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조사받기 위해 11월24일 경기도 성남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는 의혹은 7가지다. 친형(고 이재선씨) 정신병원 강제 입원,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과거 검사 사칭 관련 허위 사실 공표 등 세 가지는 경찰이 11월1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배우 김부선씨 스캔들 의혹 부인(허위 사실 공표와 명예훼손), 조직폭력배 연루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활동 의혹 등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갔다. 여기에 트위터 계정 ‘혜경궁 김씨’(@08__hkkim·정의를 위하여)와 관련해 아내 김혜경씨가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6·13 지방선거 선거법 위반 관련 공소시효인 12월13일 이전에 이 지사의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지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이미지로 먹고사는 정치인에게는 사실 여부를 떠나 논란에 오르는 것만 해도 치명적인 것들이다. 대부분 정치인은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가 조여오고 여론이 악화할 경우 고개를 숙이고 ‘뒷일’을 기약한다. “어찌 됐든 국민께 불편함을 드려 유감이다” “제 주변 관리를 잘 못한 탓이다” 같은 정치적 발언으로 숨을 고르는 게 일반적인 ‘여의도 공식’이다. 자신이 속한 당에 부담이 될 경우 일단 탈당을 선택한 뒤 “무죄를 받아 명예회복을 한 뒤 떳떳이 돌아오겠다”는 발언을 하는 것도 이 공식에서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이 지사는 그동안 제기되는 의혹마다 계속 “더러운 음해 공격”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택했다” 등 정면 대응으로 일관했다. 급기야 ‘혜경궁 김씨’ 혐의를 두고 벌어지는 법리 다툼과 관련해 (지난해 대선 당시 일단락된)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 특혜 채용 의혹을 언급했다. 그는 사법적 유무죄 판단을 떠나 정치인으로서 도덕성이나 리더십에 이미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도 그가 물러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지사의 강경 대응 뒤에는 현재 상황을 ‘이재명 죽이기’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 지사 쪽 내부에서도 “정말 (이재명을) 죽이려는 것 아니냐”는 기류가 지배하고 있다 한다. 더 물러서면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친문 핵심’인 전해철 의원이 ‘혜경궁 김씨’ 의혹을 적극 제기하고, 이후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대선 경선부터 올해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경선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 문 대통령을 끊임없이 비방하고 이 지사를 옹호한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과 대선 경선 때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운 이 지사의 행보가 연결됐다. 이 지사는 문 대통령 열성 지지층에게 ‘공공의 적’이 됐다.
그동안 각종 의혹에 “사실이 아니다”라며 대응해온 이 지사가 벼랑 끝에 몰리자 “경찰은 진실보다는 권력을 선택했다”(11월19일 경기도청 출근길 기자회견)고 경찰 수사 ‘배후’ 의혹을 제기한 것은 결국 ‘친문 진영’에서 자신을 공격한다는 의심에 기반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지사 쪽이 검찰에 제출한 변호인 의견서에 “문 대통령 아들 준용씨가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 지사는 이를 해명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에서 “문준용씨 특혜 채용 의혹은 ‘허위’라고 확신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아내를 고발한 측에서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에서 특혜 채용 의혹 글을 썼고, 이게 죄(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 글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법적으로 입증해야만 한다. 먼저 특혜 채용 의혹이 ‘허위’임을 법적으로 확인한 뒤 이를 바탕으로 ‘허위 사실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를 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김용 경기도청 대변인은 “고발장(범죄일람표)에 39건의 트위터 게시물이 적시됐는데, 대다수가 문준용씨 관련 내용이다. 문씨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은 바로 이 고발장”이라며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경찰 배후’ 발언도 김 대변인은 “검찰의 공정한 수사 결과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표현”이라며 배후의 실체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지사는 “사건의 본질은 이간계”라며 “우리는 문재인 정부 성공, 민주당 정권 재창출이라는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하고 차이를 넘어 단결해야 한다”고 ‘배후론’의 여지를 남겼다.
이 지사의 대응은 의도했든 안 했든 ‘혜경궁 김씨 계정 주인이 누구냐’는 문제를 여의도 정치 이슈로 시선을 돌리는 데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야당과 언론은 ‘친문 vs 비문’이라는 민주당의 낡은 갈등 구도를 수면 위로 올리고, 차기 대선 주자를 둘러싼 여권 내 권력투쟁으로 해석했다.
