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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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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면 안 보이는 것들

면책·불체포 특권 내려놓기 약속에 이어 출판기념회도 전면 금지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혁신’… “정치 혁신의 본질을 이데올로기 형태로 몰고 가”
등록 2014-10-22 14:36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0월6일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특위 3차 회의에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지난 10월6일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특위 3차 회의에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가 최근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전면 금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가 그동안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으는 데 이용돼온 만큼 이런 관행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취지다. 새누리당이 정치 혁신의 방안으로 이런 결정을 내놓자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는 ‘혁신 경쟁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표출되고 있다. 정치 불신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앞다퉈 혁신 경쟁을 벌이는 모습 자체만 놓고 보면 별다른 문제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이들이 벌이는 혁신 경쟁의 방향은 올바른 걸까. 이들이 제안하는 방향으로만 가면 더 좋은 정치가 실현되는 것인가.

‘오세훈법’이 양산한 출판기념회

일단 ‘출판기념회 금지’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는 일종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방안이다. 그동안 의원들은 출판기념회를 열어 책값보다 훨씬 더 비싼 금액으로 일종의 ‘축의금’을 받아왔다. 이름이 알려진 실세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액수의 돈을 냈다. 출판기념회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의원들은 이 행사를 통해 현금을 쓸어담을 수 있었고 이는 음성적인 정치자금으로 활용돼왔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출판기념회 금지’다. 그런데 이 출판기념회만 없애면 정치권의 음성적 돈거래가 근절될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이런 비정상적인 출판기념회는 정치를 깨끗하게 하겠다면서 만든 이른바 ‘오세훈법’에 의해 양산됐다. 2004년에 만들어진 정치자금법 개정안(오세훈법)은 의원 개인이 1년간 모을 수 있는 후원금액을 1억5천만원(전국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으로 제한하고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했다. 그러다보니 사무실 운영이나 행사 개최 등 들어갈 돈은 많은데 쓸 돈은 없는 의원들이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열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깨끗한 정치를 만들겠다고 내놓은 방안이 오히려 음성적인 돈거래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풍선 효과다.

합법적이고 깨끗한 방식으로 충분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게 해주는 대안 없이 무조건 출판기념회만 금지하는 방안은 정치인들이 또 다른 ‘편법성 정치자금 모으기’로 옮겨가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출판기념회를 제재하는 것은 맞다고 본다. 그런데 왜 출판기념회가 이용되고 있느냐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다른 모금 행사를 못하게 막아놓으니 출판기념회로 물꼬를 튼 것이다. 출판기념회만 금지한 채 실질적으로 정치인들이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열어주지 않으면 야당이나 돈 없는 사람이 손해 보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판기념회 금지 조처뿐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앞다퉈 내놓는 여러 가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방안은 정치 혁신의 본질을 가려버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동안 여야에서 나온 특권 내려놓기 방안은 오세훈법을 비롯해 세비 삭감, 의원 연금 폐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내려놓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정치 혁신은 과연 국민의 ‘정치 때리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 외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까.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치 혁신의 본질을 ‘도둑놈 때려잡기’로 치환하면서 실질적인 정치 혁신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이전에 청목회 사건을 봐도 청원경찰들의 요구가 로비 형태로 나타난 것인데 돈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것을 때려잡으면서 정작 우리 사회의 강자들이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수조원대를 가져가는 것은 합당화된다. 정치 개혁이라는 것을 반부패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형태로 몰고 가면서 정치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문제도 있고 정치 혁신의 방향을 엉뚱한 쪽으로 돌리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부자가 아닌 자는 정치하지 말라?

청목회 사건이란 2010년 전국 청원경찰 친목협의회(청목회)에서 급여 인상과 정년 보장을 요구하며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개인당 10만원씩 돈을 모아 5천만원을 후원한 사건이다. 이는 단체가 정치자금을 후원하지 못하도록 한 ‘오세훈법’을 적용받아 검찰에 의해 ‘뇌물죄’로 판단됐다. 김부겸 당시 민주당 의원은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부자가 아닌 자가 감히 남의 돈 받아가며 정치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이들이 로비를 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그게 바로 대의민주주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입법 로비 자체는 잘못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박봉과 불안한 지위에 시달리는 청원경찰들이 정치권에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 매우 정상적인 일이라는 점은 간과됐다는 의미다.

재벌과 관료들의 부당한 행태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내려놓기 방안은 더욱 문제가 크다. 여야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등을 내려놓겠다고 경쟁적으로 약속했다. 지난해 민주통합당 정치혁신실행위원회가 시민 500명을 상대로 한 설문 결과에서는 ‘먼저 떠오르는 국회의원 특권’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면책특권(42.8%), 연금(26.2%), 불체포특권(26%), 고액 연봉(7.4%)이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의 ‘정치 혁신 방안에는 국회의원이 가진 특권을 없애는 방식으로 정책이 진행될 경우 심각한 ‘의회 자율성의 침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국민이 원하니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식의 발상이 ‘책임성 없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45조에서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면책특권 규정을 두고 있다. 이 면책특권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2005년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 떡값을 받은 검사 7명의 명단을 폭로한 행위는 벌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노 전 의원은 국회에서 이를 공개했기에 면책특권이 적용돼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의원직을 잃었다. 이 이중적인 판결은 국회의원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정과 비리를 고발할 수 있는 통로를 제약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면책특권이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의회의 특권이 정부나 외부 세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의원들이 면책특권을 이용해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를 일삼거나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제 식구 감싸기’ 식의 방탄국회를 만드는 행위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를 과도하게 제재하려다보면 결국 정치의 약화를 불러일으켜 정부 관료와 재벌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민주주의 의회와 함께 태동했는데 이것을 제약하자는 데까지 논의가 된 것은 정치인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렇지만 대기업과 관료들의 부당한 행태에는 국민이 거의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눈에 쉽게 보이는 정치권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만 제도적으로 제약해나가는 것은 둘 사이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오히려 대기업이나 관료들의 문제 혹은 사회의 여러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의회가 지금보다 더 쉽게 접근하고 통제와 관리를 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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