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이 벌인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 취업 특혜 의혹 제보 조작 사건의 파장이 번지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7월12일 당이 제보 조작을 인정한 지 16일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구속되는 등 검찰 수사는 국민의당 윗선을 향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국민의당에선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굳은 표정으로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제보 조작 사건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후보였던 제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검찰 수사를 지켜보며 깊은 자성의 시간을 보냈다. 제대로 된 (당내) 검증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도 모두 저의 한계이고 책임이다. 모든 짐은 제가 짊어지고 가겠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그러면서도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저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며 자신은 당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전국 뚜벅이(도보) 유세를 하던 중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사실과 관련된 책임은 인정했지만 제보 조작 자체는 몰랐다며 거리를 둔 것이다.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 갖겠다”이런 현실 인식을 토대로 안 전 대표는 일각에서 제기된 ‘정계 은퇴’ 주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는 이날 초미의 관심사인 거취 문제와 관련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 정치인으로 살아온 지난 5년 동안의 시간을 뿌리까지 다시 돌아보겠다”며 “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정말 깊이 고민하겠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안 전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의원직을 사퇴하고 현재 어떤 당직도 맡지 않은 상황이다.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도 혼신의 노력을 할 것이다. 다당제를 실현해주신 국민들의 뜻을 준엄하게 받들어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나리라 믿는다. 국민의당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제기됐던 정계 은퇴설을 일축하는 한편, 국민의당에도 다시 심기일전해줄 것을 당부한 것이다.
안 전 대표의 사과를 바라보는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국민의당 대선 평가위원회 관계자는 과의 통화에서 “사실상 맹탕 기자회견이 아니었나 싶다”고 혹평했다. “이 정도 이야기를 하려고 지금껏 시간을 끌었나 싶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텐데 또다시 뭘 성찰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국민이 납득하고 가슴을 울릴 만한 메시지가 나와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그저 상황이 악화되자 억지로 떠밀려 기자회견을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다른 국민의당 의원은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구속된 뒤에야 태도를 발표했다. 너무 늦었다”며 “본인이 책임질 게 있으면 진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없었다.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정당들 역시 냉담한 논평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쪽은 “뒤늦은 사과에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의문이다.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이 진정 국민에게 사과를 한다면 이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바른정당과 정의당도 각각 “안 전 대표의 사과를 국민이 얼마나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에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밝히지 않아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만시지탄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안 전 대표가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입장 표명을 더 이상 미룰 경우 국민의당과 자신의 입지가 더 옹색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가 입장 표명을 미루는 사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머리 자르기’라며 연일 국민의당을 압박했고, 당 지지율은 꼴찌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서울남부지법은 안 전 대표의 기자회견 당일 새벽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게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준용씨 취업과 관련해 이유미(구속)씨를 압박해 조작된 자료를 넘겨받은 뒤 이를 당 공명선거추진단(단장 이용주 의원)에 전달한 인물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이미 네 차례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이 전 최고위원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을 반복했지만, 검찰은 이 전 최고위원을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했다. 검찰은 제보 조작 행위는 이유미씨가 단독으로 했으나 이 과정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조작을 종용하거나 이씨의 조작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씨가 제보를 조작하기 전에 알고 지내던 기자에게 준용씨 취업 특혜 의혹 보도를 부탁하고, 이유미씨가 조작 사실을 털어놓은 뒤에도 이번 의혹이 사실이라고 강조하는 당 차원의 2차 기자회견(5월7일)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최고위원의 구속영장 발부를 계기로 당 윗선의 부실 검증 경위에 수사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국민의당 지지율 꼴찌로 곤두박질이 전 최고위원의 구속으로 국민의당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는 이유미씨 단독 범행으로 단정했던 당 진상조사단의 수사 결과와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관영 ‘문준용씨 의혹 제보 조작’ 사건 진상조사단장은 7월3일 기자회견에서 “종합적인 결론은 이유미씨의 단독 범행이었다. 안철수, 박지원 전 대표가 관여했거나 조작을 인지했을 만한 어떤 증거와 진술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은 과의 통화에서 “이유미씨가 구속된 상태에서 강제성도 없이 진행된 당 자체 조사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며 “이씨 단독 범행으로 믿지 않는 여론에 불신의 기름만 붓는 발표가 돼버렸다. 굳이 당이 조사 결과를 발표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당 의원도 “당이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 전 최고위원이 구속돼 당 중간 수사 발표는 신빙성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앞으로 진행될 검찰 수사 역시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을 더욱 곤혹스러운 국면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전 최고위원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공명선거추진단 김성호 수석부단장과 김인원 부단장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수사 경과에 따라선 공명선거추진단장이던 이용주 의원의 소환조사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역 의원까지 수사가 번지면 국민의당은 걷잡을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국민의당 현역 의원까지 수사 번지나안철수 전 대표 역시 향후 정치적 행보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의 대표 구호였던 ‘새정치’는 공작정치 파문으로 얼룩졌다. 2012년부터 안 전 대표와 함께해온 강연재 전 국민의당 부대변인은 “국민의당이 내걸었던 새정치, 합리적 세력, 제3의 중도 정당 등의 흐름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7월6일 탈당했다.
안 전 대표의 정치 재개 역시 기약 없이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3위로 패배한 뒤 칩거하며 정치 재개 시점을 모색해왔다. 기자회견에서 안 전 대표가 “원점에서의 반성과 성찰”을 언급한 것은 장기간 자숙을 예고한 대목이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안 전 대표는 당분간 검찰 수사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엄청난 도덕적 타격을 입고 신뢰를 크게 잃은 만큼 본격적으로 정치 전면에 다시 나서는 시점이 미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만일 그가 검찰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면 내상은 더욱 깊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조작 사건 대처 과정에서 자신이 한 국가를 이끌 인재가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말았다. 이대로는 정치를 계속해도 만년 2~3위 후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사실상 대선 전반을 지휘한 박지원 전 대표도 위기를 맞기는 마찬가지다. 박 전 대표는 당이 문준용씨 취업 의혹 기자회견(5월5일)을 하기 나흘 전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와의 통화에서 ‘대표님, 제가 바이버(외국계 메신저)로 보낸 게 있는데 확인 좀 해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고, 이에 박 전 대표가 ‘알았어’라고 답했다”고 당 진상조사단에 진술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이 전 최고위원과의) 통화는 현재까지도 기억에 없지만 진상조사단 발표 뒤 통화기록 조회에서 확인을 했다”면서도 “(바이버로 보낸) 메시지는 비서관이 소지한 핸드폰으로 왔기에 보지도, 보고받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이 전 최고위원과 거리를 두려고 처음에 통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상임선대위원장이던 그가 대선 막판에서 핵심 네거티브 전략을 몰랐겠느냐는 의구심도 해소되지 않는다.
‘내년 지방선거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국민의당 안에선 벌써부터 내년 지방선거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당 의원은 통화에서 “그저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것 말고 당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문제는 내년 지방선거인데 누가 국민의당 후보로 나서려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벌써부터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발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의당은 7월14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를 기록해 원내 정당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조차 8% 지지율에 그쳐 텃밭이 사실상 와해돼버렸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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