당 밖의 열성 지지그룹과 이 지사의 갈등으로 바라보며 관련 논란에 선을 그어왔던 민주당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지사는 정치적 아이큐가 뛰어난 사람이다. 문준용씨 이야기를 그냥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체와 상관없이 너무 나갔다”고 말했다. 결국 이 지사는 권력에 핍박받는 ‘비주류 이재명’이란 프레임을 짜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변호사로 출발해 성남시장-경기도지사-여권의 차기 주자까지 올라온 이 지사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그는 여러 차례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든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자신의 책 (리북·2014)에서 그는 이 말에 관한 자기 생각을 밝혔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이 있다. 흔히 현물거래에서 파생된 꼬리인 선물거래가 시장 영향력이 커지면서 오히려 몸통인 현물시장을 좌우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몸통이 정상이고, 꼬리가 비정상일 때의 이야기이다. 몸통이 비정상이라면? 그래서 몸통을 바로잡아야 한다면?”
여기서 이 지사가 규정하는 ‘몸통’은 기득권과 보수 진영이다.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든다”는 결국 이 지사의 정치철학이자 ‘싸움의 기술’이다. 민주당 내부에 변변한 지지 기반이 없고 인지도도 떨어지는 그는 성남시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국가정보원 등의 권력기관에 끊임없이 싸움을 걸며 ‘몸집’을 불려왔다. 직설과 막말의 경계를 넘나드는 ‘SNS 정치’로 일반 대중과 소통하며 ‘비주류 정치인 이재명 vs 기득권 세력’ 구도를 끊임없이 만들었다. 자신은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으로 비유되고 싶어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계속 비교되는 이유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형수 욕설 녹취’가 논란이 되자 “국정원이 자신을 사찰했다”고 기자회견을 하고 소송을 이어간 것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자신의 책에 당시를 복기하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아주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고질병처럼 이어져온 정치 공작이야말로 시급하게 사라져야 할 구태 정치라는 사실” “그들의 공격이 거셀수록 나 역시 그만큼 강하고 두려운 상대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셈이다”( 위즈덤하우스·2017)라고 썼다.
이러한 그의 전략을 15살 ‘소년공’으로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며 자신만 믿고 지금까지 달려온 그의 삶과 연관해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이 지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정치권 한 인사는 “지금의 대응은 힘들게 살아온 삶의 궤적이 반영된 것이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돌파해온 유년 시절 때문에 위기가 닥쳐오면 방어적 태세가 된다. 지금의 대응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라고 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그룹 민’ 대표는 “이 지사 개인의 스타일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맞서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가진 게 없고 주류가 아니면 더 밟는다’는 인식이다.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상황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바라봤다. “검찰이 기소하면 (이 지사가) 더 세게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 이 지사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그의 전략이 성공하려면 싸움의 상대가 ‘거악’이어야 하고 대중의 지지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그가 현재 겨냥하는 상대는 민주당 내부, 즉 같은 편이다. 각종 의혹에 피로감을 느낀 대중의 신뢰도 얻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트위터 갈무리
이 지사는 “‘혜경궁 김씨’의 계정 주인은 김혜경”이라는 경찰 발표 뒤 자신의 트위터에 경찰의 주장과 아내의 변호사 주장을 비교하며 온라인 투표를 제안했다. ‘경찰 주장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81%(변호인 주장 공감 19%)가 나왔다. SNS 여론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그가 대중의 차가운 시선에 맞닥뜨린 상징적인 장면이다.
박성민 대표는 “정치인이 싸움을 하려면 주도성, 일관성, 확장성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이 지사의 싸움은 여론의 지지 확장성 측면에서 의문부호를 찍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 지사가 ‘부분 전투’에 집착하는데, 이게 대중에게 지도자감은 아니라는 인식을 주면서 큰 싸움에서 불리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지사는 자신의 책()에서 보수 진영과 권력기관의 공격에 대해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3의 법칙인 작용·반작용은 인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인생의 시련이 내게 작용해오면 그 힘을 고스란히 반작용의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문제는 그의 반작용이 또 다른 ‘반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정치적 자산”이라며 이 지사를 놓지 않으려는 당 내부와 일부 지지층의 여론이 그의 강경 대응에 돌아서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에 정치적 부담을 준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이 지사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자제하던 민주당은 11월28일 “검찰 기소를 지켜본 뒤 입장을 정하겠다”(홍영표 원내대표)고 밝혔다.
이 지사를 둘러싼 논란은 여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는 11월29일 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11월26~28일 1508명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2.5%포인트)가 48.8%로 취임 뒤 처음으로 40%대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리얼미터는 지지도 하락에 대해 경제지표 악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으며 “이재명 지사 논란으로 중도층과 보수층 등 문 대통령을 약하게 지지하던 주변 지지층이 추가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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