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첫 선택은 ‘청년’이었다. 20대 국회 개원 첫날인 5월30일, 새누리당은 당론 ‘1호 법안’으로 ‘청년기본법’을 발의했다. ‘1호 법안’은 각 당이 20대 국회에서 어떤 분야에 주력하겠다는 상징이다. 야당은 따로 ‘1호 법안’을 지정하진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습기 살균제 등 피해자 구제를 위한 ‘생화학물질 피해 구제법’ 등 ‘긴급 현안 3대 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대기업 독과점을 막는 ‘공정성장법’과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제조물 책임법’ 등을 최우선 입법 과제로 내세웠다. ‘민생’이라는 열쇳말로 묶일 수 있다.
청년표 얻으려는 새누리당의 첫 카드20대 국회 초반전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전초전 성격이 짙다. 새누리당 내부적으로는 이번 총선에서 젊은 층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니 내년 대선 때까지 청년들의 마음을 얻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청년기본법’이 1호 법안으로 탄생한 배경이다. 보수 청년단체인 ‘청년이 여는 미래’ 대표였던 신보라 의원을 법안 대표 발의자로 앞세워 총 122명의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자로 동참한 까닭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이와 함께 ‘청년소통특별위원회’(청년특위)도 출범시켰다. 청년특위는 “청년과의 대화와 소통을 강화해 청년이 원하는 청년 정책을 발굴하고, 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청년층 지지율을 제고할 예정”(5월29일 새누리당 보도자료)이다.
국회에서 청년기본법이 발의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새누리당에선 2014년 김상민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선 2014년 박기춘 의원과 2015년 김광진 의원이 비슷한 법안(‘청년발전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지난해 장하나 더민주 의원도 민주정책연구원과 함께 청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최초로 규정한 관련 법안을 준비(제1079호 ‘진짜 청년정책의 시작, 청년경제기본법 나왔다’ 참조)했으나 실제 발의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청년 관련 법은 번번이 다른 현안에 밀려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 처분돼왔던 것이다.
새누리당이 이번에 발의한 청년기본법은 앞서 발의됐던 ‘청년발전기본법’과 큰 틀에서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청년의 권리”(제1조 목적)를 처음으로 법안의 목적으로 명시한 점에서는 이전 법안들보다 한 걸음 나아갔다.
“청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며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한다”(제2조 기본이념)거나, “청년의 기본권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존중되어야 한다”(제5조 청년의 권리와 책임)고도 분명히 못박았다. 청년을 ‘발전’의 대상보다는 ‘권리’의 주체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장하나 의원이 준비했던 청년경제기본법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청년 권리’ 명시 의미 있지만…국무총리 산하에 청년 정책의 주요 사항을 심의·조정할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둔다거나, 매년 8월을 ‘청년의 달’로 지정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청년 정책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는 등의 내용은 이전 법안들과 거의 비슷하다. 이 밖에 정부가 해마다 고용·주거 등 청년 문제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고,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소속 공무원 중에서 ‘청년 정책 책임관’을 지정하도록 했다. 국가와 지자체는 청년단체에 행정적 지원을 할 수도 있다. 법안에서 정한 청년의 범위는 만 19~39살이다.
그동안 청년과 관련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종합할 기준 법률 제정을 요구해왔던 청년단체들은 청년기본법안 발의 자체에는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한편으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청년유니온은 논평을 내어 “여당이 이제라도 청년기본법 제정에 동참해주어 환영한다. 다만 청년 정책을 일자리와 고용 정책으로 한정하는 기존 인식과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오늘날 청년들이 겪고 있는 핵심적 어려움이라 할 수 있는 주거 안정, 부채 경감, 노동인권 등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새누리당이나 정부가 보이는 모습은 청년기본법의 취지나 방향과 곳곳에서 충돌한다. 새누리당은 청년기본법 외에 ‘노동4법’(파견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도 20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처리할 법안으로 꼽았다. 청년기본법에서는 “청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개선 및 정규직 전환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제19조 고용지원)고 강조해놓고선, 다른 한쪽에선 열악한 비정규직 일자리인 파견직을 확대하는 꼴이다. 노동4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5월13일 3당 원내대표단과의 회동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회에서 꼭 통과시켜달라”고 강조한 이른바 ‘대통령 관심 법안’이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등 노동계와 대립하는 첨예한 사안마다 청년 ‘장그래’를 내세워 청년 일자리를 늘리려면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정책에 힘을 실어달라는 레퍼토리를 반복해왔다.
청년기본법을 통해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서울시가 미취업 청년 3천 명에게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간 지급하려는 ‘청년수당’ 사업만 해도 보건복지부가 5월26일 ‘부동의’ 의견을 통보하는 등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시가 예산 90억원을 투입해 7월 ‘청년수당’ 시범사업을 시작하려는 데 대해 중앙정부가 “무분별한 현금 지급에 불과하다. 전반적으로 사업 설계를 다시 하라”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사회보장기본법상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할 때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 경기도 성남시가 만 24살 청년에게 연간 50만원씩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청년배당’ 사업도 보건복지부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청년참여연대는 6월1일 발표한 논평에서 “청년기본법안 일부 내용이 지자체의 청년 정책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전국 10여 개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제정하였거나 추진 중인 ‘청년기본조례’가 구체적인 지원 정책 단계에서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인데, 청년 정책의 총괄·조정 역할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부여하고 청년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의 구성을 오로지 국무총리가 위촉하도록 했다”는 이유에서다.
청년 정책 이끌 2030세대 사라진 국회20대 국회에서 청년을 대변할 국회의원이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나이가 20~30대인 국회의원은 신보라(새누리당), 김해영(더민주), 김수민(국민의당) 세 사람밖에 없다. 더민주는 청년 비례대표를 국회에 입성시키는 것도 실패했다. 더민주는 5월26일 ‘청년일자리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을 뿐, 청년기본법 등에선 새누리당보다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최근 2~3년 새 여야 원내 정당들이 청년 문제에 대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총선 때도 많은 관련 공약을 내놓긴 했지만 ‘한판의 퍼포먼스’에 그치곤 한다. 지속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한 때다”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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