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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동성애 지지할 수 없다” 입장 밝히자 차별반대 지지 시민들 등 돌려…

문제는 혐오세력 아닌 그들에 휘둘리는 정치세력
등록 2014-12-10 15:31 수정 2020-05-03 04:27

“저는 늘 핍박받는 사람들, 늘 외로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돕고 배려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고통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는 입장은 동의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 11월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성소수자 인권 지지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최근에 모 일간지에 실린 성소수자 혐오 광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그로부터 4년, 강산이 변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변했다. 2014년 12월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들 앞에서 “(서울시민인권헌장과 관련해) 갈등이 야기되어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은 전했다. 이어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혔다”고 한다. 이날의 정확한 표현은 “시민사회단체가 역할에 따라 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서울시장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였다고 서울시는 에 확인해줬다.

‘동성애 지지 여부’ 묻는 것 아닌데도

지난 12월3일 서울시청 앞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 금지를 명시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할 것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12월3일 서울시청 앞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 금지를 명시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할 것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에 대해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할 뿐이다. ‘동성애를 지지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박 시장은 스스로 ‘동성애 지지/합법화’라는 반대세력이 만든 프레임에 포획당했다. 12월1일 당시는 그가 설립한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가 “시민위원회가 제정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서울시가 선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었다. 성소수자 단체 등의 면담 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던 그가 유일하게 응답한 곳은 ‘목사님들’ 앞이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목사들의 호출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보이면, 의원실은 빗발치는 항의전화에 시달린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 한 국회 보좌관은 “다짜고짜 ‘의원이 게이냐?’고 묻는다”고 전했다.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즈음, 거리에는 수십 명이 나와 ‘동성애 합법화’ 반대 시위를 벌인다. 여기까지가 앞으로 드러나는 양상이다. 이것만으로 정치인들이 발의한 법안을 스스로 철회하는 수모를 자초하지는 않는다. 뒤에서 부르는 호출이 더 무섭다. 대형 교회를 포함한 지역구 목사들이 의원을 부른다. 다시 보좌관이 전한다. “만약 10시부터 면담을 하면 50분은 설명을 ‘알아들었다’고 해요. 면담 10분을 남기고 ‘○의원 그래도 하지 마. 민주당이 그런 거 아는데 당신은 아니잖아. 우리가 아끼니까 하는 말인데 당신은 그러지 마’ 하는 거죠.” 그렇게 정당과 의원을 ‘갈라 치면서’ 무서운 통고를 하고 나간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절차가 끝나자마자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간담회’에 박원순 시장을 불렀다.

오래된 전제가 있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 찬성이 ‘표 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 박원순의 결정을 이해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상된 공포에 가깝다. 이런 전제는 표로 검증된 적이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다. 박원순 시장의 공약에도 포함됐고, 서울시 조례에 의해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은 해야만 하는 일이다. 2007년 법무부안, 2013년 김한길 의원안 등 차별금지법은 철회되거나 유보되었다. 이렇게 민주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어지는 정치세력이 만든 무대에 성소수자는 끌려나와 하염없는 수모를 당했다. 지난 11월20일 서울시 강당에서 열린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에서 300여 명 반동성애 세력에 둘러싸여 10여 명의 성소수자들이 당한 것은 명백한 혐오폭력이었다. 몽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는 “그날만 생각하면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뛴다”고 말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였지만, 서울시는 시민위원회의 경호 요청에 “경찰이 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사과도 하지 않았다.

“가장 나쁜 것은 왔다갔다 하는 것”

여론조사 전문가인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에서 가장 나쁜 것은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설사 반대가 다수라 하더라도, 대중을 설득하면서 길을 만드는 것도 정치의 일부다. 예컨대 공청회에서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박원순 시장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것은 동성애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에 대한 차별도 금지하는 문제’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프레임을 동성애와 반동성애가 아니라 인권과 반인권의 문제로 바꿔야 했다. 합의만 요구하면 강정, 밀양, 쌍용차 같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뿐 아니라 새정치연합은 이렇게 정치인으로서 책임지는 담대함이 없다.” 실제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변한 여론 지형으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꼽힌다. 긍정적 반응이 확산됐단 것이다. 또 동성애 인정 여부는 대표적인 세대 이슈인데, 박원순 시장을 폭넓게 지지하는 젊은 층에서 호감도가 높다.

오히려 이중의 공포를 극복한 이들은 인권변호사 출신이자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순 시장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시민 제정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배경내 인권연구센터 ‘들’ 상임활동가는 12월2일 토론회에서 이렇게 전했다. “사실 당일 시청 바깥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일삼는 시위대 때문에 시민위원들은 두려움에 떨며 입장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신앙과의 갈등을 고백하면서도 흔쾌히 성적 소수자를 포함한 각종 차별의 양상을 열거한 문항 쪽에 표를 던졌다. …서울시는 몇 번에 걸쳐 오늘 표결을 강행할 경우 서울시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사실상의 겁박이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무력화시키지 않기 위해 표결을 택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성경을 옆에 두고 현재의 상황을 걱정하는 시민위원도 있었다. 시민위원회는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를 포함한 인권헌장을 찬성 60명, 반대 17명으로 가결했다.

헌장 포기하면 박 시장 찍을까?

