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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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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민심을 읽는 두 개의 시선

패권 혹은 개혁
등록 2016-02-06 19:25 수정 2020-05-03 04:28
제1야당 분당·탈당을 독해하는 학자 두 명의 견해를 싣는다. 현 사태의 책임을 영남 개혁세력에게 묻는 논쟁적 글과 지역주의 작동 양상을 차분하게 분석한 또 다른 글이다. 대립적이진 않지만 일치하지도 않는 두 글이 상황의 일단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앞으로도 은 개방적인 논쟁의 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_편집자호남은 ‘표 찍는 인질’이 아니다

호남은 왜 흔들리는가? 왜 지금까지처럼 더불어민주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가? 대한민국 정치를 호남의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영남의 새누리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를 상수로 놓고 생각하는 관찰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수수께끼가 생긴 셈이다. 더군다나 아무리 봐도 영남은 관성 그대로인데 호남 민심만 요동치고 있으니 그 수수께끼를 가히 미스터리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동치는 호남 민심
2015년 5월17일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 전야제에 참석하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2015년 5월17일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 전야제에 참석하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화산이 폭발하는 건 어느 경우든 갑작스럽고 예측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그 폭발의 원인은 결코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 폭발적 현상만을 보고 원인을 몰라 놀랄 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야권 분열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거꾸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받기 위해 정치인들이 우왕좌왕하니까 호남 민심이 거기에 휩쓸려 우왕좌왕한다고만 생각한다. 올바로 세워놓고 봐야 한다. 아무리 정치공학이 만연해도 근원적으로 민심이 저변이고, 정치인들은 그 저변을 반영하는 현상일 뿐이다.

다시 정확하게 관찰해보라. 새누리당은 아무리 공천을 둘러싸고 아귀다툼을 벌여도 쉽게 분열하지 못한다. 설령 누군가 당내 패권을 주장하며 신당을 만든다 해도 그것이 쉽게 지진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영남 중심의 지지자들 지지가 일원적이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마치 지진처럼 느껴진다. 애초에 천정배가 지난해 4·29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이 당에서 정치인들의 분쟁 조짐이 있을 때도 세상을 거꾸로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공천 다툼으로만 이해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친노세력은 ‘나갈 테면 나가라’는 조롱까지 했다. 말하자면 친노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민심이 저변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내겐 너무 익숙한 패권적 천성이다.

이제 여기서부터 조금 어렵다. 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민심”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민심의 속살은 두 이질적 세력의 오래된 연합체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게 “조금 어렵다”고 말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지배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그것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못 보게 한다. 도대체 있는 무엇을 못 보게 하는가? 지역을 못 보게 한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지역 문제라면 이골이 날 만큼 잘 알고 있는 상식인데 웬 뚱딴지냐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물어보자. 우리나라의 지역 문제는 정확히 뭘 의미하는가? 영남과 호남이 감정적으로 사이가 나빠 영남당과 호남당에 일방적으로 투표하는 것?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지역주의라고 불리는 문제는 정확히 영남패권주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세력은 이 영남패권주의를 둘러싼 네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우선 새누리당을 본당으로 하는 영남패권주의 세력이 있다. 다음으로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반영남패권주의 세력이 있다. 그리고 영남과 호남 모두 이제 와 굳이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계층적으로 새 출발 하자는 영남 출신 위주의 양비론자들이 있다. 노무현이 이 양비론을 대표했고, 친노는 그것을 따른다. 그리고 영남패권주의에 질식돼 그 세력을 확장시키지 못하는 진보세력이 있다. 그들은 극단적 계급환원주의에 입각해 눈앞에 뻔히 보이는 영남패권주의가 없다며 억지를 부린다. 도식화하면 우리나라 국민 99%의 정치적 입장은 영남패권주의, 반영남패권주의, 양비론, 계급환원주의, 이 넷 중 하나다.

