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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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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회고록인가?

이명박 전 대통령 <대통령의 시간> 출간…
남북관계는 아전인수, 4대강 사업은 자화자찬, 자원외교 비판엔 선제공격
등록 2015-02-03 14:49 수정 2020-05-03 04:27

“사실에 근거할 것, 솔직할 것, 후대에 실질적인 참조가 될 것”이란 다짐으로 썼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정치권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을 왜곡한 것, 솔직하지 못한 억지”란 정치권 안팎의 비판을 불렀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 의 내용을 2월2일 출간에 앞서 언론에 공개했다. 이명박 정부에 몸담았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전 대통령이 오타까지 감수했다”고 전했다.

오타만 감수하고, 진실은 감수하지 않았나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우선 문제가 된 부분은 이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다섯 번이나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1월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접촉을 소개한 뒤 북한이 “옥수수 10만 톤, 쌀 40만 톤, 비료 30만 톤, 아스팔트용 피치 1억달러어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극비리에 진행된 외교적 막후 내용을 대통령 퇴임 2년도 안 돼 공개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여러 조건을 내걸긴 했으나, 다섯 번에 걸친 회담 제의를 우리가 뿌리치면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2010년 11월)과 같은 남북 긴장 상황을 미리 관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흘러나온다. 회담이 무산되면서 북한 내부 협상파의 입지를 위축시켰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논의를 위해 2010년 12월 서울에 들어왔으나 자신을 만나지 못하고 갔다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류경 전 부부장은 이후 공개 처형됐다.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이 전 대통령이 남북 비화를 폭로해 (오히려) 현 정부의 남북 대화 노력에 고춧가루를 뿌린 격”이라고 우려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이뤄진 자원외교가 국고 손실을 끼쳤다는 비판에 대해 “자원외교 성과는 10~30년에 걸쳐 나타나는 장기적 사업이다. 퇴임한 지 2년도 안 돼 평가하는 건 우물가에서 승늉 찾는 격”이라고 맞섰다. 3월에 열리는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앞두고 선제적 방어란 정치권의 해석이 뒤따른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해외 자원개발(자원외교)은 앞으로도 5년간 31조원이 들어가는 세금 먹는 하마인데, 이 전 대통령이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악화됐다는 분석이 나오는데도 “4대강 사업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했고, 가뭄·홍수 피해를 막았으며, 4대강 사업으로 녹조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여권에 미묘한 파장을 부른 건 ‘세종시 수정안’에 관한 언급 부분이다. 이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것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국무총리를 2012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 한다고 (친박근혜계가) 의심한 것이 작용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당장 친박계의 한 의원은 “박 대통령이 (정부 부처의 상당 부분을 세종시로 옮기는) 세종시 원안을 주장한 것은 원칙과 소신에 따른 것일 뿐”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도 1월30일 “이 전 대통령의 주장은 오해해서 나온 것이다.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심기 건드는 ‘친이’의 공격?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이재오 의원 등 ‘친이계’의 비판이 날선 상황에서, 친박계를 자극하는 내용의 회고록까지 나와 향후 ‘친박-친이’의 갈등 구도가 깊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밑까지 떨어진 위기감을 방어하려는 ‘친박의 결집’이 이뤄질수록 이에 맞선 ‘친이의 대응’도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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