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국굴기’(대국으로서 우뚝 선다)를 넘어선 ‘아태(亞太)굴기’의 신호탄일까, 아니면 한반도의 중국 대륙 진출 선제공격일까.
11월10일 아침 중국 베이징에서 전해진 소식은 이런 고민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오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전격적으로 발표된 한-중 FTA 타결 소식에 두 나라 모두 실익을 계산하는 데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에만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모두 2289억달러로 우리나라의 수출·수입에서 중국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한 1위가 아닌 부동의 1위라는 점은 중국의 수출·수입 점유율이 각각 24.9%, 16.6%라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내수시장에서 한-중 FTA가 가져올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흐릿해진 ‘이익 추구’라는 목적정부는 한-중 FTA가 ‘실질적 타결’이 됐다는 점은 “앞으로 추가 협상 등 남은 쟁점 사항이 없이 완료됐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말까지 FTA와 관련한 문안 작성, 법률적 검토 등을 한 뒤 가서명 절차를 마치고, 정식 서명과 국회 비준 동의 등을 거쳐 내년 발효를 목표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FTA 타결 과정이 전격적이지만은 않다는 설명도 내놨다. 2012년 5월 중국과 공식적인 협상을 시작해 2년6개월 만에 타결에 다다른 한-중 FTA는 한-미(10개월), 한-유럽연합(EU, 2년2개월) FTA의 공식 협상 기간보다 길었다. 모두 14차례 실무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는데, 핵심 쟁점인 상품 분야에 대한 이견 조율이 안 돼 실무협상이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끝까지 난항을 겪은 부분으로는 우리가 요구하는 중국의 공산품 관세 조기 철폐와 중국이 주장하는 한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이 좀처럼 타협점을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진통 끝에 나온 협상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맺은 FTA 가운데 가장 큰 경제주체였던 미국·EU와의 FTA와 비교해볼 때, 한-중 FTA의 양허(관세 철폐) 내용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서로 양보를 통해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게 목적인 FTA에서 두 나라가 민감해하는 품목을 대부분 제외하면서, ‘이익 추구’라는 목적이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 내용을 보면, 한-중 FTA를 통해 20년 이내에 1만2천여 개 품목 가운데 90% 이상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한다. 우리나라는 10%에 가까운 양허 제외 품목 안에 쌀을 비롯한 사과·배·포도·마늘·양파 등 농·축·수산물을 포함시켰다. 그 밖에 자동차 분야도 양국 모두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하는 초민감 품목으로 분류해 빠졌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1월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중 FTA의) 개방도가 외형적으로는 한-EU FTA보다는 낮지만 (실질적으로는)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거대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일본과 대만 등이 상당히 긴장할 사안이다”라고 설명했다.
초민감 품목 관세 철폐는 초난감이처럼 한-중 FTA의 결과물을 두고 벌어진 설왕설래는 공식 발효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현재 일고 있는 한-중 FTA와 관련한 주요 논란들을 모아 문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정부의 공식 발표 내용과 통상 분야 전문가의 의견 등을 모아 살펴본 이른바 ‘한-중 FTA 예상도’다. 전문가들은 모두 앞으로 남은 험난한 과정 속에서 제대로 된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입을 모았다.
