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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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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라는 시험지 앞에 선 검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석수 특별감찰관 동시 수사 나선 검찰, 청와대 뜻 따르자니 조직이 통째로 흔들릴 테고…
등록 2016-08-30 17:19 수정 2020-05-03 04:28

결국 검찰에게 칼자루가 주어졌다. 검찰은 의경인 아들 보직 특혜 의혹과 가족 기업인 ‘정강’의 회삿돈 횡령 혐의를 사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에 대한 감찰 내용 누설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동시에 수사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리기로 했다고 8월23일 밝혔다.
초유의 민정수석 수사

우병우 민정수석이 6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로 꼽히는 우 수석은 의경인 아들 보직 특혜와 가족 회사인 ‘정강’ 회삿돈 횡령 혐의 등으로 친정인 검찰에서 수사받는 처지에 놓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우병우 민정수석이 6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로 꼽히는 우 수석은 의경인 아들 보직 특혜와 가족 회사인 ‘정강’ 회삿돈 횡령 혐의 등으로 친정인 검찰에서 수사받는 처지에 놓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대통령 친척과 청와대 수석 이상 비서관의 비위 행위를 감찰하기 위해 이번 정부 들어 만들어진 특별감찰관을 수사하는 것 역시 처음일 수밖에 없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특별수사팀장으로 윤갑근 대구고검장을 선택했다. 과거 특별수사팀의 경우 차장검사급(국정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이나 지검장급(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팀장을 맡아왔다. 고검장이 팀장을 맡아 특별수사팀을 지휘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검찰 역시 이번 수사를 녹록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어떤 결론이 나든 검찰로서는 부담스러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특별수사팀까지 꾸린 마당에 우 수석을 무혐의 처리한다면 의혹을 털어주기 위한 수사를 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시기도 좋지 않다. 검찰은 최근 게임업체 ‘넥슨’에서 주식을 뇌물로 받아 100억원대 재산을 형성한 혐의 등으로 진경준 검사장을 구속했다. 현직 검사장이 구속된 것은 검찰 역사상 처음이다. 이 일로 검찰은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또 정치권에선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신설 등 검찰의 수사권 일부를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는 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마냥 여론을 등지고 권력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검찰은 ‘조직 보호’ 논리가 강한 조직이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의사를 밝히자 검사들이 집단적으로 항명에 나서 결국 사퇴하게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직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침을 막아내기 위해 조직의 최고 수장마저 물러나게 한 것이다.

이같은 조직의 생리에 따라 검찰이 우 수석의 범죄 혐의를 제대로 밝히는 정면 돌파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장기’와 같다거나 ‘팔’이라고 불리는 실세를 공정하게 수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면 검찰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거대한 걸림돌이 있다.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이다. 청와대는 우 수석과 관련한 의혹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왔다. 우 수석을 감싼 것이다. 하지만 MBC가 8월16일 이 감찰관이 특정 언론에 감찰 내용을 누설했다고 보도하자 청와대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8월19일 “(감찰 내용 누설은)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우 수석은 무죄, 이 감찰관은 유죄’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린 셈이다.

부담스러운 칼자루 쥔 검찰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 등 중요 사건마다 권력의 편에 서왔던 검찰이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결국 검찰은 자신의 조직과 권력 중 무엇을 지킬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 것이다.

우 수석과 관련한 의혹이 처음 불거질 때만 해도 검찰이 이처럼 복잡한 처지에 놓일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우 수석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은 였다. 는 7월18일 2년 동안 팔리지 않았던 우 수석의 처가 부동산을 넥슨이 1325억여원에 특혜 매입했고 이 과정에 진경준 검사장이 연루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인연 때문에 우 수석이 재산 형성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진 검사장의 허물을 눈감아주고 검사장 승진을 시켜준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 의경인 아들이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운전병으로 보직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서 우 수석의 처가가 경기도 화성시 인근 땅을 차명 보유해왔다는 의혹까지 여러 보도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청와대는 우 수석과 관련된 여러 의혹을 ‘사실이 아니다’라거나 ‘확인되지 않은 일이다’라며 애써 무시해왔다. ‘버티기’로 일관한 것이다. 시민단체 등이 우 수석을 고발하고 이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부장 이진동)에 배당됐지만 언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지 알 수 없었다. 검찰이 민감한 사건을 수사 부서에 배당한 뒤 1년 이상 지지부진하게 끌다가 여론이 잠잠해질 때쯤 처리한 사례는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불꽃은 의외의 곳에서 일기 시작했다. 특별감찰관실이 7월21일 우 수석 감찰에 나선 것이다. 감찰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이 감찰관이 청와대라는 든든한 뒷배를 가진 우 수석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다른 해석이 나왔다.

