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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느껴지는 정책을”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한 두 ‘스타’ 인터뷰… 우석훈 “집권 이후 청사진을 내놓아 이기는 기억 만들어야”,

이범 “영어 사교육 문제와 고등학교 체제 개선에 기량 발휘하고 싶다”
등록 2014-10-14 15:40 수정 2020-05-03 04:27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정치권에서 출마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지금 바로 진행할 수 있는 정책의 성과를 통해 새정치연합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하려 한다. 큰 전쟁에서 이기려면 (작은) 전투에서 이겨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정치권에서 출마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지금 바로 진행할 수 있는 정책의 성과를 통해 새정치연합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하려 한다. 큰 전쟁에서 이기려면 (작은) 전투에서 이겨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그들은 왜 ‘기둥이 흔들리는 위태로운 집’(새정치민주연합)으로 들어갔을까?

의 저자로 잘 알려진 우석훈은 청년세대·여성·생태·재벌정책·경제민주화 문제 등과 관련해 진보적 해법을 모색해온 경제학 박사다. 사교육계의 유명강사였던 이범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정책보좌관 등을 지냈으며 사교육 폐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해온 교육평론가다. 저술과 강연 활동을 활발히 해온 두 사람의 전문 분야는 새정치연합의 취약지대이기도 하다. 새정치연합 정책연구소 민주정책연구원(원장 민병두)은 10월5일 진보 진영의 저명인사인 이들을 상근 부원장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의 영입과 함께, 연구원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한 정책·전략을 세우는 ‘2017 위원회’도 가동하기로 했다.

진짜 원인은 패배감의 체질화와 무기력감

민주정책연구원은 정세 분석과 시민의 피부에 닿는 정책 생산 기능이 모두 미흡해, 제1야당이 주요 선거와 시대적 의제 설정에서 여권에 밀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지목받던 곳이다. “이 당의 어려운 상황과 지리멸렬함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어” 연구원에 합류했다는 이범과 우석훈은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구체적인 정책을 기동력 있게 내놓는 정당”이 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연구원에 신임 부원장실을 새로 만드는 공사 소음을 피해, 먼저 우 박사와 커피 가게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이제 진짜 이기는 싸움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기는 싸움?

=2012년 대선 때 (나도 참여한) 문재인 후보 캠프의 정책들이 허겁지겁 만들어졌다. 부랴부랴 (정책의) 껍데기를 만들어 막 던졌다. 다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대선까지 준비 시간이 있다. 이제 이곳(민주정책연구원)에 정책을 연구할 사람을 더 모으고, 시민들도 정책을 직접 제안하는 등 서로 충분히 토론하면서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정책을 발굴할 것이다. 그리고 누가 후보가 되든 그것을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계파와 상관없이 도울 것이다.

-그런데 당의 상황이 좋지 않다. 왜 상시적인 위기에 빠졌을까.

=흔히 말하는 계파주의가 위기의 본질은 아닌 것 같다. 계파가 없는 정치를 상상하긴 어렵다. 계파는 정당 다양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다만) 계파들이 서로 민주적으로 의견을 모아가는 게 필요하다. 위기의 진짜 원인은 패배감의 체질화와 무기력감이다. 상대를 이긴 기억이 까마득하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 것을 다 끄집어내고, 집권이라는 더 큰 것을 취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길 것 같지 않으니 작은 것들, 예를 들어 당권·공천권·계파기득권이 굉장히 중요해진 것이다. 의원 한명 한명을 만나면 열의가 있는데, (그 역량들이) 잘 연결되지 않고 있다. 민주정책연구원도 선거에서 이기는 고민을 해왔지, 집권 이후 어떤 청사진을 내놓을지, (그걸) 어떤 사람들이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얘들이) 정권을 잡아봐야 별 볼일 없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뜨거운 쟁점이던 무상급식 공약 이후 야권이 의제(대표 정책)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야권의 경제민주화·복지 이슈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가져가 더 잘 활용했다는 평가도 많다.

=결국 디테일(세부 내용)에서 졌다. 경제민주화 등 큰 구호만 있었지 빼곡한 프로그램을 채우지 못했다. 껍데기만 있으면 쉽게 뺏긴다. ‘구호’만 있으면 가져가면 되지만, 구호를 실행할 프로그램이 세부적으로 있으면 가져가지 못한다. ‘의료공공성 강화’라고 말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저게 좋은 건지, 먹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의료보험이 보장하는 입원 기간을 더 늘리자’처럼 얘기해야 한다. 나쁜 정책은 방향만 제시하는 구호이지만 좋은 정책은 ‘그걸 필요로 하는 대상자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정책은 생활형으로 가야 한다.

