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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의 법칙’으로 엮인 두 경찰 수장의 정치 언어

‘닮은꼴 정치 신인’ 김용판-김석기… 청문회 선서 거부를 ‘뚝심’과 ‘의리’로, 용산 참사 진압을 ‘원칙을 위한 희생’으로 포장
등록 2016-01-06 17:22 수정 2020-05-03 04:28
제20대 총선 출마를 선언한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용판씨의 선거홍보물(왼쪽)과 김석기씨의 출마선언문. 김용판·김석기 블로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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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총선 출마를 선언한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용판씨의 선거홍보물(왼쪽)과 김석기씨의 출마선언문. 김용판·김석기 블로그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5년 12월3일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그 남자’는 선언했다. “정통 보수 정권의 재창출과 박근혜 대통령님의 성공을 위해 확실하게 뒷받침하겠습니다.”

그 남자는 1958년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태어났다. 1982년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해 제27대 서울지방경찰청장(2012년 5월~2013년 3월)을 지냈다.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달서을 선거구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20일 뒤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다른 남자’가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 정신을 이어가고 레임덕 없는 국정운영을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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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54년(신고일 기준·실제 출생은 1953년)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태생이다. 1978년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이명박 정부 초기 제22대 서울지방경찰청장(2008년 7월~2009년 2월)을 역임했다. 제20대 총선의 새누리당 경주 선거구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김용판(앞)과 김석기(뒤). 두 남자는 ‘4년의 끈’으로 묶여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들의 인생 행로는 ‘쌍생’이다. 김석기가 앞서고 김용판이 따르며 4년을 간격으로 거듭 포개졌다. 그들은 4년 차이로 TK(대구·경북)에서 태어났고, 4년 차이로 영남대를 졸업했으며, 4년 차이로 서울경찰청장이 됐다.

박근혜 지키는 “수문장” “진실한 사람”

두 사람의 이름이 전·현 정부의 그림자와 단단하게 결박되는 일도 4년여를 사이에 두고 되풀이됐다. 김석기와 김용판은 서울경찰청장 재임 시절 이명박 정권(용산 참사)과 박근혜 정권(국정원 대선 개입)을 뒤흔든 대형 악재의 당사자였다. 그들이 격발하거나 연루된 일로 한국 사회는 불타거나 쪼개졌다.

국가권력의 남용과 오용을 둘러싼 격동을 겪으며 김석기는 청장 취임 7개월 만(경찰청장 내정 한 달 만)에 교체됐고 4년 뒤 김용판도 같은 길(임기 10개월째)을 걸었다. 퇴임 뒤 ‘여의도행’의 첫걸음을 뗀 것도 김석기(2012년 총선 출마)가 4년 빨랐다.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두 사람은 마침내 동일 선상에 섰다. 국회 입성에서도 ‘4년의 법칙’이 지켜질지 순서가 뒤집힐진 두고 봐야 한다. 4년마다 오버랩되는 김석기-김용판의 행로가 저주인지 인연인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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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이름으로 죄를 묻고 국가권력을 움직여 처벌하던 두 명의 경찰 수장이 ‘닮은꼴 여정’을 거쳐 정치에 이르렀다. 말을 아껴온 그들이 언어의 고삐를 놓으며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의 행로만큼 그들의 ‘정치 언어’도 닮았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독점하던 (공)권력의 언어가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정치 영역에 날것으로 진입하면서 주군을 향해 구애하고 반대 의견을 향해 정죄한다.

【박근혜를 위하여】  공명과 정대를 앞세우던 (공)권력의 집행자들이 출마를 선언하며 가장 먼저 붙든 언어는 최고 권력자를 향한 충성의 말이다.

김용판은 “박근혜 정권을 지키는 수문장”(출마선언문)을 자임했다. 그는 “강한 새누리당의 주춧돌이 되”겠다며 “(서울경찰청장이던) 2012년 12월 박근혜 정권이 탄생했을 때 대구 월배 출신으로서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했는지를 놓고 얼마 전까지 법적 다툼을 벌이던 사람의 말이다.

김석기도 ‘박근혜 지킴이’가 되길 열망했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키는 것이 인생 모든 신념과 열정을 바치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경제활성화 법안, 노동개혁 법안, 테러방지법 등 연내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할 법안들이 아직도 묶여 있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신다”며 “든든한 버팀목”을 자청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박 대통령은 지난 11월10일 “(선거에서)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발언했다)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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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거부는 ‘뚝심’과 ‘의리’】  그들은 자신들의 최대 약점을 최대 강점으로 뒤바꾸는 데도 능란하다. 김용판은 “청문회 선서 거부”란 문구를 펼침막에 새겨 걸거나 명함에 박아 배포하고 있다. 그는 국회 청문회 사상 최초의 선서 거부 증인이 됐다며 “뚝심과 의리”라고 표현했다.

“제가 이런 고난을 자초한 것은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지려는 박근혜 대통령님과 보수 진영 전체의 성공을 위한 간절한 기원이었습니다.” 국회를 무시한 사람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며 선서 거부의 배경에 대통령을 향한 충정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희생·애국 강조하고 하층민·비국민 분리

【희생】   김석기는 “그 누구도 나서기를 주저할 때에도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맡은 바 책무에 온몸을 던졌다”(2012년 탈당 선언문)며 원칙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으로 이미지를 메이킹해왔다. “만약 지금도 (그날과) 같은 상황이 되어 불의와 불법에 맞선다면 나는 법과 원칙으로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앞장설 것임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김석기는 일관되게 ‘용산 사고’라는 표현을 쓴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표준국어대사전)이다. ‘참사’(비참하고 끔찍한 일)나 ‘사건’(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정부가 사고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애국】  김석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가를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단 한 번도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국공항공사 사장 시절 ‘애국심 프로젝트’(국내 주요 공항에 30m 높이의 대형 태극기 18기를 설치)를 가동했다.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에선 “우리나라 국민 중 애국가를 안 부르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며 사상검증식 질문도 했다. 국가와 국민을 앞세우는 그의 말은 “국가와 국민만을 바라보고 걸어오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상찬과도 겹친다. 김석기는 박근혜 정권 수호를 “애국”과 등치시켰다.

