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지휘하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보는 야권 핵심 지지층의 심경은 복잡하다. 제1야당을 어느 정도 안정시켰다는 평가와 그의 고집이 위험수위에 있다는 걱정이 혼재한다. 김 대표는 자신의 구상대로 당선이 유력한 당의 비례대표 후보 2번까지 꿰찼다. 그의 영향력은 총선 뒤에도 이 당에 짙게 드리울 것이다.
야권의 열성 지지층을 확보한 정청래 의원은 ‘김종인과 더민주의 만남’을 어떻게 바라볼까. 3선을 자신하던 그는 ‘김종인 체제’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여기까지라면 그와의 인터뷰는 자칫 김 대표에 대한 성토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역구(서울 마포을)에서 후보로 나선 손혜원 당 홍보위원장을 적극 돕는 것을 넘어 전국을 돌며 당 후보들을 지원하고 있다. 공천 탈락자가 ‘김종인 총선 체제’의 최전선에 선 것이다.
“저들의 주술에 걸려든 것”
류우종 기자
그는 인터뷰 다음날인 3월26일에도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해 전남 영광, 경남 진해·창원 지역 당 후보들의 개소식에 참석한 뒤 한밤에 상경해 27일 아침부터 손혜원 후보와 같이 지역 선거운동에 나서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는 “내가 대선 후보도 아니고.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이 이렇게 다니는 것 봤느냐”고 기자에게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정 의원은 김 대표가 “당을 안정시킨 것은 인정한다”고 했지만, 그에게서 “당을 도와주러 왔다는 메시아 의식”이 보인다고 우려했다.
정치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다. 내가 부족해서 아웃(공천 탈락)된 것이겠지만, 그간 내가 했던 것들이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내 인생을 걸고 (정치를) 했는데…. 난 당에서 (여당을 상대로) 왼쪽 최전방 공격수를 자임했다. 상대의 태클로 넘어지면 동료가 일으켜줘야 하는데, (팀 안에서) 공격수를 손가락질하고 날 퇴장시켰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 했다고 생각한다.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지칭)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들 언론이) 날 공천하지 말라는 사설까지 썼다. 당도 날 공천한 뒤 종편(종합편성채널)이 당을 계속 공격하면 선거가 좋지 않게 흐를 수 있다고 오판한 것 같다. 저들(조·중·동과 종편)의 주술에 걸려든 것이다.
처음엔 지지자들이 눈물을 흘리니 나도 울었다. 그런데 그들이 너무 아파하니 어느 순간 위안이 됐다. 그다음부턴 그 눈물을 닦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탈락한 뒤 당의 의원 40여 명의 전화를 받았다. 지역에 나가면 ‘정청래를 왜 잘랐냐, 투표하지 않을 거다’는 항의를 받는다더라. (공천 결정에 실망한) 당원들의 탈당도 이어졌다. 그때 내가 이분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자발적 책임감을 갖게 됐다.
핵심 지지층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 (선거 전략의) 디테일이 약하다. 바둑도 한점 한점 두면서 (전체 판을) 지켜나가듯 선거도 지역별로 가장 적합한 사람을 배치해 의석수를 늘려가는 거다. 김 대표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하지 않아 그쪽 여론에 둔감하다. 비대위에서 (정청래 탈락 이후)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고 의견을 낸 사람도 있었다. 김 대표가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성격인 것 같다. 하지만 탈락 결정 이후 김 대표가 ‘미안하다’고 얘기하더라. 탈당 등이 이어지니 본인도 놀란 것 같다. ‘당이 어렵다, 도와달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전권을 넘기기로 결정한 이상 반대하는 것은 혼란을 부추길 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SNS에) ‘경제민주화님(김종인 대표 지칭) 환영한다’고 글을 올린 이유다.
우린 헌법을 지켜야 하는 법치국가다. 정당도 당의 헌법인 당헌을 지켜야 한다. 당헌은 비대위보다 상위 기구인 중앙위원들이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후보 순번을 정하기로 돼 있다. 그런데 비대위는 비례대표 공천 후보들을 처음부터 A(당선안정권), B·C그룹 등으로 나눠 칸막이를 쳤다. 아랫기구(비대위)가 윗기구(중앙위)의 표결권을 침해하려 했던 것이다.
(비대위가 처음에) 10명을 포함시켰던 A그룹의 분들을 보면 외연 확장은커녕 누군지도 잘 모르겠더라. A그룹 10명 중에 국민이 알 만한 사람은 2번에 배치된 김 대표뿐이다. 비례대표는 유명하고 신망이 있으며 당의 정체성과 맞아야 한다. 그래야 비례대표를 통해 외연 확장도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친노 패권은 실체도 없지만, 그보다 100배 더 패권적 모습을 보이는 친박에 대해선 조·중·동과 종편이 왜 ‘친박 패권’이라고 공격하지 않는가?
당을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심리적 당원이 아니어서 당원과 일체감이 아직 없는 것이다. (당의 구원자라는) 메시아 의식이 보인다.
당을 안정시킨 점은 인정한다. 그간 10년간 당에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았는데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한 사람들을 어쨌든 김 대표가 (대부분) 공천했다. 김 대표 개인에 대한 비판은 자제하고 싶다. 다만 당의 노선에 대해선 김 대표와 생각이 다르다.
외연 확장에 반대하지 않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집토끼(핵심 지지층)가 강고해야 한다. 외연 확대 이전에 내연 강화를 해야 한다. 지지층이 무너지고 외연을 확대한다는 것은 주춧돌이 없는데 기와를 얹겠다는 것과 같다. 핵심 지지층의 감동적 헌신이 있으면 다른 지지자가 추가로 또 붙는다.
무당층은 여당이 여당다울 때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이 야당다울 때 야당을 지지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야당이 야당으로서 잘하면 무당층도 이번에 야당에 힘을 실어주자고 할 것이다. 그래서 노선이 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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