이렇게 시민위원회의 압도적 가결로 헌장이 통과됐지만, 서울시는 ‘합의’가 아니라 헌장을 선포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인권을 공격하는 세력과 합의하라니, 일본이라면 재일한국인이 자신을 혐오하는 재특회와 합의를 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류민희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도 “세계인권선언도 48개국이 찬성하고 8개국이 기권했다”며 “만장일치로 될 일이라면 인권헌장이 왜 필요한가”라고 물었다. 개신교 단체인 ‘혁명기도원’이 성명서 ‘소위 동성애 반대에 대하여’에서 인용한 성경 요한1서 4장 18절은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반대하는 ‘기독교인’에 대한 비판이지만, 시민에 대한 믿음을 잃은 시장에게 건네는 말로도 들린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지난 12월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 관계자 등이 제정 과정에서 빚어진 서울시의 행태를 비판하는 토론회를 열었다(왼쪽).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거 포스터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정용일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본부 제공

지난 12월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 관계자 등이 제정 과정에서 빚어진 서울시의 행태를 비판하는 토론회를 열었다(왼쪽).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거 포스터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정용일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본부 제공

구조의 문제가 됐다. 진보를 자칭하는 새정치연합, 민주당의 차별 금지 관련 법안과 헌장의 철회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법안을 발의하고 일부 개신교의 압력에 굴복하는 방식은 구조화됐다. 일부 개신교 세력의 극렬한 반대가 ‘상수’가 된 지금에 오히려 변수는 야당의 태도다. 박원순 시장의 선택은 정치공학적으로도 좋은 선택이 아니란 지적이 있다. 이송희일 영화감독은 “미안하지만, 동성애 혐오 세력은 박원순 시장을 찍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차피 중산층이 당신을 지지했던 건 일련의 참신한 제스처들(때문)이었고, 이번 행보로 구태 정치인의 반열에 올라섬으로써 스스로를 망치고 있다. 역사에서 배운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우리가 열심히 싸웠더니 박원순이란 마귀를 물리치는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될 뿐이다”(트위터 아이디 시스루) 같은 지적도 나온다. 실망은 지지 철회로 이어진다. “나는 레즈비언인 서울시민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박원순을 뽑았다. 인권헌장 공포 여부를 지켜볼 것이다. 유권자인 나에게 중요한 건 이것뿐이다.”(렐로) 박원순 시장은 자신을 지지한 이들의 인권을 외면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세력의 압력에 굴복해버렸다.

개신교 신자들 대부분이 시위를 통해 과대표된 반대세력에 동조한다는 증거도 없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교회에서 비상식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들이 극렬하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해 망설이던 교인들도 심사숙고한다”고 전했다. 임보라 섬돌함린교회 목사도 “성소수자 차별 반대에 적극 나서지 않던 교인과 교회도 이제는 일이 있으면 성명서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대형 교회 목사들의 카리스마가 몰락한 시대, 설교를 무조건 따르기보다 다양한 견해를 스스로 찾는 개신교 신자가 늘었다. 엄기호 문화인류학자는 “한국에서 개신교는 강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결정적 장벽이 될 정도로 반개신교 정서도 강하다”며 “영리한 정치인이라면 ‘불가근불가원’ 해야 하는데 저렇게 달려가는 것을 보면 판단력이 떨어져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 간담회에서 나온 박원순 시장의 발언은 위험하단 것이다.

그처럼 모두가 압력에 무조건 굴복한 것은 아니다. 성북구는 지난해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성북주민인권선언을 선포했다. 이날 선포식이 열린 성북구청은 “구청장 끌고 나오라고 해!”라는 요구로 아수라장이 됐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한동안 선포식 입장도 하지 못했다. “성북구는 성소수자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주민인권선언 14조 때문이었다. 서울시민인권헌장처럼 시민이 참여해 제정한 성북주민인권선언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 등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가 원안에서 빠졌지만, 선포가 무산되지는 않았다. 2011년 12월 성적 지향 등에 대한 차별 금지가 명시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상당수 민주당 서울시 의원들이 개신교의 반발에 흔들렸다. 그러나 찬성이 ‘당론에 준하는 의견’이라는 소식이 본회의 표결 당일에 전해지면서 극적으로 학생인권조례는 통과됐다. 이처럼 정당이면 반복되는 인권 의제에 당론이 필요하다. 당론의 당위마저 없으면 개별 의원은 압력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여당과 맞선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성소수자 의제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청소년 인권이나 해고자 복직 같은 문제도 그렇다. 공현 청소년인권활동가는 “새정치연합(민주당)은 차별금지법, 학생인권 등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지만 전혀 적극적이지 않고 때론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인권 의제를 자신들이 해결할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도 칼럼과 트위터를 통해 “노동과 인권을 전시행정의 도구로 삼고 고통을 재료로 삼는, 박원순 시장을 둘러싼 민주당 계열”을 비판했다. 이렇게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서 벌어지는 행태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게 남의 사정이 아니다. 그러나 진영 논리가 눈을 가리고 현실을 감춘다. 새정치연합이 인권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새누리당과 맞서는데”라는 논리가 비판을 가로막는다.

문제는 이것이 시작이란 점이다. 개신교 일부의 ‘십자가 밟기’ 강요는 계속될 것이다. 일제강점기 기독교인들에게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라는 강요가 있었듯, ‘성소수자 초상화 밟기’는 정해진 수순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시민 박원순과 시장 박원순의 분열은 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문제는 혐오세력이 아니라 혐오세력에 휘둘리는 정치세력이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는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서울시의 입장과 상관없이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하기로 했다. 이미 제정된 헌장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인권장 50개조가 선언하는 인권의 주체는 성소수자만이 아니다. 지금 멈춰선 것은 보편적 인권이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가 왜 절실한지 역으로 증명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침묵은 죽음이다. 한가람 변호사는 “지금 숨죽여 사태를 지켜볼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리에 서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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