-정말 국내 농수산업계에 큰 타격이 없나?=정부의 공식 발표 자료를 보면, 전체 농산물(1611개) 가운데 양허 제외 등에 해당하는 초민감 품목(581개)과 10~20년 안에 관세를 철폐하는 민감 품목(441개), 그리고 10년 안에 관세를 철폐하는 일반품목(589개) 등으로 나눠 합의를 했다. 이 가운데 쌀은 아예 관세와 관련된 협정에서 모든 의무 적용을 배제했고 우유·달걀과 사과·배·포도·감귤·복숭아 등 국내 주요 생산품도 모두 협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수산물의 경우에도 중국에서 들여오는 낙지·조기·갈치 등을 초민감 품목에 둬 역대 최저 수준의 농수산물 개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FTA에서 농·축·수산물의 개방을 단순히 품목별로 해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농·축·수산업의 규모로 따져볼 때, 우리나라와 중국 시장의 경쟁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FTA를 통해 양허 대상이 된 농·축·수산물 항목들은 시장에서 국내산과 중국산의 차이가 3~5배 가까이 나는 경우가 많아, 관세가 인하될 경우 결국 저가형 상품을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김치·혼합조미료, 기타 소스 등의 관세가 20% 수준에서 10%로 부분 감축돼 국내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밖에 중국산 식자재 가공식품도 관세 인하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3위까지 올라선 중국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의 성장을 두고 ‘샤오미 쇼크’라고 부를 정도로 중국산 정보기술(IT) 제품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그만큼 중국의 전자제품이 과거와 달리 상품성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발 전자제품의 국내 진출은 한-중 FTA의 흐름과는 큰 상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이 1996년 맺은 정보기술협정(ITA)으로 이미 컴퓨터·반도체 등 IT 제품에 대한 무관세 교역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디스플레이 품목의 경우, 5% 관세를 10년 안에 폐지하기로 했으나, 삼성·LG 등 국내 주력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이미 중국에 현지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은 FTA와 큰 관련 없을 듯IT 제품군보다 영향이 클 것으로 보였던 서비스 분야에서도 개방 수준이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히려 그동안 국내 업체가 중국에 진출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던 지적재산권 보호와 전자상거래, 그리고 투자보장제도,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도입 등 FTA를 통해 많은 보장을 받은 점은 국내 기업의 진출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게 된 것도 중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차이나머니’, 국내로 밀려들어올 것이다?=한-중 FTA는 단순히 제품의 관세장벽을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투자 보호 조항을 만들어 투자의 문턱도 낮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IIP)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중국 직접투자(FDI) 규모는 550억달러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중국의 우리나라 투자액은 21억달러에 그친다. 중국의 투자 규모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11월10일 내놓은 ‘현 시기 통상 현안과 민주적 통상 거버넌스’라는 글에서 “우리의 대중 증권투자가 2010년 103억달러에서 2013년 78억달러로 감소한 반면, 중국의 대한 증권투자는 같은 기간 85억달러에서 206억달러로 급증해 우리의 3배 수준이다. 한국의 대중 투자가 중국 경제의 선순환을 지지하는 그린필드형이 압도적이라면, 중국의 그것은 주식시장에 집중돼 있다. 상대적으로 단기차익을 노린 ‘먹튀’ 가능성이 높고, 휘발성도 강하다”고 지적했다.
한-중 FTA 자체가 서비스 분야의 개방 수준이 높지 않아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환위기(IMF) 이후 국내 자본시장은 이미 개방됐기 때문에 FTA와의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본다. 만약 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높은 수준으로 했다면, 한-미 FTA처럼 (자본이) 들어올 텐데, 한-중 FTA는 중간 수준의 개방이라 우리나라의 개방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동시다발 FTA, ‘스파게티볼’ 효과를 부른다?=전문가들은 한-중 FTA가 아시아 등에서 주변국들의 FTA 경쟁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추진에서 우리나라가 맺은 FTA가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른바 ‘광역 FTA’의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윤상직 장관도 “중국이 주도하는 FTAAP 구축 흐름 속에서 한-중 양국이 지역 경제 통합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됐다. 미국과 EU에 이어 중국과의 FTA로 이들 3대 경제권의 연결고리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원산지 기준 논란은 뜨거운 감자그러나 현재까지 47개국과 맺은 FTA마다 원산지 조항이나 세부 기준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수출기업들의 비용이 늘어나는 ‘스파게티볼 효과’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게다가 한-중 FTA 과정에서 한국산 원자재가 얼마나 포함돼야 완성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지를 정하는 원산지 기준 문제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원산지 기준 문제는 공식 협상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쟁점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국가에서 수입한 원재료로 가공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실질적인 수입 장벽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구체적으로 제품마다 원산지 기준을 정하는 품목별 원산지결정기준(PSR) 협상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여전히 논란거리가 남아 있는 상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국제통상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 FTA 당시 크게 부각했던 관세 즉시 철폐 대상 상품이 한-중 FTA의 경우, 한국은 전체의 50%이고 중국은 20%인 사실을 아예 발표조차 안 했다. 통상 관료들의 정보의 차단과 왜곡으로 합리적인 여론 형성이 불가능한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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