영남패권주의를 둘러싼 네 가지 입장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영남패권주의 세력은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단순하게 잘 뭉쳐 있다. 하지만 소수 세력인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 세력과 영남 개혁 세력 위주의 양비론자들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한 당에서 이질적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어쩌다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을 장구하게 그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연대·분열, 김대중과 ‘꼬마 민주당’의 연대·분열, 새천년민주당과 노무현(열린우리당)의 연대·분열, 그리고 이제 시작된 신당 세력과 더불어민주당의 연대·분열이 모두 유구한 족보를 가진 유사한 정치적 현상이다.

그렇다면 분열의 근원이 되고 있는 호남 민심의 요체는 무엇인가?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 역사 속에 그 답이 있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이래 영남패권주의 국가화가 됐다. 1980년 광주는 영남 파시즘으로 무장한 영남 군부세력에게 양민 학살까지 당했다. 호남은 90% 몰표로 반영남패권주의 투쟁을 한 결과 정권 교체라는 희망을 보기도 했다. 한데 호남은 노무현 이래 다시, ‘선거 전엔 호남 몰표 겁박, 선거 후엔 지역주의 비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양비론) 세력의 ‘표 찍는 인질’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이것이 호남 불만의 요체이며, 이 불만이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분열의 시기가 다시 온 것이다.

최근에 나는 이란 책을 내어 몇몇 언론에서 뒤늦게 ‘소동’에 가까운 주목을 받았다. 책에서 난 이제 호남도 복수정당제를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호남은 ‘광주 정신’을 신화화해 ‘호남만은 개혁적이어야 한다(신성 광주)’며 ‘착한 호남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진보세력의 이데올로기에서도 깨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제 호남‘도!’ 다른 지역과 똑같이(세속 광주) 피눈물 나는 한 표 한 표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정당을 경쟁시켜 반영남패권주의를 선언하고, 행동하고, 보장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이런 내 관점에서 볼 때 현 야권 분열 상황에서 민낯 그대로 드러나는 친노 이데올로기는 가히 엽기적이다. 권범철은 (2015년 12월22일) 만평에 현 야권 분열을 “호남패권주의 세력”(그에 따르면 ‘노동자 패권주의’나 ‘여성 패권주의’ 같은 관념도 있을 것이다)과 안철수 지지층의 “홧김에 서방질?”로 적어놓고 웃자 하는가 하면, 유시민은 팟캐스트 를 통해 내 책을 “평민당 프로젝트(지역등권론의 21세기 버전)”라고 왜곡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엔 더불어민주당 최재성이 안철수당을 “호남팔이”라며 비난했다.

그나마 최재성의 발언 정도가 진지하게 논박할 만하다. 최재성이 말한 “호남팔이”라는 용어는 그 의미가 다소 모호하다. 하지만 내가 짐작한 뜻이라면, 유권자로서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 ‘호남팔이’다. 모든 정당은 ‘호남팔이’뿐만 아니라, 각 이념에 따라 ‘노동자팔이’ ‘여성팔이’ ‘환경팔이’ 등을 정확히, 그리고 정정당당히 해야 한다. 노무현과 친노야말로 지금까지 ‘호남팔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위선적인 ‘양두구육의 불공정거래’를 해서 문제였다. 그럼 ‘영남팔이’ ‘자본가팔이’도 정당한가? 그것이 정당한가는 그들이 (포장된 가짜 이데올로기 말고) 그 패권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놓고 정정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지를 보면 된다.

그런데 듣는 귀가 몹시 어두운 정파적인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영입과 탈당에 일희일비하면서 나의 문재인당 비판을 곧 안철수당 지지로 치환하려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난 그저 유권자로서 ‘지금까지 양두구육의 호남팔이를 한 친노 문재인당’이나, ‘유사 친노 증상(이번엔 ‘양비론’이 아니라 ‘양시론’이다)의 위험이 있는 안철수당’이나 ‘공정한 호남팔이’를 위해 열심히 경쟁하라고 촉구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새누리당도 개과천선해 찔금일망정 ‘호남팔이’를 잘하면 (내 표는 얻지 못할지라도) 기대 밖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고 유혹하고 있을 뿐이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월21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당 광주시당 창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월21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당 광주시당 창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정당당한 ‘호남팔이’를 원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당은 호남표를 얻으려면 모두 열심히 경쟁하라는 내 주장을 ‘야권 분열’을 촉구하는 위험한, 심지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발상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차치해놓고 오직 호남만이 신성한 의무감 속에서 특정 정당에 몰표를 던지느냐 마느냐를 곧 야권과 민주주의의 사활 문제로 치환해 호남을 겁박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야권과 민주주의의 진보는 호남만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민주적 진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보여줬다. 호남은 지금까지 몰표로 민주주의에 충분히 기여했고, 이른바 민주적 개혁·진보 세력으로부터 충분히 조롱받았다. 어쨌거나 호남은 앞으로도 최소한 다른 지역보다는 더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니 호남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지 존중해야 한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지역이다.

