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엄마부대 봉사단’ 주옥순 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그러고 보니 이번 선거에서 권은희 후보의 말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건 기자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다. 권 후보 선거캠프의 한 인사는 “권은희의 자취를 감추는 것이 전략이었다”고 말한다. “선거 막판에 방송 인터뷰 등을 조금씩 했지만, 그 전까지 신문 인터뷰는 물론 후보의 육성이 방송에 나가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재산 축소 신고 의혹 따위처럼 권 후보를 둘러싼 논란과 여당의 정치 공세만 무성했을 뿐 정작 ‘권은희의 말과 메시지’는 사라진 선거였다. 권 후보는 다른 후보들이 주렁주렁 달고 있는 홈페이지·블로그도 열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선 “이럴 거면 보상공천이니 뭐니 하는 여당의 공격과 논란을 무릅쓰고 왜 권은희를 공천했냐”는 목소리도 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을 제기한 권 후보의 상징성과 ‘정의란 메시지’를 부각하지 못한 채 권 후보가 여당의 공세거리로만 활용됐다는 것이다. 물론 당 내부에는 지도부가 권 후보를 당선이 유력한 광주(광산을)에 전략공천으로 보낸 순간부터 그를 선거의 전국 이슈로 전면화할 수 없는 덫에 걸렸다는 의견이 많다. 7월23일 광주를 찾아간 것은 당으로부터 육성이 통제된 권 후보가 어떻게 주민들과 만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저를 보시면 ‘어, TV에서 봤는데…. 근데 TV보다 더 예쁘네요’라는 분들이 있어요.”
권 후보의 말에 간담회에 모인 어르신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한 노인은 권 후보의 손을 잡고 “우리 아내가 팬이야. 용기 있는 여자라면서”라고 격려했다. 다른 주민은 “(지난해 8월) 국정원 청문회 때처럼 당당하게!”라고 당부했다. 권 후보는 “광주 광산을의 자랑이 되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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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인사가 말했다. “(청문회 때처럼) 당차면서도 활달하고 사람들과의 스킨십(친화력)도 좋더라고요. 후보가 주민들을 만나는 일정을 늘리자고 해서 후보의 일정이 계속 늘어나고 있죠. 수사과장을 하며 나이 많은 형사들을 접해서인지 캠프 회의를 할 때도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자기 의견과 메시지를 명확히 얘기하더군요.”
당에서 받은 파란색 운동화를 신은 그는 몸을 90도로 접어 주민들과 인사했다. 선거사무소에 잠시 들렀다 가는 주민들에게 “벌써 가시게요?”라며 문 밖까지 따라가 배웅했다. 출마를 결심하면서 “사회에 정의의 숨결이 퍼지도록 하겠다”고 밝힌 그는 ‘국가를 정의롭게, 국민을 편안하게’란 선거 구호를 내세웠다. 권 후보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후보와는 의자에 앉아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선 채로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국회로 들어가면 무엇을 하고 싶나.=“정치공학에 매여 흐트러지거나 하는 것 없이 사회 갈등과 불신 해결을 위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국회의원은 지역구 대표이면서 국민의 대표인데, 공공성과 공익의 가치를 강화하는 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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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대선 개입)과 세월호 (참사) 문제를 포함해서.”
