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은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8월16일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만나 문 대통령 100일을 짚어봤다. 김 교수와 정 대표는 석 달여 전인 지난 5월 대담(제1161호 표지이야기 ‘100일, YS와 루스벨트를 배워라’)에서 “집권 초기 100일 동안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은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정권의 성패를 가른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보는 이들의 평가는 어떨까. 김 교수와 정 대표는 적폐 청산 같은 개혁 작업이나 사회 통합 노력 등 내치 분야에는 후한 평가를 내놨지만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대응 등 외치 분야에는 새 정부의 분명한 정책과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며 다소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김대중 정부 100일 때보다 훨씬 긍정적”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이 됐다. 지난 100일을 평가한다면.김동춘 70% 훌쩍 넘는 지지율이 나오고 있다. 김영삼 정부 초기 정도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김대중 정부 100일 때보다 훨씬 긍정적이다. 김대중 정권 초기에는 신자유주의 기조가 강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여당의 국회 의석수가 적어 (뭘 추진했는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 문 대통령이 행한 각종 행정명령이나 검찰 개혁 의지를 좋게 평가한다.
정욱식 점수화하자면 현재 지지율 정도인 것 같다.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크게 실망한 내용이 없었다.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 의지, 비정규직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게 기회 부여 등은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겠다. 박근혜 정권 때는 대통령이란 존재가 워낙 국민과 유리돼 있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친근하고 격의 없는 행보를 보여줬다. 하지만 내치에 견줘 외치 분야에선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구체적으로 잘한 분야와 아쉬운 부분을 꼽아보자.김동춘 인사에서 소신 갖고 개혁적으로 일해온 사람을 발탁한 점을 가장 긍정적으로 본다. 경제 분야에서도 대기업 위주 정책이 아닌 ‘소득주도 성장론’을 받아들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탈원전 정책,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위원회 설치 등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를 곧바로 추가 배치한 것을 가장 부정적인 일로 평가한다. 정부의 단독 결정인지, 미국과 협의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애초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사드 배치를 하겠다고 한 말과 완전히 상반되는 부분이다. 정부의 기본 철학을 의심케 하는 치명적인 잘못이다. 부동산 정책에서 보유세 부과를 미룬 것도 회의적이다.
정욱식 문 대통령의 대선 구호가 ‘나라다운 나라’였다. 만신창이가 된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회복시킨 부분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외치에선 ‘코리아 패싱’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실망감이 있다. 사드 배치 문제가 대표적이다. 북한과 미국의 공방 상황에서 우리가 제대로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했던 시민들의 실망이 크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외교·안보 분야) 정책이 이에 걸맞게 바뀌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적폐 청산은 국가 개혁 차원에서 해야” 문재인 정부 초기 과제인 적폐 청산에 대한 평가는.김동춘 적폐청산위원회를 만들지 않은 것은 잘했다고 본다. 이 위원회를 만들었다면 자유한국당의 반격과 (보수의) 세 결집에 직면했을 것이다. ‘적폐 청산’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보다 검찰·국가정보원 등 각 영역에서 불법적으로 이뤄진 권력 행사를 바로잡고 제도·조직 정비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조국 민정수석,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발탁이나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를 꾸린 것은 굉장히 잘한 일이다. 적폐 청산은 정치 보복식이 아닌 국가 개혁 작업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해야 한다. 현재진행형이지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욱식 적폐 청산의 성패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의 성패에 달렸다. 내부적으로 성장 잠재력이 저하돼 있다. 외부적으로도 사드 문제가 장기·구조화하면서 중국과 관계가 악화됐다. 이런 문제가 한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북방 경제가 가로막힌 상태에서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으로 (대미 수출 분야에서도) 성장동력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국민이 소득주도 성장론의 이득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김동춘 국가가 공공부문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기업들이 새로운 활로를 어떻게 찾을지가 숙제다.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50조원을 투입해 건설 경기를 살리려는 계획을 언급했다. 굉장히 우려스럽다. 집값이 폭등하지만 그로 인한 과실은 대기업이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선 제2의 4대강 사업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영세자영업자들이 어려워지고 (한계상황에 있는) 가게가 문 닫을 텐데 이들을 어떻게 흡수하느냐도 숙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역시 정규직 노조의 양보가 필요하다. 정부가 어떤 타협안을 만들 수 있을지 난제다.
