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는 1월23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까지 떨어진 조사(한국갤럽)가 나오자 “이거 큰일났네”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30%는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 수치다. 한국갤럽 쪽은 “(박 대통령의 견고한 지지층인) 60대 이상에서 국정 지지 긍정률이 처음 50% 초반(53%)으로 떨어지고, 부정률이 40%에 육박(38%)했다”고 밝혔다.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청와대 쇄신 조처가 바로 이어지지 않았고, 연말정산을 둘러싼 여론의 불만이 높아진 결과로 보인다.
청와대가 이날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표한 것도 부정 여론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정치권은 해석한다. 새누리당의 3선 의원은 “지지율이 30%까지 떨어지니까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도 인사 개편이 이뤄지면 새 변화에 대한 기대가 생기지 않느냐”고 했다.
정치권에선 ‘2PM’ 카드가 언제든 실현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2PM’은 이 후보자의 ‘성’과 총리(Prime Minister)의 영문 철자를 합친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가 국무총리 후보자들(안대희·문창극)이 연이어 낙마하면서 주저앉은 정홍원 총리의 ‘유효기간’이 진작 끝났다고 봤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인 정 총리가 정치권 소통에 서툴러 여권 내부에선 ‘정치인 총리’ 기용 요구가 적지 않았다. 이 후보자가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던 이명박 정부에 맞서 원안 고수를 강조하던 당시 박근혜 대표와 정치적 코드를 맞췄던 점도 ‘2PM’에 힘을 실은 배경 중 하나였다. 그때 이 후보자는 충남도지사직을 내놓으면서까지 세종시 원안을 주장했다.
다만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이 완성된 뒤 이 후보자를 총리로 차출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여당 원내대표 임기가 올해 5월까지인 이 후보자를 총리로 급히 부른 것을 두고 “청와대가 다급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여야 모두 전임 총리보다 이 후보자에게 기대가 큰 분위기가 엿보인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도 “이완구 원내대표의 친화력이 박근혜 정권의 소통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원내대표로서 당정 소통을 이끌었기 때문에 국정 파악에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창열 용인대 교수는 “정치인 출신이라 야당과 소통을 기대할 수 있고 추진력이 있는데다 관리를 잘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015년 예산안, 세월호 특별법 협상 등에서 비교적 야당과 원만하게 협의를 했다는 점과 충남지방경찰청장·충남도지사 경력 등을 근거로 평가한 것이다.
“원내대표 때 청와대와 각 세운 적 있나”이 후보자도 총리 지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야당과 소통하고 대통령께 직언하는 총리가 필요하다. 직언하지 못하는 총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는 ‘대독 총리·바지 총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이 후보자의 방문 인사를 받으며 건넨 말엔 뼈가 있다. 문 위원장은 이 후보자에게 “각하라고만 하면 안 된다. 대통령에게 ‘아니요’라고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을 건넸다.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진 직후였던 지난해 12월7일, 이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만난 자리에서 쓴소리 대신 “대통령 각하를 중심으로…”라고 했던 발언을 지목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핵심 당직자는 “세월호 협상 과정에서도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을 넘지 않더라.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걸 이끌어왔는데 총리가 된 뒤에도 대통령 입김에 휘둘리지 않을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중진 의원도 “(대통령에게 직언하겠다는) 이 후보자의 상황 인식은 정확하지만 그 초심이 흔들리지 않고 얼마나 관철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치 전문가 중에도 이 후보자의 ‘직언 다짐’에 의구심을 표하는 의견이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이 후보자가 원내대표를 하면서 청와대와 각을 세우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경우가 있었나? 정치·행정을 아니까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겠으나 적극적으로 쓴소리를 할지에 대해선 지금 평가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책임총리 구현에 당분간 힘을 쏟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노력이 한계에 부딪히면 대통령 의중을 크게 거스르지 않은 채 자신의 정치 이미지를 관리하는 수순을 밟을지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정치권에선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측근 비서관(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교체하지 않고 청와대에 남긴 인사를 ‘나쁜 신호’로 보고 있다. 사실상 대통령이 인적 쇄신의 근본적인 변화를 거부했다는 시각도 있다. 교체를 요구한 핵심 대상을 끝까지 남김으로써 총리 교체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것이다.
윤두현 홍보수석은 김 실장의 유임에 대해 “지금 청와대 조직 개편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아 할 일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교체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지금은 아니란 뜻이다.
이재만·정호성 비서관은 자리를 지켰고, 안봉근 비서관은 제2부속비서관실이 폐지됐으나 향후 청와대 비서관 인사 때 홍보수석실로 자리 이동을 할 예정이다. 국정 개입 논란,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 등에 대해 문책 쇄신을 하라는 여론과 반대로 움직인 인사다.
이철희 소장은 “청와대 인사를 요구한 이유가 이런저런 혼란에 대해 책임을 묻고 새롭게 출발하라는 것인데 그러한 문책이 이번 인사에서 싹 빠졌다”고 지적했다. 최창열 교수도 “김기춘 실장의 교체는 시간문제로 보이지만 아직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한 것 같다. 3인방 문책이 없는 것이 이번 인사의 한계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수도권 의원도 “국민의 기대에 비하면 미흡한 인사다. 대통령이 여전히 직진만 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영남권 의원은 “측근 비서관 일부의 업무를 조정한 것은 그나마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청와대는 정책조정수석비서관에 현정택(66·경북)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미래전략수석에 조신(58·전남)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를 내정했다. 국정 개입 문건 유출 파문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휘 아래 청와대 내부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공석이던 민정수석 자리로 승진했다. 청와대는 신설된 민정특보에 이명재(72·경북) 전 검찰총장, 안보특보는 임종인(59·서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홍보특보는 신성호 전 중앙일보(59·서울) 논설위원, 사회문화특보는 김성우(56·경북) SBS 기획본부장을 내정했다. 특보가 대거 늘어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이렇게 특보를 5~6명 두는 건 비정상적이다. 정무특보까지 (친박근혜 인사 등) 비중 있는 사람이 오게 되면 우리나라 정부가 ‘청와대 정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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