캠프 관계자는 “권 후보가 ‘내가 국회로 가면 할 일이 있다. 세월호 진상 규명에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남편이 보유한 비상장 법인의 주식을 액면가로 신고해 재산을 축소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선거관리위원회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여당에선 이걸 계속 문제 삼고 있다.=“지금 새누리당이 ‘나쁜 정치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권 후보가 직접 나서서 해명하지 않고 너무 조용히 있다는 얘기도 있다.=“새누리당이 나쁜 정치를 벌이는 데 말리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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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너무 아끼시는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신다. (경찰을 그만두고 그냥 있으면) 공공성 문제와 현실의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당선이 쉬운 광주가 아니라 수도권 출마를 생각해보진 않았나.=“그건 내가 생각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광주 출마를 권유한) 당의 제안 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광주 시민들의 의견과 선택권이 계속 무시새정치연합은 7월22일 남편 재산 축소 신고 논란 등과 관련한 권 후보의 기자회견을 논의했다가 ‘없던 일’로 정리했다. 당에서 권 후보 캠프로 파견된 김정현 당 부대변인은 “새누리당과 권 후보를 싸우게 만들면 새누리당의 덫에 걸리게 된다. 한번 설명하기 시작하면 계속 설명해야 한다. 논란이 증폭되면 수도권 선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논란을 빨리 정리하려면 권 후보의 육성이 나가지 않게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여야 후보가 첨예하게 맞붙은 수도권 지역이라면 권 후보가 나서서 논란의 불씨를 꺼야 하지만, 어차피 당선이 예견된 광주에서 출마한 만큼 조용한 행보로 ‘권은희 논란’이 자동 소멸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권 후보를 당선’시킬 것이란 시선을 받는 광주의 민심은 평온하지 않았다. 지역민들은 “권은희가 당선은 되겠지만”이라면서도, 권 후보의 전략공천에 대한 부정적 기류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수완동에 사는 한 40대 주부는 “새누리당이 권 후보의 흠집을 내지만 권 후보의 양심을 믿는다. 그런데 (외압을 폭로한 뒤) 너무 빨리 정치권에 왔다. 또 이 지역에 대해 뭘 알고 지역민을 위해 무슨 고민을 했겠느냐?”고 되물었다. 사실 비판 의견은 권 후보보다는 새정치연합과 지도부에 대한 실망감에 더 가깝게 닿아 있었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한 50대 남성은 “김한길·안철수 대표가 지방선거 때도 광주시장 후보를 전략공천하더니 이번에 또 전략공천을 했다. 새로운 정치인이 전략공천으로 정치를 시작할 수 있지만 광주 시민들의 의견과 선택권이 계속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야당 지도부를 성토했다. 그는 “광산을에 공천을 신청한 기동민 후보를 서울로 빼내지 않았나. 내 주변에선 광산을에 (공천을) 신청한 천정배 전 장관이 후보가 돼도 별문제가 없다는 사람도 많았다. 지도부한테 천 전 장관이 부담스러우니까 그 사람을 제거하려고 권은희를 공천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7월8~10일 진행한 정례 여론조사에서 호남(광주·전남·전북) 지역의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그 전주 조사 때보다 10%포인트 떨어진 53%를 기록했다. 공천 파동과 지도부의 정국 대응력에 대한 냉소가 반영된 하락으로 보인다.
권 후보 캠프는 재보선 투표율이 낮은데다 제1야당에 대한 실망감까지 더해져 권 후보 득표율이 낮을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광주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놓은 이용섭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74.6%의 득표율로 광산을에서 당선됐다. 권 후보가 그에 못 미치는 50% 안팎의 득표율로 당선되면 광주의 민심이 권 후보와 당을 심판했다는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탓인지 캠프 관계자는 머리칼이 희끗한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권 후보를 이렇게 소개했다.
비교치는 19대 총선 득표율 74.6%“권 후보는 광주에서 태어난 오리지널 광주 사람입니다. 경찰을 해서 경찰대를 나왔나 생각하시는데 아닙니다. 전남대 법대를 나왔고요. 광주의 딸답게 국정원 수사 외압을 못 참고 당당하게 질러버렸고요. 재산 축소를 했다, 변호사 시절 위증을 교사했다, 논문 표절을 했다, 이런 의혹은 사실이 아닙니다. 꼭 투표하셔서 압도적 당선 메시지를 (전국에) 줘야 합니다. 아셨죠?”
새정치연합에선 권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으나 당선되면 “야무지게 일을 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한 당직자는 “권 후보가 의원이 되면 지역구 의원들 중 우리 당에서 가장 젊은 만 40살 의원이 된다. 그의 당선이 세대 교체, 당의 변화를 보여주는 의미는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재보선 결과를 놓고 지도부 교체론이 불거질 경우 공천 파동과 전략공천 수혜의 당사자인 권은희 후보도 원내 입성 초반부터 심적 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광주=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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