반박했다.

박용호 전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 사찰 논란도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수사관은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박 전 센터장에 대한 첩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김 수사관 변호인인 석동현 변호사는 “적폐 청산 관련 정보가 있으면 내보라는 이인걸 전 특감반장의 지시에 따라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 지난해 7월13일 첩보 초안을 작성했고, 이 특감반장의 보완 지시를 받은 후 7월20일 최종 완성해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이인걸) 특감반장이 첩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한 바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월권’ 관리·감독 책임에선 벗어나지 못해 </font></font>
지난 12월26일 검찰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청와대 특별감찰관 사건 관련 압수수색을 한 뒤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월26일 검찰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청와대 특별감찰관 사건 관련 압수수색을 한 뒤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의 해명대로 김씨의 사찰 내용이 윗선에 보고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 수석 등은 김 수사관이 ‘월권’을 하지 않도록 감독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공직자는 “당시 청와대 특감반은 감찰과 관련해 구설에 오른 적이 없었다. 민간인은 물론 정치인도 사찰을 금지했다. 가끔 특감반에 처음 파견된 직원들이 여의도 증권가에 나도는 지라시 내용을 수집해서 보고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보고서를 제출하는 직원들은 엄하게 경고했다. 그래도 지키지 않는 직원은 원대 복귀시켰다”고 했다.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은 검찰 수사로 가려질 수밖에 없게 됐다. 검찰은 앞서 자유한국당이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수석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한 건과 관련해 12월26일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검찰이 요청한 서류를 청와대가 제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청와대 압수수색은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에 이어 2년여 만이다.

검찰 수사가 조 수석까지 겨냥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김 수사관이 작성한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보고서가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가 관건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제의 보고서는 직속 상관인 이인걸 전 특감반장 선을 넘지 못했다. 김 수사관도 자신이 수집한 첩보 내용이 이 전 특감반장 이상으로 전달됐다는 근거는 대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대통령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조 수석은 검찰 개혁이라는 대통령 공약을 실행해야 할 중요한 임무가 있다. 검찰 개혁의 장애물인 검찰의 조직적 저항을 제압하려면 그만큼 권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정수석이 검찰에 언제든지 불려갈 수 있는 처지가 된다면 청와대가 주도하는 검찰 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검찰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민정수석을 정조준하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김 수사관만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처벌할 경우 자칫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의 개인 비리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던 수사 책임자들은 모두 불명예 퇴진했고,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의 달인’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재판장을 잘못 만나면…</font></font>

조 수석에게 불리한 상황은 또 있다. ‘사법 농단’ 수사로 분위기가 심상찮은 법원이다. 사법 농단 수사에 부정적인 판사들은 조 수석이 2018년 10월19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검찰 수사를 비판한 판사를 에둘러 공격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재판장을 잘못 만나면’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재판이 정치적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수사관이 기소돼 재판받게 되면 법정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 주장을 쏟아낼 것이다. 재판장이 이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으면 재판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맞고 가겠다’는 조 수석의 앞날은 험난하기만 하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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