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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분당 시계 빨라지나

원내대표 선거 패배하며 입지 좁아진 비박계, 비상대책위원장 선출이 마지막 분수령 될 듯
등록 2016-12-22 16:48 수정 2020-05-03 04:28
폐족 위기에 몰렸던 친박계가 당 원내지도부를 장악했다. 정우택 원내대표(왼쪽)와 이현재 정책위의장이 12월16일 당선된 뒤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폐족 위기에 몰렸던 친박계가 당 원내지도부를 장악했다. 정우택 원내대표(왼쪽)와 이현재 정책위의장이 12월16일 당선된 뒤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새누리당이 분당을 향해 치닫고 있다. 12월16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주류 친박이 내세운 정우택 의원이 당선되면서 분당 시계는 더욱 빨리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친박 인적 청산을 외치던 비박계 입지는 좁아졌다. 이르면 12월21일께, 새 지도부 격인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분당 여부를 가를 마지막 분수령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로 친박당’ 재확인, 물 건너간 ‘당 개혁’

정우택 원내대표의 당선으로 친박계는 당 주도권을 쥐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통과 뒤 수세 국면을 전환할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정 원내대표는 총 62표를 얻어 55표를 얻은 비박계 나경원 의원을 7표차로 따돌렸다.

친박계는 사활을 걸었다. 12월13일 친박계가 이인제 전 의원과 김관용 경북지사, 정갑윤 의원을 공동대표로 출범시킨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에는 의원 62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는데 발기인 수와 정 의원의 득표수가 일치한다. 정 원내대표도 이 모임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 찬성표를 던졌던 친박, 중도 성향 의원들이 주류 쪽으로 복귀한 셈이다.

반면 비박계로서는 탈당과 신당 창당 외에 마땅한 선택지가 없어졌다. 비박계는 애초 원내대표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친박 핵심 인적 청산 △당 자산 국고 환원 △재창당 수준의 혁신 △친박계가 미는 비상대책위원장 저지 등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친박계가 어떤 인물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낙점할지 지켜봐야 하는 수동적 상황에 처했다. 이미 비박계 안에선 “이젠 당 밖으로 반걸음은 나갔다”는 말이 나온다.

이미 ‘루비콘강’ 건넌 친박-비박

친박계와 비박계는 이미 결별 준비가 끝난 상태다. 날선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사실상 ‘불구대천’의 존재로 만들었다.

친박계는 “대한민국과 보수의 가치를 지키겠다”며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을 발족했다. 실체는 친박계의 세 과시 모임이자 비박계 고사 모임에 가깝다. 이 모임은 셋째 목표에 ‘국민과 당을 분열시키는 배신의 정치, 분열의 행태를 타파하겠다’고 적시했다.

모임의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은 인사말에서 더 분명하게 비박계를 겨냥했다. “언제는 박 대통령을 ‘하늘이 내려준 인물’이라 하고, 언제는 ‘최태민씨는 박근혜 후보의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던 사람들이 별안간 탄핵에 앞장섰다. 대통령에게 야당보다 더 앞장서서 어느 날 갑자기 침을 뱉는 것은 안 된다. 배신의 정치는 보수정당에서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좌중을 돌며 연설하는 그에게 친박계 참석자들은 여러 차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모임에 참석한 조원진 최고위원은 기자와 만나 “나가겠다고 한 비박은 알아서 나가줘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는 당 윤리위원회에 친박 인사 8명을 새로 충원해 박근혜 대통령의 징계를 막는 한편,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의 출당 조치까지 고려한 포석을 뒀다.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은 김무성·유승민 의원을 향해 “대통령 탄핵을 사리사욕과 맞바꾼 배신과 배반, 역린 정치와 후안무치의 상징”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비박계 역시 친박 핵심들과는 함께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상태다.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12월12일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김진태 의원 등 8명을 민심을 배반하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방기한 ‘최순실의 남자들’로 규정하고 탈당을 요구했다.

