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차 수사 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특검법)에 규정된 수사 기간은 70일이다. 추가로 한 차례 30일 연장이 가능하지만 대통령의 승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승인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황 권한대행은 2월10일 국회 비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지금 단계에서 연장을 검토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특검 수사 기간이 아직 20여 일 정도 남아 있다. 상당한 기간이다”라고 말했다. 2월28일까지인 수사 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특검에는 앞으로 2주 남짓밖에 남지 않는다.
특검 최대 성과는 ‘블랙리스트’ 수사지난 50여 일간 특검은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엎고 과감한 수사를 해왔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블랙리스트’ 수사다. 특검은 청와대가 2014년 4월부터 국민소통, 행정자치, 사회안전, 경제금융, 교육, 문화체육, 보건복지, 고용노동 비서관 등이 참여하는 ‘민간단체 보조금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면서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개인과 단체에 정부 예산 지원을 막아온 사실을 확인했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3천여 개의 문제 단체와 8천여 명의 좌편향 인사 목록을 만들어 지원 배제 등에 활용한 정황도 확보했다.
특검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1월21일 구속했다. 특검 수사 결과, 김 전 비서실장이 취임 직후인 2013년 8월 직접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종북 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비서실장뿐 아니라 대통령실 정무수석으로 일하며 블랙리스트 작성과 시행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구속됐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및 특혜 의혹 사건 역시 수사가 마무리되는 단계다. 특검은 정씨의 대학 입학과 학사 관리에 특혜를 준 혐의로 김경숙 전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장과 의 작가인 류철균(필명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를 구속 기소했다. 남은 사람은 1월25일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뿐이다. 특검은 2월9일 최 전 총장을 소환해 12시간 동안 조사하는 등 막바지 학사 비리 의혹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직접 수사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대통령 뇌물 혐의 수사가 대표적이다. 특검이 이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로 보는 것은 삼성이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한 것을 비롯해 최씨가 실소유한 코레스포츠에 35억원을 지원하는 등 최씨 일가에 400억원대 자금을 지원했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거액의 지원을 대가로 청와대로부터 그룹 지배권 보장을 약속받았다고 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한 것이다. 합병 전 이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는 제일모직 지분 42.19%를 소유했다. 하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1.41%만 보유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일모직은 삼성전자 지분이 없는 상황이었다. 두 기업이 합병하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은 물론 삼성전자 지배권까지 강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지분 11%를 가진 대주주 국민연금공단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적극 찬성했다.
문제는 당시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특검 수사 결과 국민연금공단은 손해 볼 것을 알았지만 청와대의 지시로 합병에 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은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들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구속했다.
1월16일에는 뇌물공여와 횡령, 위증 등의 혐의로 이 부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하지만 1월19일 조의연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를 기각했다.
이 부회장을 구속해 박 대통령 뇌물 혐의 수사의 틀을 다져놓은 뒤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내고 기업 회장의 사면이나 각종 사업 특혜 등을 바란 것으로 의심받는 롯데·SK·CJ 수사를 이어나가려던 특검은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궁지에 빠진 박근혜·이재용 뇌물 수사박 대통령이 특검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것 역시 수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 중 하나는 ‘뇌물 수수자에 대한 수사 미비’였다. 이 때문에 특검은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 법원이 언급한 기각 사유를 하나라도 제거한 뒤 구속영장을 재청구해야 발부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애초 특검은 2월9일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특검이 조사 날짜 등을 비공개로 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며 이날 대면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쪽은 그 뒤로도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에 응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특검이 수사 종료 기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대면조사를 하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수사에 차질을 빚는다. 특별검사팀 이규철 대변인(특검보)은 2월10일 기자 브리핑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영장 재청구 결정 여부와 나머지 대기업 수사 여부는 대통령 조사와 전혀 상관없겠지만 별개로 진행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정리가 되면 적절한 상황에 따라서 조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압수수색 역시 특검이 돌파해야 할 난관이다. 특검은 2월3일 청와대 관저와 수석비서관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청와대가 특검의 압수수색 장소는 군사보호구역이고 국가 기밀이 보관돼 있다며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압수수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특검은 2월10일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며 이를 취소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서를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했다. 법원이 특검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 청와대도 압수수색 거부 명분을 잃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다. 법원 결정이 늦게 나면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 자료를 토대로 수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종료될 가능성이 있다.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의 아들 병역 특혜 의혹과 가족기업인 정강의 횡령·배임 혐의와 관련해 일부 참고인들을 소환 조사했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한 차례도 소환하지 못한 상황이다. 남은 수사 기간을 고려할 때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야당, ‘특검 수사 기간 연장법’ 발의이 때문에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은 필수다. 하지만 박 대통령 입장에서 기간 연장은 기필코 막아야 하는 일이다. 특검 수사 기간이 본인의 구속 등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탄핵 심판은 3월13일 전후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박한철 헌재 소장이 물러난 뒤 권한대행을 맡은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퇴임일이 3월13일이기 때문이다. 이날 뒤로 헌법재판관 전원이 참석해 표결하는 평의가 미뤄지면 탄핵 심판은 8명이 아닌 7명의 헌법재판관 손으로 결정된다. 헌법재판관 수가 줄어들수록 헌재 결정의 권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사 기간이 연장되면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3월13일 전후에도 특검은 활동한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박 대통령은 자연인이 된다. 체포와 구속, 기소가 자유로워진다. 현재 특검의 분위기라면 탄핵 이후 박 대통령을 상대로 구속을 포함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특검이 사라지면 이 사건은 다시 검찰이 수사한다. 검찰이 특검만큼 강도 높게 수사할지는 미지수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탄핵인용 결정이 나올 시기에 특검이 없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야당은 황 권한대행이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특검 수사 기간 연장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2월23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당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황 권한대행이 이를 무력화할 방법은 많다.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넘겨진 법안은 15일 안에 대통령이 공포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법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검 기간 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황 권한대행이 특검 수사 1차 종료 시한인 2월28일 이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회에서 거부권이 행사된 특검 기간 연장법안을 재적 인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인원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로 다시 통과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특검법 제9조 5항에는 “특별검사는 수사 기간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지 못하거나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경우 수사 기간 만료일부터 3일 이내에 사건을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인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황 권한대행이 특검 1차 수사 기간이 끝나는 2월28일 이후 사흘 동안만 법안을 틀어쥐고 있어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검도 강제해산되나특검이 박 대통령과 황 권한대행의 ‘몽니’로 무력화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낯선 장면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온갖 억지를 부리며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해산한 전력이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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