새 정부의 주요 과제인 사회 대통합 부분의 성과는.김동춘 지금까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행동 등 개인플레이로 사회에 실망한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포용하고 있다. 이는 한시적일 뿐 지속가능성이 적다. 실제 주체들이 개입하는 제도적 통합은 시작되지 않았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노동·경제 주체들이 비교적 성공적인 첫 실험을 했다. 노무현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하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나이스(NEIS)를 도입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우군을 잃어버리고 정치 동력을 상실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러한 과거 사례를 잘 복기하는 것 같다. 첨예한 갈등 사안은 내년 지방선거 뒤로 미뤄두고 지금은 점수를 딸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 같다. 우군과 각을 세우지 않는 방식은 잘하는 일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정욱식 초기 통합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촛불이 요구한 개혁이 후퇴할 수 있다. 국민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게이트 등을 겪으며 최고권력자가 자신의 권력과 부를 강화하려 일을 벌였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난겨울 촛불을 통해 등장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국민 전체가 대한민국을 정상화하고 사회 발전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지닌 것 같다. 개별 정책의 지지도가 높은 점은 이를 반영한다.
“평화는 있는데 통일이 빠져 있다” 지금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남북관계 등 외교·안보다.정욱식 정권은 바뀌었지만 정책은 바뀐 게 없다.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연계시키는 것은 여전하다. 그나마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최대한 분리하거나 병행 발전시킨다는 기조로 남북관계에서 독자적 영역을 만들려 노력했다. 문재인 정부는 예상보다 훨씬 한-미 동맹에 경도돼 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사드 배치나 북핵 문제 대처에서 한-미 토론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가 과연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줄지 토론하자고 했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니 갑자기 사드를 임시 배치한다고 했다. 너무 쉽게 미국에 동의했다. 이런 점에서 안보 문제에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이 무색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국방비 지출을 늘릴 계획이 있고 늘어난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미국 첨단무기 구입에 쓰면 미국에도 이익이라고 한 적이 있다. 정부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9%까지 올리겠다고 한다. 국방비를 늘려 미국에 무기 수입이라는 선물을 주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다. 북한은 핵개발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같은 발언을 보면) 문 대통령이 어떤 철학을 지녔는지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이 사드가 정말 우리 안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당장 엄청난 정책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면 작은 변화로 긍정적 나비 효과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8월20일부터 시작하는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에 미국에 전략폭격기를 보내지 말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겠다. 이를 통해 대화와 협상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70% 이상의 국정 지지도를 지니고도 대북정책에서 실질적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면 내년 지방선거와 개헌 이후 총선 국면에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김동춘 청와대에 대북 전문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북한에 정밀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를 보강해 좀더 정교하게 대응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미국을 그렇게 빨리 방문했어야 했나. 과도하게 보수 진영을 의식하고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면 평화는 있는데 통일이 빠져 있다. 국가 지도자가 통일을 빼고 평화만 얘기하는 건 분단 관리로 가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북한과 공존할 방안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장기적인 사회정책 인프라 구축해야” 향후 추진할 우선 과제를 꼽는다면.김동춘 교육·노동·복지 등 사회정책 강화를 주문하고 싶다. 지금 장기적인 사회정책은 없는 것 같다. 사회정책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인프라를 제대로 깔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는 일자리 확대나 소득주도 성장에 사활을 건 것 같다. 그러나 사회정책은 경제정책에 흡수되면 안 된다. 신자유주의 기조를 넘어서는 사회정책을 보여줘야 한다. 무너진 시민사회를 복원해 튼튼한 힘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
정욱식 정부를 아프게 하는, 듣기 불편한 비판을 잘 소화해야 한다. (여러 비판에 대해) ‘같은 편인데 왜 우리 진정성을 몰라주나’ 야속해하고 정책 비판을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여길 수 있다. 이러면 건강한 비판 세력과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 이는 위험하다. 지금 외치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는데 좀더 주목해주길 바란다.
사회·정리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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