-연구원에서 뭘 하려 하는가.
이범 교육전문가는 “(새정치연합 상황이) 어지간하면 내가 돕지 않아도 되겠으나, 지금은 무조건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새정치연합은 집권한다고 전제하고, (지금부터) 집권 뒤 어떤 사람을 기용할 건지,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범 교육전문가는 “(새정치연합 상황이) 어지간하면 내가 돕지 않아도 되겠으나, 지금은 무조건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새정치연합은 집권한다고 전제하고, (지금부터) 집권 뒤 어떤 사람을 기용할 건지,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청년·여성·환경·에너지는 곧 나의 삶이다. 시민단체와 연계해 그것들에 관한 정책과제를 개발하려 한다. 산업정책을 어떻게 할지도 고민할 것이다. 그간 야당은 실물경제(물품거래·서비스산업 등)에 대해 얘기를 잘하지 못했다. 대선에서 이겨 정권 인수위원회 때 고민하면 늦다. 경제 예측 시스템도 만들 것이다. 정부도 향후 경제가 어떻게 될지 (수치로) 계산해 발표한다. 우리도 그 시스템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 지출 예산이나 복지 관련 예산을 ‘경제 예측 시스템’에 넣어 계산하면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줄지, 어떤 (복지) 효과가 있을지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불리한) 언론 환경을 고려해, 정책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방송사와 논의해 만들거나,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하는 안을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길게 고민할 정책과, 작은 규정을 바꾸면 즉각 할 수 있거나 야당 도지사와 진보교육감들이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정책을 나눠서 진행하려 한다. 도지사·진보교육감들을 통해 ‘여기가 집권하면 사람들 삶이 좋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또 하나의 집권 전략이 될 것이다. 당분간 증세 등 이념 논란이 있는 정책보다는 좌우(진영) 상관없이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부터 해보려 한다.

긴 고민과 바로 실천할 정책 나눠서-연구원을 진보·개혁 진영의 싱크탱크로 확장하고 싶은 구상도 갖고 있나.

=이곳의 연구인원이 지금보다 2배 이상이 되면 좋겠다. 진보정당에서 정책연구를 훈련했지만 지금은 외곽에 있는 사람이 많다. 진보정당과 협력하는 테이블을 열어 공동안도 만들고, 공유점을 서로 찾아가는 ‘밥상’을 차려보려 한다. 그러면 향후 야권 연대든, 야권 재편으로 가든 판을 짜는 데 유리하지 않겠나.

우 박사 앞에 놓인 커피가 차갑게 식을 때쯤 이범 교육평론가가 도착했다. 우 박사는 “나만 들어왔으면 연구원이 나만 쳐다볼 텐데, 이범 부원장도 함께하게 돼 눈물 나게 고맙다”며 웃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9월1일 제안을 받고 나흘 만에 참여를 알렸다고 한다. “(이 당이)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제안을 했겠느냐”는 이범 평론가는 상근 부원장직을 맡기 위해 “10~11월에 있던 30여 개의 (개인) 강연 일정을 취소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 8월 고정칼럼에서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약진할 당시, 나는 그게 진보의 정점이고 ‘이제부터 위기’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야 한다’는 정서적 호소가 있을 뿐, 그것을 설득할 정책이 지난 10년간 야권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기자와 만나 다시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새정치연합의 처지로 대변되는 야권의 현재 위기는 “공감할 수 있는 솔루션(해결책)이 제대로 없었고, 그러다보니 (정책의) 우선순위도 정하지 못한” 과정이 누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무상’ 복지 공약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 변화

그는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문제에 대해 진보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해결책을 줬는지 의문이 있다. 민생을 말하지만 사회의 변동 속도를 따라 빠르게 바뀌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맞는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상’이 붙은 복지 공약에 관한 시민의 수용 태도를 예로 들었다.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 개발 공약으로 당시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압승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사람들 사이에 ‘나도 부자가 되는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무상급식 공약이 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진행하다 사퇴한 과정을 통해 시민들 사이에 재정 집행 우선순위 문제가 민감해졌고, ‘돈을 아껴 다른 데 써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여권의) 말도 먹히기 시작했다. ‘무상 의제’가 안 먹힌 대신 올해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자신의 재임 기간에) 서울시 부채 구조를 줄였다’는 부분이 먹힌 것도 비슷한 이유다. 경기교육감을 지낸 김상곤 경기지사 예비후보의 무상버스 공약이 일격에 침몰당하지 않던가.”

그는 지금 민심이 무엇을 원하는지 빠르게 잡아내고 이를 세부적 정책으로 내놓는 ‘기동성’을 강조했다. 복지를 위해 ‘증세 불가피론’을 얘기할 때도, 노인빈곤율이 상당히 높은 현실을 포착해 ‘노후보장세’란 항목 등을 제시함으로써 ‘증세를 하면 어떤 곳에 구체적으로 쓰인다’라고 피부에 와닿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배우 김부선씨의 문제제기로 사회적 쟁점이 된 아파트 난방비를 공개하도록 만드는 법안, 자동차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걱정하는 시민들을 위한 에어백 관련 법, 안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소방방재 관련 법 등을 “기동력 있게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도 우석훈 박사처럼, 산업정책 분야에서 진보정치가 유능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보았다.

영어 사교육과 고등학교 개선에 최선을

교육전문가인 그는 “노후에 쓸 자금을 자녀 사교육으로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교육은 최고의 민생 문제가 됐다”면서 “영어 사교육 문제와 고등학교 체제 개선에 개인적 기량을 발휘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외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구조상 영어 요구는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교육에만 맡겨선 영어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현실도 인정한 상태에서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정책연구원의) 얼굴마담 역을 하는 거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2010년 곽노현(서울), 2014년 이재정(경기) 교육감을 당선시킨 자신의 경험이 침체된 새정치연합에 활력이 되기를 기대했다.

“새정치연합의 보좌진(보좌관·비서관 등)은 1천 명이 조금 넘는다. 이들 중 식견이 뛰어나고 밑바닥 문제까지 다 아는 전문가를 최소 100여 명은 추릴 수 있을 것이다. 난 새정치연합 내부의 이런 잠재력을 조직해 시민의 기대와 관심을 회복하는 긍정적 경험을 하도록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들을 기존 정치문법대로 (국회의원의) 도구로서만 활용한다면 그들은 이 당에서 (잠재력을 발휘하는) 주체가 되지 못할 것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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