【주폭·시폭】   어릴 때부터 무협소설을 즐겨 읽으며 악당을 무찌르고 싶었던() 김용판은 주폭을 악당으로 규정해 처벌했다. 그는 경찰 경력의 맨 꼭대기에 “주폭대첩”을 놓는다. 조폭에 빗대 ‘주폭’이란 용어를 만들고 상표등록까지 했다. 주로 노숙인과 실직자 등 취약계층이 “사회의 암으로” 간주돼 체포·구속됐다. 무전취식하던 잡범들이 ‘거악’으로 지목돼 청소됐다. 그는 ‘시폭’(시위 폭력배)이란 말도 만들어냈다. 김용판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고 출마 사유를 밝혔다.

【법과 원칙】   김석기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대회를 “무법천지”()라고 표현했다. “법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 “강력한 법집행”과 “철저한 의법 조치”로 “배후를 끝까지 추적해 응징”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농민 백남기씨의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2008년 7월 이후 촛불집회 진압 지휘자였던 그는 “대한민국 법질서가 무너지는 최대의 위기 상황”을 일으키며 연인원 58만여 명(책에서 언급한 경찰 추산 인원)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외면했다. 용산 철거민들의 시위는 “준도심테러”(2009년 2월 사퇴회견문)라고 했다. 용산 참사 7주기를 앞둔 유족들과 사회단체들은 “김석기가 가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니라 감옥”이라며 낙선 운동에 들어갔다.

【지역감정·TK 우월주의】  김용판은 “대구 달서구 월배에서 태어나 월배초, 달성중, 경북대사대부고, 영남대를 나온 ‘경상도 싸나이’”(출마선언문)다.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으로 국회 청문회에 섰을 때 그를 ‘TK 진골’이라고 표현한 야당 의원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2015년 3월 출간한 책()에서 “국회의원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9개월 뒤 그의 출마선언문을 보면 불쾌의 이유가 갸웃해진다. “대구·경북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치적 혼란을 바로잡고 경제발전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었던 정치 지도자들은 절대다수가 바로 대구·경북 출신이었습니다. 우리 대구·경북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종북몰이】  보수층 유권자들에게 파고드는 가장 손쉬운 카드를 두 사람도 예외 없이 빼들었다. 김용판은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돌성에 극우 언론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가 지지 방문(12월26일)하기도 했다. 그들과 녹음한 인터넷방송()에서 김용판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말을 함부로 하거나 이 나라의 수립 과정을 부정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나라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함께 (싸워야) 한다”고 했다.

김석기도 촛불집회 주최자와 참여자들을 “이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라거나 “친북 좌파 세력” “민주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이 세력들의 준동에 몸을 던져서 나라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자찬했다.

무능 은폐하는 언어 정치

두 사람은 ‘역경’ 속에서도 뚜렷한 ‘권력 의지’를 보여왔다. 김석기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일본 총영사직(3년 임기)을 임명 8개월 만에 그만뒀다.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낙선했다. 이번에도 김석기는 2013년 10월부터 재직했던 한국공항공사 사장직을 임기(3년) 10개월을 남긴 채 중도 사퇴(12월22일)했다. 그는 퇴임 하루 전날 새누리당 복당 절차를 마쳤고, 퇴임 하루 뒤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김용판은 2013년 5월7일과 5월15일 각각 서울과 대구 달서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시기였다. 2014년 지방선거나 재보선을 염두에 둔 행보란 관측이 돌았으나 본인은 부인했다. 2015년 1월29일 대법원 무죄판결을 앞두고 그는 대구 달서구로 전입 신고(1월12일)했다. 판결 다음날(1월30일)엔 달서구에 달구벌문화연구소를 개소했다. 대구시당에 870명의 신입 당원을 무더기로 입당시켜 세를 불렸다.

두 사람 앞엔 ‘당선보다 어려운 공천’이 있다. 김용판의 당내 경쟁자 윤재옥 현 의원은 경기지방경찰청장 출신이다. 대구 달서경찰서장도 지냈는데 같은 자리를 거친 김용판의 전임 서장이기도 했다. ‘투캅스 매치’란 말도 나온다. 김석기의 상대는 정수성(육군 대장 출신) 현 의원과 정종복(검사 출신) 전 의원이다. 경주는 대통령의 마음을 얻으려는 ‘공안 3인방’의 격전지다.

정치는 언어를 매개로 공적 영역에서 행해지는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한나 아렌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는 다양한 가치를 포괄·조율하는 정치 언어라기보다 유일 진리를 설파하는 종교 언어에 가깝다.

선두가 폭주하면 후미도 속도를 끌어올린다. 대통령의 언어가 꼭짓점에서 뾰족해질수록 그를 올려다보는 정치 신인들의 언어도 송곳처럼 돋는다. 그들의 언어 앞에 척결돼야 할 사회악로서의 하층민과 엄단해야 할 법질서 파괴자로서의 ‘비국민’이 있다. 그들을 표적으로 삼는 정치 언어는 사회적 불만과 시스템 결함을 해결하는 데 무능한 정치인 자신들의 얼굴을 은폐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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