이 감찰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을 수사한 특별검사팀에 특검보로 참여해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 등을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를 직접 조사한 것도 이 감찰관이었다. 법조계에선 강단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감찰 소식이 알려진 당시 이 감찰관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상당히 깐깐한 사람이다. 감찰을 시작해놓고 대충 사건을 마무리할 사람이 아니다. 청와대가 기대하는 결과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석연찮은 이석수 녹취 내용 보도
우병우 민정수석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8월22일 오전 서울 청진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이 감찰관은 이날 기자들이 감찰 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해 거취 문제를 묻자 “의혹만으로 사퇴하지 않는 것이 이번 정부의 방침 아니냐”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우병우 민정수석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8월22일 오전 서울 청진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이 감찰관은 이날 기자들이 감찰 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해 거취 문제를 묻자 “의혹만으로 사퇴하지 않는 것이 이번 정부의 방침 아니냐”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MBC와 에서 감찰 정보가 특정 언론에 유출됐다며 보도한 녹취 내용에도 이 감찰관의 의지가 잘 드러난다. 이 감찰관이 간부와 통화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녹취 내용을 보면, 이 감찰관은 “다음주부터 (우 수석) 본인과 가족에게 소명하라고 할 건데, 지금 ‘이게 감찰 대상이 되느냐’고 전부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런 식이면 우리도 수를 내야지. 우리야 그냥 검찰에 넘기면 된다. 검찰이 조사해버리라고 넘기면 되는데 저렇게 버틸 일인가”라고 말한다. 우 수석 감찰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대목이다.

그는 “경찰에 자료를 달라고 하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 한다. 경찰은 민정(수석) 눈치 보는 건데, 그거 한번 애들(기자들) 시켜서 어떻게 돼가나 좀 찔러봐.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놨는지 꼼짝도 못한다”며 조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감찰을 못마땅해한 정황도 드러난다. 이 감찰관은 “감찰을 개시한다고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대통령께 잘 좀 말씀드리라’고 하면서 ‘이거(우 수석 사건) 어떻게 되는 거냐’고 했더니 한숨만 푹푹 쉬더라”라고도 말했다.

MBC가 이 감찰관의 대화 내용을 감찰 정보 누설이라고 보도한 시점은 8월16일이다. 가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추가로 보도한 시점은 8월18일이었다. 한 달로 정해진 특별감찰관의 감찰이 만료되는 8월19일 직전에 감찰 정보가 누설됐다며 이 감찰관을 비판하는 보도가 잇따른 것이다.

이같은 보도는 간부가 이 감찰관과의 대화 내용을 정리해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취재메모가 외부에 유출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사가 다른 회사의 취재메모를 바탕으로 보도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야당은 청와대나 여당이 이 감찰관을 흔들어 우 수석에 대한 검찰 고발이나 수사 의뢰를 막기 위해 관련 보도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감찰관은 감찰 기간 만료 전인 8월18일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우 수석 사건을 수사 의뢰했다. 칼을 뽑아든 셈이다. 이 감찰관은 감찰 정보 유출 논란이 불거진 뒤 거취를 묻는 기자에게 “의혹만으로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 아니냐”고 되물었다.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 수석을 겨냥한 말이다.

기소 여부 따라 우병우 거취 결정될 듯

우 수석 의혹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검찰로 공이 넘어왔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린 것은 이 사건을 빠르게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다. 조만간 내릴 검찰의 선택에 따라 우 수석의 거취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윤갑근 팀장은 8월24일 우 수석 의혹 수사 범위와 관련해 “수사 의뢰된 사건 말고도 다른 고발된 사건들이 수사 대상이 되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 감찰관이 수사 의뢰한 직권남용 및 횡령 혐의 외에 우 수석 처가 땅의 넥슨 특혜 매각 의혹과 경기도 화성시 땅의 차명 보유 의혹 등도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수사 범위가 넓어지면 기소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 검찰 간부는 “우 수석 성격상 검찰이 기소하기 전까지는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한 차례 검찰 소환 조사 정도는 참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재판에 넘겨진다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현직 민정수석 신분으로 여러 차례 이어질 재판에 매번 참석하는 것은 본인은 물론 대통령에게도 상상하기 어려운 부담을 주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우병우라는 시험지를 받아든 검찰은 과연 어떤 답안지를 내놓을까.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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