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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겠다”…누구랑?

국민의당 대표로 뽑힌 안철수 첫 일성 ‘싸우는 야당’…

모호한 당 정체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등록 2017-09-05 17:20 수정 2020-05-03 04:28
8월27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안철수 대표가 당선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8월27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안철수 대표가 당선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51.09%. 지난 8월27일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안철수 대표의 득표율을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첫째는 자신이 만든 당에서 겨우 턱걸이 수준으로 대표에 당선된 것은 안 대표가 여전히 당을 완벽히 장악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둘째, 당대표 선거에 4명이 출마했고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이언주 의원까지 나오는 바람에 표가 분산된 것을 감안하면 득표율이 그리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어찌됐든 국민의당 내부에 ‘안철수 외에 대안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만은 분명하다. 안철수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정동영·천정배 체제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동했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체 불분명한 ‘실천적 중도개혁정당’

안철수 대표 체제가 시작된 뒤 국민의당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여러 예측이 난무한다. 은 안철수 대표의 수락연설을 통해 국민의당의 미래를 전망해봤다.

안철수 신임 대표의 첫 일성은 ‘싸우는 야당’이다. 안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싸움” “싸우겠다”는 단어를 무려 11번이나 입에 올렸다. 문제는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수 있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싸우겠다고도 했으나 그를 광야로 떠미는 주체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그가 싸워나가겠다는 대상으로 언급한 것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아이의 미래를 좌우하는 세상” “코드 인사” “평화를 위협하는 주변 세력” “선심 공약” 등이다. 불합리한 세상 자체와 싸우고, 한국 밖의 외부 세력과 싸우고, 문재인 정권과 싸우겠다는 것이다. 싸움의 대상이 너무 많아 정확히 무엇 때문에 그토록 결연해야 하는지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안 대표의 ‘싸움’은 ‘문재인 정권과의 싸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을 생각할 때 이는 민심과 다소 어긋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은 “결기 있게 싸운다는 건 독재 정권,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프레임이다. 현 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과거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대상으로 싸우겠다는 건 민심과 많이 동떨어진 인식을 내보이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안 대표가 제시한 ‘싸우는 야당’ 프레임의 더 큰 문제는 정체성 부재다. 야당이 정권을 견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떤 기준으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댈지가 그의 연설에는 빠져 있다. 안 대표는 당의 정체성을 ‘실천적 중도개혁정당’이라고 제시했다. 이어 ‘실천적 중도’에 대해선 “배타적인 좌측 진영에 갇히지 않고 수구적인 우측 진영에 매몰되지도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비론 속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호남 민심 거스를 수 있을까

정당은 ‘어떤 가치를 대표하느냐, 누구의 이익을 대표하느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는 각 정당이 자신이 대변하는 계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다른 정당과 논쟁을 벌이고 합의하며 정국을 끌어간다. 그런데 스스로 ‘어떤 계층을 대변할지’ 불분명한 정당이라면 다른 정당과 ‘논쟁과 합의’를 할 수 있는 기준을 잃게 된다. 안 대표는 국민의당이 대변하는 대상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선한 사람들”이라고 언급했지만 이는 결국 ‘모두를 대변하거나 아무도 대변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국민의당은 사안별로 각기 다른 기준을 들이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모호한 정체성으로는 현재의 다당체제에서 오래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런 사실은 국민의당도 잘 알고 있다. 김태일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은 지난 6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당이란 것은 어떤 가치를 대표하느냐, 또 누구의 이익을 대표하느냐,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의당은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가. 이런 부분이 분명치 않았던 것이 현재 어려운 상황의 근원”이라고 진단했다. 안 대표 체제가 출범했지만 국민의당의 정체성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국민의당에 기회

‘싸우는 야당’의 또 다른 문제점은 호남과의 관계 설정이다. 현재 호남 민심은 문재인 정부 쪽으로 쏠려 있다.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이 대부분인 국민의당이 호남 민심을 거스르며 정권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은 자기모순이 될 수 있다. 정계 개편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바른정당과의 연대도 호남과의 관계 때문에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안 대표의 ‘선명 야당’ 노선은 결과적으로 ‘탈호남’ 노선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안 대표가 탈호남을 통해 전국 정당화를 꾀한다는 해석이다. 안 대표는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8월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탈호남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르지만 정말로 고약한 단어”라며 “호남이 없는 전국정당화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호남을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정권을 비판하는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안철수 대표의 수락연설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선거제도 개혁’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는 “다시 사는 국민의당”이 되기 위한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선거제도 개혁을 꼽았다. 그는 “선거법 개정과 개헌에 당력을 쏟겠다. 다당제 민주주의는 국민의당이 서 있는 정치적 기반이고 막 싹이 핀 한국 정치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비례성이 높은 제도로 바꾸면 다당체제는 더욱 공고해지고 국민의당의 존재 기반은 그만큼 튼튼해진다. 앞으로도 오롯이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안철수 대표의 영원한 딜레마는 (진보·보수) 양쪽 모두가 제기하는 이중대 프레임이다. 이걸 돌파하는 방법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다. 명분도 있고 실리도 챙길 수 있다. 안 대표도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을 내걸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정부·여당이 어떻게 받아안느냐에 따라 협치의 문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개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당의 협조가 절실한 정부가 이들이 원하는 제도 개혁을 받아준다면 ‘협치’의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다당제 요구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는 하나의 당에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수당의 횡포에 지친 유권자는 두 개의 거대 정당이 갈등을 빚는 양당제보다 서로 협의를 강제하는 다당체제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요구를 받아안아 문재인 정부도 선거제도 개혁을 ‘100대 국정과제’에까지 포함시켰다. 안 대표 체제로 재출범한 국민의당의 미래는 어쩌면 선거제도 개혁에 달렸는지 모른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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