한데 얼마 전 문재인은 “호남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운명 공동체”라는 위헌적인 주장까지 했다. 심지어 당내에 ‘호남특위’까지 만들겠다더니, 급기야 김대중의 3남 김홍걸을 재입당(참고로 김홍걸은 2012년 11월12일 이미 민주통합당에 입당했었다)시키며 많은 사람들이 “우리당과 호남을 이간시키려” 한다며 “우리 당의 정통성과 정신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계기”라는 말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도대체 김대중의 생물학적 혈통으로부터 한 정당의 정통성과 정신을 재확인할 수 있다는 봉건적 발상이 어떻게 가능할까?

만약 문재인의 이런 발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김일성의 생물학적 혈통으로부터 북한의 정통성과 정신을 찾아헤맬지도 모른다. 또 다른 예도 있다. 1939년 10월17일,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은 박문사 이토 히로부미의 영전 앞에서 그의 차남 이토 분키치에게 “아버지를 대신해 깊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토 분키치는 “나의 아버지도, 당신의 아버지도 지금은 부처가 돼 하늘에 있기 때문에 사과의 말은 필요 없다”고 화답했다. 문재인의 봉건적 논리에 따르면 안중근의 정당성은 그의 생물학적 혈통 안준생에 의해 폐기됐다.

난 지금 김홍걸의 선택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분열의 이름으로 아버님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물학적 아들로서 아버지의 정치 역정 해석에 독점권을 행사하려는 듯 말했다. 할 말이 많지만 (지면 관계상) 그렇다 치자. 김홍걸이 설령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을 선택했다 한들 모든 것은 그가 책임져야 할 그의 몫이다. 문제는 김홍걸이라는 일개인의 선택을 “60년 야당의 정통 본류로서, 통합과 단결의 구심이 우리 당에게 있다는 대내외적 표방”이라고 주장한 민주주의 대한민국 제1야당 (전) 대표 문재인의 기절초풍할 발상이다.

그 기절초풍할 발상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가? 모두가 안다. 호남 몰표다. 한데 더불어민주당은 자기 당이 호남 몰표를 받을 때는 개혁으로 치장하고, 다른 당이 그럴 것 같으면 ‘호남팔이’로 비하한다.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의 인질인가? 왜 호남은 특정 정당에 몰표를 던져야 하는가? 호남을 이익 단위로 생각해서 지역적 이익을 확보해줄 요량으로? 불온한 상상일 것이다. 왜냐하면 친노의 양비론은 궁극적으로 ‘선거 전엔 호남 몰표 겁박, 선거 후엔 지역주의 비난’을 자행하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그럼 남은 대답은 하나다. ‘오직 민주주의라는 신성한 의무를 위해서 호남만은 세속적 이익과 무관하게 몰표를 던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의 친노 패권적 일당독재에 진저리를 친 이유다.

선거 전 겁박, 후 비난

그래서 결론이 뭔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걱정된다면 호남의 선택을 겁박할 것이 아니라 호남과 함께 영남패권주의와 싸우자는 것이다. 양비론이든 계급환원주의든 투항적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를 정 그렇게 포기 못하겠거든, 최소한 연대라도 할 수 있게 독일식 비례대표 내각제를 쟁취하자는 것이다. 오래 찌든 편견만 버린다면, 삼척동자도 이해할 만한 아주 간단한 주장이다.

