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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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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화장실 갔다온 사람’ 마음?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복지 공약 ‘누리과정’ 예산 0원으로 책정하고

지자체로 떠넘기기, ‘무상급식 논란’으로 일파만파
등록 2014-11-11 17:48 수정 2020-05-03 04:27
11월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5년 예산안 심사 방안 기자간담회’에서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왼쪽 네 번째)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1월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5년 예산안 심사 방안 기자간담회’에서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왼쪽 네 번째)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15년 정부 예산안을 두고 여야 간 예산 심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 규모는 약 376조원으로 2014년 본예산 대비 5.7% 증가한 수치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보건·복지·고용 예산이 8.5%, 안전 분야 예산이 17.9% 늘어나 그 어느 때보다 국민 복지와 안전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예산안에 배어 있다”며 정부안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등 야당은 핵심이 빠진 복지 예산과 마구잡이식으로 끼워넣은 안전 예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폭적인 예산안 수정 방침을 예고했다.

홍준표 지사 “국고가 바닥인데 무상 파티 하냐”

특히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복지 공약인 누리과정(3~5살 공통교육과정) 예산과 고교 무상교육 지원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을 두고 여야 간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교육부는 누리과정과 고교 무상교육을 위한 2015년 예산으로 각각 4510억원과 2102억원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반영한 예산액은 두 분야 모두 0원이다. 누리과정의 경우 정부는 ‘시·도교육청이 자체적 예산으로 편성할 것’을 주문하고 있고, 고교 무상교육의 경우 ‘내년 담뱃값 인상 등으로 여력이 생기면 시행하겠다’며 시행 자체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1월7일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복지는 시대의 정신, 되돌릴 수 없는 사회적 합의다. 정부의 누리과정 예산 지방 떠넘기기는 공약 포기이며 약속 위반”이라고 성토했다.

정부의 ‘누리과정 예산 지방자치단체 떠넘기기’는 엉뚱하게도 무상급식 논란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자체가 무상급식을 포기하면 누리과정 예산을 마련할 수 있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소속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11월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제는 살림이 괜찮은 사람들한테도 급식을 무상으로 주느냐, 부자들한테도 주느냐는 것이다. 무상급식 없어도 가난한 애들이 점심 굶지 않는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무상복지 정책 전반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국고가 거덜나고 있는데 ‘무상 파티’만 하고 있을 것이냐”며 사실상 무상급식 폐기론을 들고나왔다. 최경환 기재부 장관과 황우여 교육부 장관도 10월15일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누리과정 예산 편성 불가 방침을 밝히며 전면 무상급식 폐기를 대안으로 제시해 논란에 불을 댕겼다.

그러나 누리과정은 지자체가 내놓은 정책이 아닌 중앙정부가 직접 내놓은 정책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100% 지자체에만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각급 시·도교육청은 누리과정에 대한 자체 예산 편성을 거부하며 정부의 예산 지원을 요구해왔다. 보육 예산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갈등이 극에 달하며 ‘보육 대란’이라는 위기 상황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11월5일 일부 시·도교육청은 교육부가 ‘일단 교육청이 내년도 3~6개월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면 나머지 예산은 정부가 추경예산 등을 통해 국고로 지원하거나 지방채 발행 한도를 늘려주겠다’고 제안한 데에 합의했다. 이로써 ‘보육 대란’이라는 급한 불은 꺼졌지만 여전히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 예산은 0원으로 근본적 처방이 아니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영어 교육 예산’이 안전 예산?

이 밖에도 야당은 ‘정부가 복지 예산은 삭감하면서 낭비성·특혜성 예산에 국고를 낭비한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기재부가 55억원의 신규 예산을 편성한 ‘글로벌 창조지식 경제단지 조성사업’ 예산을 대표적 낭비성 예산으로 규정하고 전액 삭감하겠다는 계획이다. 새정치연합은 “창조경제 사업은 대통령 관심 사업이라는 이유로 과다 편성된 사업으로 타당성이 결여됐다. 글로벌 창조지식 경제단지 조성사업의 경우 당초 부처안에도 없었던 사업으로 기본계획조차 수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현재 사업 기본 방향 도출 및 관계기관 협의를 완료한 상태로 2015년 중 기본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창조경제 예산은 첨단기술 산업으로 산업구조의 체질을 바꿔 우리 국민이 가진 무한한 창의성과 잠재력을 발굴해 성장 엔진으로 삼기 위한 예산”이라며 방어막을 펼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안전’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안전과 관련이 없는 항목을 안전 예산에 끼워넣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은 11월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새정치연합은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 대해 무책임 예산, 무대책 예산이라고 평가한다. 명칭만 번지르르한 예산이 많은데 특히 영어 교육 예산이 안전 예산으로 (분류된) 것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이 지적한 예산은 국토교통부의 예산으로 정부가 ‘안전 예산’으로 분류한 항목이다. 이 예산은 ‘항공안전 교육훈련’이라고 돼 있지만 실상은 항공영어 강사 인건비, 항공영어 강사 퇴직금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인 예산감시네트워크도 “사업의 목적은 항공안전 업무수행 능력 향상과 국제적 자격 기준에 부합하는 교육훈련 및 훈련체계 확립에 있지만, 실상 내용은 항공영어 교육비다. 업무 수행에 영어 활용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지만 개인 역량이 우월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항공 분야에서 영어 교육을 추가 지원하는 것이 과연 안전과 직결되는 핵심 사업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예산감시네트워크는 이 밖에 유엔 방재연수원 및 유엔 재해경감 국제전략사무국(UN ISDR) 동북아사무소 분담금과 공단폐수처리시설 지원, 뇌과학 원천기술 개발지원 예산 등을 ‘황당한 안전 예산’ 항목으로 꼽기도 했다.

2014년 대비 153억원이 늘어난 ‘특수활동비’ 예산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수활동비는 국가정보원과 청와대, 국방부, 법무부 등 권력기관이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돈이라는 점에서 ‘검은 예산’으로도 불린다. 새정치연합은 “권력기관의 불법 정치활동에 특수활동비가 악용된 사례는 부지기수임에도 내년도 ‘특수활동비’는 국정원(4802억원), 국방부(1794억원), 경찰청(1264억원), 법무부(279억원), 대통령실 및 경호실(268억원) 등 총 8820억원으로 전년 대비 153억원이나 증액됐다. 정부의 자료 제출 거부로 사용처를 확인할 수 없는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 증액은 문제가 있다. 특히 유병언 및 세월호 수사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경찰과 공 다툼을 하면서 부실한 수사로 일관한 검찰(법무부)의 특수활동비는 삭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정의당 “사회복지세 도입하라”

정의당도 2015년 정부 예산안을 △복지중단 선언 예산 △사회간접자본(SOC)·토건 부활 예산 △지방재정 파탄 예산으로 규정하고, 지속 가능한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 ‘사회복지세’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예결위원인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2015년 정부 예산안에서) 불필요한 사업, 구체적인 사업계획조차 마련되지 못한 사업, 예산이 부풀려진 사업이 다수 발견됐다. 정의당은 빚이 아닌 월급봉투를 늘리는 예산, 땜빵이 아닌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 그리고 든든한 지방재정과 튼튼한 지방경제 예산 확충을 이번 예산 심사 목표로 설정해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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