나경원 의원도 원내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당을 사당화해 공적 제도와 기구를 사유화한 가짜 보수를 척결해야 한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 지금의 모습으로 화합만 외친다면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가 될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한 비박계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친박들이 너무 심하다. 얼굴도 보기 싫다”고 말했다.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갔다. 탈당과 신당 창당 구상을 언급했다. 김 전 대표는 12월13일 기자회견을 열어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가 아니라 정치적 노예들이다. 정치를 국민이 아닌 봉건시대 주군에 대한 충성과 신의 문제로 접근하는 가짜 보수에게 보수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새누리당을 탈당해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원회 구성 따라 분당 여부 갈릴 듯
비박계는 탈당 기로에 섰다. 탈당의 열쇠를 쥔 유승민 의원(왼쪽 첫 번째)과 김무성 전 대표(왼쪽 두 번째)가 12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주류 모임에 참석해 탄핵 이후 당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비박계는 탈당 기로에 섰다. 탈당의 열쇠를 쥔 유승민 의원(왼쪽 첫 번째)과 김무성 전 대표(왼쪽 두 번째)가 12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주류 모임에 참석해 탄핵 이후 당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새누리당 주변에선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양 계파가 갈라설 마지막 분수령을 12월21일께 예정된 비상대책위원장 선출로 본다. 당대표 격인 비대위원장은 핵심 당원들로 꾸려진 전국위원회에서 선출한다. 전국위원회는 70%가량이 친박 성향이다. 한 서울 지역 비박계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에 졌다고 당장 탈당하는 것은 명분이 떨어진다. 비대위원장 선출까지 지켜보고 마지막 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만일 비대위원장마저 친박계가 차지한다면 새누리당은 완벽한 친박당으로 꾸려진다. 사실상 비주류에겐 ‘나가라’는 신호이다. 비박계는 탈당과 신당 창당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릴 수밖에 없다.

비박계 리더 격인 유승민 의원은 “당 비상대책위원장 선출까지 지켜보고 탈당을 하든 당에 남아 있든 결심하게 될 것이다. 친박 지도부가 리모컨으로 조종할 수 있는 비대위원장을 선출한다면 당이 파국으로 가지 않겠느냐”라고 말한 바 있다. 유 의원은 12월16일 원내대표 선거 뒤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좀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탈당을 언급한 김무성 전 대표도 결심을 앞당길 수 있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새누리당 의원은 “김 전 대표는 당내 친박과는 당 개혁을 논의해봐야 진흙탕 싸움만 반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대선 불출마도 선언한 만큼 당 밖에서 개헌 세력들과 일을 도모하겠다는 쪽으로 기운 상태다”라고 말했다.

일단 정우택 원내대표는 계파 갈등을 해소하겠다며 비박계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한다. 그는 “비상대책위원장 선출은 중도그룹과 비주류에서 추천하는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실행에 옮겨질지는 미지수다. 주류 친박계는 지도부를 대신할 비대위를 구성할 뜻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이장우 최고위원은 “친박계에서 당을 새로 재건하고 외연을 확장해 대선 체제를 준비하는 충분한 리더십을 갖춘 분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셔서 당 개편까지 완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는 비대위원장 후보로 김태호·이인제 전 의원과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비박계 안에서는 정 원내대표가 실제로는 철저한 친박인 만큼 비박계가 요구하는 비대위원장을 순순히 수용할 리 없다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비박계인 정병국 의원은 “비상대책위원장을 친박계 인사로 밀어붙인다면 비박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탈당하는 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자꾸 계산을 하면 안 된다. 단호하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비박계가 탈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비박계에 남은 선택은 탈당밖에 없다. 정 원내대표의 당선은 친박계가 촛불 민심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박근혜 대통령 구하기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비박계엔 ‘분당하려면 하라’는 신호다. 비박계가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면 명분 없이 친박과 동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박계, 남경필·이재오 신당과 손잡을까

새누리당 주변에선 비박계가 탈당하면 남경필 경기지사와 이재오 전 의원이 추진 중인 신당과 세를 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11월22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는 함께 탈당한 김용태 의원을 비롯해 정두언·정문헌·박준선·정태근·이성권 전 의원 등과 창당 발기인을 모으고 있다.

남 지사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 여부에 상관없이 내년 1월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 내부에서 신당이 보수를 근간으로 할지, 아예 탈이념을 간판으로 내세울지 치열한 내부 토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 지사 등은 2015년 12월 스페인 총선에서 60석을 얻으며 제3당으로 등극한 정당 ‘포데모스’ 모델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태 의원은 “당원들이 직접 온라인을 통해 후보자 결정과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정당, 정치 실험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이 주도하는 늘푸른한국당도 내년 1월 중앙당 창당을 마칠 예정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줄이고 분산하는 개헌’을 내세우는 늘푸른한국당은 12월8일 전국 17개 시도당 창당을 마무리했다. 이 밖에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만든 ‘새한국의 비전’도 제3지대론을 내세우며 여야의 비주류 세력과 함께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김형준 교수는 “비박계가 탈당하면 새누리당 출신 인사들이 밖에서 꾸린 정당들과 함께 대선 국면에서 보수 대연합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대선에서 보수가 친박 중심 새누리당과 비박 중심 신당으로 갈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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