김욱 서남대 교수·헌법학




호남은 개혁의 힘
한겨레 김성광 기자

한겨레 김성광 기자

칸트의 명제를 패러디하여 결론을 미리 말한다. 호남 없는 개혁은 ‘공허’하고, 개혁 없는 호남은 ‘맹목’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이끌어온 두 세력의 관계에 대한 얘기다. 그런데 이 둘 사이의 끊임없는 불화의 원인은 뭔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호남지역주의에 대한 개혁세력의 오독(誤讀) 때문이다.

개혁세력과의 불화

우리나라 지역주의는 몇 가지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구조적 성격이다. 우리의 지역주의는 영남이 다른 지역과 손잡고 호남을 ‘왕따’ 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째, 역사적 성격이다. 우리의 지역주의는 영남지역주의의 선행적 공세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에 대응하여 호남지역주의가 방어적으로 형성되었다. 셋째, 정치적 성격이다. 영남지역주의는 권위주의와, 호남지역주의는 민주주의와 결합하면서 자랐다.

이런 성격에 대한 이해가 개혁세력에게 부족했던 것이 분명하다. 개혁세력은 영남지역주의와 호남지역주의를 그저 평면적으로, 상대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호남지역주의가 독특한 구조적, 역사적,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래서 다른 지역주의와 구별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호남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할 그 무엇으로만 여겼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혼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은 호남을 낡은 것의 표상이라는 뜻으로 ‘난닝구’라 불렀다. 이 불편한 호명은 호남 지역을 더 큰 좌절감에 빠지게 했다. 왜냐하면 호남지역주의는 스스로 원한 바가 아니라 내몰려 가두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혁은 점점 더 깊어가는 호남의 고립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호남의 고립감이 깊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호남을 배제하는 정치적 기제는 겉으로 보기에 약화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구조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 지역을 고립시키기 위한 최초의 담론은 감정의 동원이었다. 이를테면 기질론이 그것이다. 호남 사람들의 성정은 어떻고 저렀더라. 호남 사람에 대한 편견을 동원하면서 호남 지역 바깥의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정치공학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만들기가 약방의 감초처럼 뒤따랐던 것은 물론이다. 호남에 부정적 인상을 덧씌우기 위해 조선시대, 멀리는 삼국시대의 ‘역사’까지 들추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 ‘역사’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었으나 호남을 배제하는 그럴듯한 이유로 동원되었다. 이런 담론은 만든 사람들 스스로도 억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적어도 공적 영역에서는 유통되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호남 고립화 담론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정당일체감의 동원이 그것이다. 영남 지역은, 지금은 새누리당이 된 정당들을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로 엮어냈다. 이 구호는 대구·경북·부산·경남이 뭉쳐야 한다는 얘기였고, 영남 지역이 새누리당과 하나라는 말이었으며,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새누리당의 깃발 아래 모여야 한다는 슬로건이었다. 정당일체감의 동원은 다른 한편으로 호남을 특정 야당과 동일시하도록 하여 가두어두려는 전략이었다. 이러한 담론의 진화는 호남 고립화를 강화하고 지속하도록 했다. 이 단계에서부터 호남 고립화 담론은 공공연하게 생산되기 시작했다.

호남 고립화 담론은 감정과 정당일체감의 동원에서부터 이데올로기의 동원으로까지 나아갔다. 색깔론이 호남 배제의 근거로 동원되기 시작했다. 호남에 특정한 가치를 칠하여 배제하려고 했다. 종북몰이가 곧잘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것이다. 냉전의 마지막 섬이라고 할 분단 체제의 남쪽에서 만들어지는 이데올로기의 동원은 사실 공포의 동원 그 자체였다. 이 단계에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게 된 호남 고립화 담론은 드디어 비공식 영역에서 공식 영역으로 나오게 되었고, 논리와 가치의 체계를 갖춘 이념으로까지 진화했다.

고립화에 동원된 담론

어떤 사람은 영남 지역에서 얻고 있는 야당의 지지율이 늘어나는 추이를 거론하며 영남의 호남 배제가 약화되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데 그것은 섣부른 결론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호남 배제 담론은 구조적으로 심화되면서 재생산되는 것이 현실이다.

고립에 대한 호남의 걱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한 호남의 대응은 우선, 내부적 단결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거울효과’를 통해 호남 지역의 결속은 점점 더 공고해졌다. 두 개의 거울을 마주 놓으면 한쪽 거울에 비친 영상이 반대쪽 거울에 영상을 만들고 그것은 또다시 맞은편 거울에 영상을 만들어 영상의 무한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 ‘거울효과’인데, 호남지역주의도 이런 원리처럼 서로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에 의해 재생산되고 강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호남은, 왕따와 배제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와 연대를 주저하지 않았다. 연대의 대상은 민주개혁 세력이었다. 이른바 지역등권론으로 충청 지역과 연대한 적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민주개혁 세력과 손잡았다고 할 수 있다. 호남이라는 지역성과 개혁성이라는 가치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호남 지역의 단결은, 호남을 배제하려는, 선행적이고 공세적인 영남 중심의 지역 연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고, 그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이 외부와 연대를 통해 실현하려는 목표는 우리나라 정치에서 다수파를 형성하는 것이다.

지역주의의 거울효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에 대한 호남의 유동적인 태도는 이런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 호남은 최고의 득표율로 그를 지지했다. 호남이 민주개혁의 동력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일이었다. 호남 지역의 힘이 존재하지 않으면 개혁세력은 어떤 힘을 쓰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재인은 패배했다. 짐작건대 호남은 대선 패배의 충격을 가장 크게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호남은 패배의 역사적 고통이 얼마나 아픈가를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배제 과정에서 느꼈던 좌절과 상실감은 물론 1980년 5월에 겪었던 아픈 기억 때문에 호남이 대선 패배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선 패배 이후 문재인과 그가 몸담고 있는 정당이 패배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찰은커녕 당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정당 운영을 분파적으로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대선은 물론 국회의원 선거까지 패배한 정치세력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다. 그것은 승리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할 정당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제1야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가 이탈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문재인에 대한 호남의 실망은 결코 감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호남이 실망한 까닭은, 그가 호남에 살갑게 대하지 않아서라든지, 자주 찾아가지 않아서라든지, 혹은 그의 언사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패배를 성찰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정치세력으로서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이별한 안철수에 대한 호남의 지지는 문재인에 대한 실망의 반대급부였다. 책임에서 면제된 이에 대한 호의의 표현이었으며 그가 가진 미지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의 반영이었다. 호남에서 안철수의 지지도가 탈당 후 파죽지세라 할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맹목적인 건 아니었다.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의 정체성과 능력이 혼란스럽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호남의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국민의당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는 상황이다. 가치정치와 세력정치, 독자노선과 연합노선 등 국민의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명료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혼란 때문에 국민의당은 호남으로부터 책임 있는 세력이라는 신뢰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체성에 대한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호남의 지지에 치명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었다.

두 당에 대한 호남의 평가는 아직 유동적이다.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인 것 같다. 다만 두 당을 평가하는 기준은 분명하다. 하나는 개혁성이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전문위원 경력이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자신의 과거와 관련해 사과를 한 것이나, 이승만을 국부라 칭한 국민의당 한상진 위원장 역시 고개를 숙인 것은 개혁성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가진 호남의 눈높이에 부응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다른 하나의 기준은 집권 능력인 것 같다. 두 당 가운데 어느 편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서 승리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호남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말까지 듣던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백의종군, 패권적 당 운영 청산, 새로운 인재 영입 등을 통해 체제를 정비하자 호남의 지지도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는 소식이나, 파죽지세로 올라가던 국민의당 지지율이 내부의 혼란으로 소강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은 두 야당에 대한 호남의 평가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호남 민심은 말한다

두 야당이 호남에서 지지를 얻으려는 것은 호남의 지지가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호남이 두 야당을 평가하는 기준은 집권에 필요한 개혁성이다. 이것이 ‘호남 없는 개혁은 공허하고, 개혁 없는 호남은 맹목이다’라고 말하는 소이(所以)이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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